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변혁의 해源’ 釜山
  • 부산·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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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통합 반응-재야운동권 ‘野性 결집’ 분주한 움직임에 시민 표정 담담

 79년 10월, 유신독재정권이 쓰러지기 직전 국민들의 저항이 거리에서 가장 크게 폭발한 사건은 釜馬항쟁이었다. 그리고 8년후 전국이 들끊은 6월항쟁 기간중 서울 등지에서의 시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즈음, 마치 긴잠에서라도 깨어난 것처럼 수십만의 시민이 일시에 쏟아져나오 군사독재를 끝장내고야 말겠다는 분노의 불길을 이어준 사건도 3박4일에 걸친 부산 서면로터리의 ‘대회전’이었다.

  이러한 사사리로 말미암아 부산 시민들은 부산이 한국현대사에 있어 항상 변혁의 주역이었음을 자부하고 있다. 따라서 그 거창한 역사적 행동에 나설 때마다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주었으며 언제나 자신들 野性의 정치적 욕구를 대번해주고 있는 것으로 믿어왔던 金泳三총재와 그이 민주당이 돌연 집권여당과 한뭄이 되어버린 사실을 접한 순가, 이들이 느낀 당혹감과 혼란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조용하게’치러진 ‘야합저지 시민대회’

   어쩌면 3당통합의 성공 여부와 김영삼총재의 정치생명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부산지역의 반응은 그러나 언론을 통해 제대로 전달되 않고 있다. 2월 첫 주말 부산대에셔 있었던 ‘반민주야합 저지를 위한 수산시민대회’의 보도는 일종의 ‘언론 보혁구도’라 할 만큼 매체에 따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일부 유력 일간지와 양 방송사는 이 소식을 1단 처리하거나 아예 무시했으며 2개 일간지에서는 일견 확대보도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크기로 비중있게 다뤘다.

  1천5백?2천명의 학생ㆍ시민이 모여 비교적 조용하게 치른 이날 대회는 겉으로만 볼 때 김총재의 변신에 대한 부산시민의 거부감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시사저널》을 포함한 몇몇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3당합당에 대해 부산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절반수준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났었다. 그러나 ‘깊은 바닷물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자신들 스스로 말하듯이 부산 사람들의 마음은 그 속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은 연령과 직업에 따라 찬반이 엇갈리는 현상일 뿐인데 그것도 객관적 가치가 있는 통계는 아니다. 택시운전자 朴鎭台(38)씨는 “반반인 것 같다. 20?30대 학생ㆍ노동자들은 김영삼이가 완전히 이용당해 정치생명이 끝났다며 하고 있고 40대 이상의 안정을 바라는 계층,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며 올것이 왔다는 말도 많이 한다”고 나름대로 시중의 여론을 정리했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거리의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그런 것 잘 모르요”하든지 “마 잘됐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을 흔히 듣게 된다. 이들이 밝히는 긍정적 견해의 이유는 경제안정에 대한 희구가 대부분이다. 회상원金明基씨(37ㆍ부산지구 전포동)는 “살기가 5공 때보다 더 못하다. 6공 들어와 월급이 27%나 올랐지만 엄청나게 오른 물가 때문에 오히려 저금 한푼 못하고 내집 마련은 꿈도 못꾸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 특히 기자에게 적당히 좋은 말로 대답한 것이 아니라면 이들은 물가인상, 주택ㆍ전세값 상승 등 현재의 경제문제가 노사분규,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4당구조에 있다는 정부여당의 논리를 전적으로 수긍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은 “김영삼씨가 들어갔으니 뭔가 해내려는 깊은 속뜻이 있지 않겠느냐”는 이해와 기대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잘됐다”고 내뱉는 부산 사람들의 말뜻을 주의깊게 꿰어보지 못하면 유신ㆍ5공정권처럼 “또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부산중부교회 崔聖?목사(60)는 “영남사람들의 보편적인 보수성에다 원래 있던 30% 남짓의 여당 지지세력까지 합쳐 이번 합당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약50%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는 매우 표피적인 분석으로 부산 민심의 흐름을 잘 모르는 얘기”라며 경우에 따라 민주당 지지표가 돌아설 가능성은 항상 잠재돼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신감보다는 정치적 허탈감 일어”

  그 경우란 여당내에서 김영삼총재가 어떤위상으로 어느 정도 개혁조치를 실현해내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부산 시민들은 즉각적인 배신감을 일단 유보하고 지켜보다가 부산말로 ‘꼬이는’ 조짐이 보이면 그때는 미련없이 ‘치아뿌린다’는 것이다.

