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쟁점이 된 통일 3년 ‘잿빛 경제’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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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선거 쟁점이 된 통일 3년 ‘잿빛 경제’
 극심한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독일 경제가 만 3년이 지나도록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90년 통일을 달성한 이래 옛 서독의 경제 성장률은 계속 내리막이다. 비관적인 경제 전문가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이직 최악은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구조적인 경제 위기가 새로 시작되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옛 서독은 지난 90년만 해도 선진국으로서는 높은 5.0%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통일후 하락해온 성장률은 올해 마이너스 2% 이하로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독일 정부는 아직까지 옛 서독 지역과 동독 지역 통계를 따로 내 발표한다). 옛 서독 지역의 실업률은 92년부터 상승하는 추세이다. 현재 3백50만명에 달하는 독일의 실업자 수는 내년에 4백2만명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구조적 위기론 · 낙관론 엇갈려
 옛 동독의 경우 통일이 되면서 산업 생산량이 무려 70%나 감소했다. 옛 동독의 산업활동을 정상화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해마다 1천2백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쏟아붓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들어가는 정부 지원금 때문에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올해 3백2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통화증발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인플레이션 위협이 가중된다. 경제학자들은 화폐 발행 증가에 따른 물가상승 압렵이 특히 옛 서독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앙 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유럽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까지 결사적인 고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강을 자랑했던 수출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키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일 후유증이 3년을 넘어 장기화하면서 문제의 근원을 통일보다는 옛 서독 경제에 ‘숨겨졌던’ 구조적 결함에서 찾으려는 해석도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둔 헬무트 콜 총리는 구조적 결함 논리로 통일 경제 정책의 실패를 정치적으로 역이용하고 있다. 콜 총리는 “우리가 지금 당면한 모든 문제는 옛 서독연방에 숨어 있던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통일이 되지 않았어도 이런 문제는 어차피 발생했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독일은 지금 이류 경제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독일인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내년에 독일은 크고 작은 19개의 선거를 치른다. 이런 점에서 콜 총리의 ‘독일 경제 위기론’은 다분히 정치적인 해석이라는 중론이다.

 경제 전문가들도 통일의 대가를 이토록 톡톡히 치르게 된 원인이 다소 복합적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요즈음 전문가들이 내놓는 일반론은 이렇다. 우선 통계상 부풀렸던 동독 경제를 서독은 과대평가했다. 갑작스럽게 통일이 되면서 서독정부는 1 대 1 화폐교환과 같은 결정적인 실책을 거듭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때마침 세계적인 불황이 닥쳤다. 게다가 통일 이전부터 옛 서독경제는 서서히 구조조정기에 접어들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나친 비관론에 대응하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통일 독일의 중장기 전망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밝다는 주장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옛 서독과 옛 동독의 상호보완성은 경쟁력 향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낙관론자들은 굳게 믿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우선 옛 동독 지역의 경제 회복을 앞세운다. 옛 동독 지역 경제성장률도 올해 6.5%에서 내년에는 7.5%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옛 동독 지역의 통신과 도로 철도 등 주요 기간 산업에 대해 진행중인 막대한 투자는 앞으로의 성장 잠재력을 담보한다. 옛 동독 기업들의 민영화율도 90%를 육박해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독일 정부의 공식 입장도 최소한 경기 침체는 일단 최저점을 통과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지니스 위크》는 최근호에서 “독일이 통일을 어렵게 달성하자마자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경제력으로 얻어낸 통일이라는 ‘정치적 전리품’이 바로 그 경제력을 다시 죽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독일의 ‘통일 비용’에 대한 최종 결산을 3년 만에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는 느낌이다.
南裕喆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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