자극 찾아 헤매는 ‘섹스 머신’들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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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본능

감독 : 폴 버호벤

주연 : 마이클 더글러스

       샤론 스톤

 풀버호벤 감독의 <원초적 본능>은 동성연애와 자극적인 섹스, 잔인한 살인행위를 충격적으로 짜집기한 섹스 추리물이다. 부자에다 미모인 소설가 캐서린(샤론 스톤)이 형사 닉(마이클 더글러스)를 골탕 먹이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면서 살인게임을 벌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줄거리를 이어나가게 만드는 살인 동기가 엽기적 흥미에 치우치고 있어, 스릴러의 껍데기를 씌운 준 포르노 필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레스비언인 여류 추리소설가가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변태 섹스를 즐긴다.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는 캐서린이 왜 살인을 하며 왜 변태를 즐기느냐고 묻는다면 이 영화는 그것이 <원초적 본능>이라고 답할 뿐, 관객을 설득할 더 이상의 이유를 갖기 못한다.

 여자가 남자를 데리고 논다는 점에서 <원초적 본능>은, 닉 역의 마이클 더글러스가 몇해 전에 출연했던 <위험한 정사>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모두 섹스와 살인이라는 충격요법으로 관객을 사로잡지만, <위험한 정사>에 비해 <원초적 본능>의 긴장과 서스펜스는 한급 아래이다. 그것은 <원초적 본능>이 <위험한 정사>에 나온 인물들처럼 섬세한 심리묘사를 표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뜻 교묘해 보이는 구성도 지나치게 작위적인 대목이 많다. 이야기 전개가 벽에 부딪치면 숨어 있던 살인사건과 살인광이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스릴러의 구성치고는 너무 자주 돌발적인 사건에 기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원초적 본능>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드는 또하나의 이유는 사실성 결여이다. 가령 닉과 캐서린 사이를 질투하는 락시(캐서린의 동성연애 파트너)가 닉을 죽이려는 시퀸스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귀신 같은 운전솜씨에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이처럼 버호벤 감독은 보는 순간 놀라고 가슴 졸이면 그만이라는 흥행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할뿐이므로 그의 영화에는 ‘인간’이 없고 또한 ‘인산의 삶’이 없다.

 매력 넘치는 여배우 사론 스톤이 꼼짝 못하게 시선을 붙들어매지만, 영화 속에서 소설가 캐서린의 변태적 정서는 인간의 감정이 마비된 ‘섹스 머신’일 뿐이다. 버호벤 감독의 전작인 <로보캅>이나 <토틀 리콜>의 주인공들이 ‘인간 병기’아니면 의인화된 로봇임을 상기한다면 이 감독은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관심이 없거나 다룰만한 능력이 없거나 둘 중의 하나다. 마지막 장면에서 캐서린이 눈물을 보이고, 살의를 팽개친 채 닉의 품에 안기지만 이 또한 서둘러 해피엔딩으로 처리한 ‘눈 가리고 아웅’이다.

 부실한 내용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내는 기술은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노하우이다. 하지만 이 약효에 대해 회의를 가질 때, 그토록 원하는 관객 확보가 지속적으로 보장될 것이다. 할 말은 많지만 표현능력이 부족한 연출자와, 할 말은 별로 없으나 탁월한 표현기술을 가진 감독 가운데 후자가 더 많이 더 자주 성공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원초적 본능>은 이 안타까움을 다시 확인시켜준 영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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