  민주당 부산시지부 宋日永부위원장은 “부산에서는 김영삼총재 외에 대안이 없지 않느냐. 金大中씨가 살아 있는 한 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김총재를 밀 수밖에 없다, 다만 민주화조치 등 합당을 선언할 때의 약속을 지켜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돌아가는 모양이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여론은 급전, 김총재도 끝나고 우리 민주당 사람들도 영원히 끝날 것”이라며 “요즘 여론이 처음보다 다소 나빠진 것도 이용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된 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야와 야권에서는 ‘경우에 따라 끝나는’것이 아니고 “대통령과 함께 합당을 선언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방영된 순간 김총재의 정치생명은 금이 갔으며 그것이 일반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보이게 되는 시기도 2월 임시국회, 아니면 길어야 지자제선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李興홍평민당 부산시지부장은 “일단 여당속으로 들어가놓고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것부터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원래 야당하면서 싸울 당시에도 그다지 투철하지 못했던 점을 상기한다면 그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총재에 대한 신뢰 때문에 시민들이 처음엔 경제안정등의 논리에 속아넘어갔으나 통합정권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들로부터 결국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민족민주운동연합 李星雨정책국장(33)은 “김영삼씨 외에는 정치적 대안을 갖지 못하던 부산시민들로서는 반미주야합에 대해 분노와 배신감보다는 정치적 허탈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일시적이나마 이들에게서 정치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번 부산시민대회의 ‘실패’는 그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시민들의 정서를 잘 읽고 있는 집권세력은 김영삼씨가 획득해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술로 몇가지 기만적인 개혁조치를 취하게 되겠지만 물적 토대의 빈약함과 구조적인 모순 등으로 곧 자기한계에 부딪혀 시민들의 지지는 오래가지 낳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朴소연(22ㆍ법학4)군은 “일반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김영삼씨에 대한 환상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 아직까지는 공분이 높지 않으나 점차 사태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해가는 과정에 있다”면서 “개학과 함께 범시민투쟁기구에 참여, 반민주야합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부산지역 학생들이 선도적 역할를 맡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재야운동권 야당공백 메우기에 부심

  부산지역 재야운동권에서는 일시에 야당이 소멸해버린 공백을 메우는 작업이 지자제선거를 앞둔 시점에서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김총재와 결별하고 여전히 野性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드의 정서ㆍ정치적 욕구를 담아낼 정치세력이 결합되 않는다면 이들 중 상당부분을 여당에 잠식당하고 만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것이다. 부민련, 민교협, 부울총협 등 각 재야ㆍ학생단체들은 합당 이후 대책회의등으로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이 “민주당 잔류파 중심의 신야당뿐만 아니라 평민당 재야를 비롯한 각계 양심세력이 모인 범민주연합의 성격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기본방향에만 의견을 모으고 있는 상태이다.

  부산대 철학과 河一民교수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에 대한 시급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집권당이 60% 이상을 득표, 소선구제 아래서는 의석을 독차지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지지율 60여%중 절반이 떨어져나가고 원래 민정당표 30%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를 가정한 계산으로 당시 민주당표는 호남에 대한 반동표의 성격이 커 ‘절대야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河교수는 따라서 확고부동의 야당지지 기반인 30%라도 우선 흡수해줘야 하기 때문에 범민주세력의 형성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만 성공한다면 일부 보수성향의시민까지 끌어들이는 문제도 결국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벽혁의주역’을 자임하고 있는 부산 시민들이 이러한 새로운 정치모델을 선보이게 될 경우 이른바 ‘보수대연합’에 의한 신당의 나아갈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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