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강’ 건넌 한화그룹 재산 싸움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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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사건으로 형제간 감정 대립 더욱 악화

프로야구 빙그레 이글스 팬들은 발음 연습을 새로 해야 할 판이다. 최근 대전을 연고지로 하는 이 프로야구 구단의 이름이 ‘한화 이글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옛 이름에 익숙한 팬들의 입장에선 새 이름이 당분간 거슬릴 수밖에 없다.

 빙그레 이글스라는 구단 이름은 애당초 (주)빙그레를 따 지어졌다. 81년 창업주인 金鍾喜 회장이 사망한 이후 한화그룹(당시는 한국화약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金昇淵 현 한화그룹 회장은 홍보 효과를 위해 그룹 내에서 유일한 소비재 생산업체인 빙그레를 간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김회장은 재산 상속 과정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빙그레 주식을 처분해버렸다. 빙그레는 김회장과 2년째 재산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金昊淵씨가 맡아 경영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빙그레 이글스 구단의 모든 지분은 동생과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형, 즉 한화그룹이 갖고 있다. 빙그레 이글스 구단의 이름이 바뀐 것은 이 때문이다. 그동안 말도 많았던 구단의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은 한화그룹 2세 경영인 간의 싸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생의 공작” “내부 제보” 서로 비난
 김승연 회장이 재산 해외도피와 외화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그룹이 비자금을 불법으로 실명 전환한 시실이 적발됨에 따라 한화그룹 2세 간의 싸움은 화해를 통해 해결될 한가닥 가능성마저 사라져 벼렸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한 사법 조처의 강도에 상관 없이 양측 모두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넘어선 것 아니냐’고 공언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10월5일 귀국한 후 1년 7개월간 끌어온 재산 싸움에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여러번 밝혀왔다.

 지난 10월말 검찰에 소환당했을 때도 검찰 관계자가 동생과 화해할 뜻이 있느냐고 묻자,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회장은 10월 11일 사내방송을 통해 생중계 된 그룹 창립 기념식 때 그의 의지를 공식으로 천명한 바 있다. 당시 김회장은 ‘동생과 연을 끊겠다’고 밝혔다.

 김회장이 강경한 입장을 고집하는 것은, 동생측에서 집요하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됐다고 믿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한화그룹측은 검찰 수사의 고비마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제보들이 잇따르는 것은 동생측의 ‘공작’이라고 믿고 있다. 검찰 수사가 벽에 부닥쳤을 때 김승연 회장이 미국에 갖고 있던 거액의 예금계좌가 밝혀졌던 점이나, 반실명제 사범을 조사할 때 한화그룹 비자금 담당자들의 불법 실명 전환 사실이 낱낱이 밝혀진 일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보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김호연 회장측은 오히려 한화그룹 내부의 제보라고 주장한다. 빙그레는 민사소송 외에 분쟁과 관련한 그동안의 대외 활동을 모두 중단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어쨌든 동생측도 김승연 회장이 그리스와 독일에 체류할 당시 김호연 회장이 화해를 청하러 갔는데도 만자 주지 않았기 때문에 화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믿고 있다.

상속재산 반환 청구소송 결과 주목
 작년 4월13일 김호연 현 빙그레 회장이 형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한 후 벌여온 법정 싸움은 판결을 앞두고 있다. 김호연 회장은 지난해 한화그룹이 특별감사를 통해 적자 누적과 조직 분열을 지적하며 한양유통 대표이사직에서 자신을 축출하자, 형이 그룹을 ‘독식’하려 한다며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 소송과 관련해 그동안 아홉 차례의 심리가 있었다. 잇단 심리의 핵심은 과연 김승연 회장측의 주장대로 창업주의 미망인과 2남1녀의 상속인들의 협의해 유산을 분배했는지 여부. 창업주가 59세의 나이로 졸지에 사망한 후 상속인들은 장남 김승연씨에서 그룹경영과 인감을 맡겼다. 89년 5월 김호연씨가 인감을 되찾아 올 때까지 두 형제는 계열사 정리에 관해 몇차례 의견을 교환했고, 이에 따라 모든 상속 절차가 끝났다는 것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측의 주장이다.

 반면 김호연 회장측은, 상속인 사이에 상속재산 분할에 관해서는 어떤 협의도 없었으므로 상속인들은 김승연 회장에서 그동안 상속재산을 명의신탁해놓은 것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김승연 회장이 그룹 전체의 경영과 인감을 위탁받은 것을 이용해 상속재산 일부를 가로챘으므로, 이를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 결과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인들은 두 형제의 어머니와 누나이다. 현재 어머니의 녹취서와 누나의 자술서는 재판부에 제출된 상태이나 두 사람은 가족 간의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김호연 회장측은 상속기간 시효가 10년이고, 이에 대한 재판부의 해석 여부에 따라 판결이 영향을 받을 것을 의식해 작년말 담당 재판부인 서울민사지법 17부에 상속시효 기간에 대한 위헌 여부 심판 제청도 했다. 창업주가 81년 7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산술적으로만 해설할 경우 소송이 제기되기 전인 91년에 시효 기간이 만료됐다는 해석을 할 수 있는 만큼 이 규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내야 했던 것이다.

 이 제청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표결 결과 근소한 차이로 기각당했다. 김호연 회장측은 상속재산 반환청구 소송의 결과를 본 후 위헌 제청을 다시 할 계획이다. 이로써 한화그룹 2세 간의 분쟁은 사상 초유의 재산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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