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믿을 수 있는 日本 勞使
  • 도쿄ㆍ김재일 편집위원보 ()
  • 승인 199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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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취재 / 기업인들이 화합 이끌어…종업원들의 집마련 돕고 검소한 생활

동경 주재 한 한국 실업인은 기자의 일본 노사고나계 취재계획을 말렸다. 불과 며칠동안의 취재로는 수박 겉핥기식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한국과 일본의 의식구조, 경제발전 단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본의 노사관계 모델이 한국에 적용될 수도 없다는 충고였다.
아닌게 아니라,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대립에 익숙해 있는 우리의 시각으로 지금의 일본 노사관계를 파악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몇사람의 근로자와 경영자를 만나면서 확인한 것은 일본의 노사관계는 대결이 아닌 ‘협조관계’라는 사실이었다.

싱겁게 끝나는 임금조정

요즈음 일본언론은 다가오는 춘투를 심심찮게 보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노동운동사상 최대의 전국적인 단일 노조인 新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맞는 임금투쟁이며 총선거와도 결부, 노사대립이 어느해보다 심각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너무 순탄한’ 노사간의 협조관계와 비교해볼 때 약간의 마찰요인이 생겼다는 정도일 뿐, 이번 춘투가 과격한 양상으로 치닫는다든지 기본적 노사관계의 틀을 깨뜨릴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별 노조 78개에 일본 전체 조직노동자 1천2백만명의 65%인 8백만명에 가까운 회원을 확보한 신연합은 ‘힘과 투쟁’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總評과는 달리 ‘힘과 정책’이라는 구호를 채택, 과격한 쟁의를 거부하고 온건ㆍ합리노선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이번 춘투의 주요목표로 잡고 있는 신연합측은 지금이 호경기일 뿐 아니라 작년에는 호경기임에도 불구하고 5.17%의 임금인상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들어 올해에는 8~9%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日經運(일본경영자단체연맹)은 물가상승을 우려하여 인상이 5% 미만이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곳 노동전문가들은 결국 양측이 대화를 통해 5.7%선에서 타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경련과 신연합의 간부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춘투와 관련한 의견조정을 이미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대한무역진흥공사의 李??稙 동경무역관장은 “임금인상에 관한 양측의 격차가 우리나라의 경우 20~30%인데 비해 이곳은 불과 3~4%”라며 부러움을 표시했다. 이같은 일본의 노사관계를 ‘비근대적이고 낙후된’ 노사관계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긴하나 그보다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구조’로서 이해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면 이처럼 부드러운 노사관계의 비밀은 무엇인가? 비록 경제발전 단계는 다를지라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치를 그 관계속에서 끌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일본장기신용은행의 아시아과 차장인 와키야 쓰토무씨의 안내로 히라타 도시노리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이곳에선 반드시 회사측을 통해서만 노조측과 접촉할 수 있다. 그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신연합에서 제시한 8~9%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경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현실적인 것을 요구한다.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오히려 노조원들이 반발한다”며 금융계에 있어서 임금인상 목표는 “안정적이고 착실하게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 3천5백명의 은행직원 중 노조원은 70%인 2천6백명. 과장급 이상을 빼고 거의 가 노조에 들어 있다. 본부의 각부서와 전국각지의 지부에서 모인 70명의 대의원이 상임위원 12명 중에서 위원장을 선출한다. 위원장임기는 1년이지만 몇 번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체로 한번만 하고 그만두며 아직까지 단독 입후보였다고 한다. 5명이 노동조합에 상근하는데 이들의 급여는 회사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노조재정에서 나간다. 위원장도 상근이냐고 묻자, 히라타씨는 노조일은 별도로 하고 현재 영업추진부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며 다른 명함을 내어보였다. 노조위원장이라고 혜택을 누릴 것도 없도 위언장에 뽑히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다만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고 위언장자리가 있으니 서로 상의해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다.

“우리가 1~2월달에 봉급인상 요인을 조사해서 노조의 각 지부와 협의한 후 3월에 인상요구서를 내면 회사측은 4월20일경 인상분을 조정한 회답서를 보내온다. 노조측은 대의원 회의에서 이를 승인받아 5월말 수탁서를 회사측에 내면 회사측은 임금인상을 4월부터 소급 적용하게 된다.” 히라타씨의 말대로라면 노사간의 임금조정 또한 너무나 싱겁기 그지없다. 급료ㆍ상여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등의 문제는 1년에 한번씩 노사가 협상하며 직장환경문제, 후생복지문제, 문화활동지원 문제 등은 수시로 협의하는데 노조위원장의 상대는 보통 인사부장이고 사장과는 1년에 2회 간담회를 갖는다고 했다.

60년대초까지 피흘리는 쟁의 계속

그러나 일본의 노사관계가 처음부터 이렇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피를 흘리는’ 노동쟁의가 수없이 되풀이 됐다. 일본노동조합사를 보면 ‘식량 메이데이’ ‘피의 메이데이’ ‘인권파업’ ‘증권파업’ ‘미이케 탄광파업’ 등 살벌한 사건이 많았다. 일본의 노사관계는 불과 20년전부터 안정의 바탕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0년전부터 확실한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이케다 내각이 60년대초부터 추진한 소득배증운동의 성공은 일본노사관계 안정의 분수령이었다. 그때부터 73년의 제1차 석유파동전까지 고동성장기에는 근로자들의 생활향상으로 노사안정의 기틀이 마련됐고 석유파동이후 어려운 경제환경속에서 일본노동운동은 ‘더욱 협조적인’ 양상으로 나타났다. 생활이 어려워지면 격렬해지는 서구적 노동운동 형태가 아니라 더욱 차분하게 안정되는 일본적 노사협조체제가 굳어졌던 것이다. 70년대말 이후 제2차 석유파동과 80년대 후반의 엔고시대를 통해 노조의 협력은 일본경제의 지속적인 체질강화에 큰 기여를 했고 현재 파업없는 춘투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 노동성통계에 따르면 88년 노동쟁의 건수는 1천3백여건으로 1만건을 넘었던 78. 79년과 비교하면 5분의 1 이하로 줄어 대화노선이 정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75년만해도 34%가 넘었던 근로자의 노조가입비율이 88년에는 27%에도 못미처, 근로자의 노조이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유수한 베어링 전문 제조업체인 日本精工의 경우 전체 회사원 9천5백명 중 7천5백여명이 노조원이다. 중앙에 노사협의회가 있고 내려갈수록 사업소 노사협의기관, 직장 노사협의기관 등이 조직되어 있어서 상하기관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임금문제, 복지문제 등을 제기하고 해결한다. 중앙노사협의회 산하의 경영대책위원회 회의는 연 12회 열리는데 노사 양측에서 각각 14명씩이 참석한다.

노동조건 갱신요고는 1년에 두 번 있다. 봄에는 월급, 보너스, 퇴직금 문제 그리고 가을에는 그 외의 노동조건 등이 협의된다고 이모토 교이치 인사부장은 말했다. 노조 상근 인원은 7명이며 역시 회사의 지원없이 조합비에서 봉급이 나간다. 노조위원장은 선거로 뽑는데 대개 단독 출마하고 임기는 2년이나 계속 연임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작년의 경우 노조는 8%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는데 5.95%에서 결정됐었다. 금년에는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이모토씨는 전망했다.

노사관계가 원만한 이유에 대해 그는 “근로자와 경영진이 서로 반대편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서로의 신뢰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또 이 회사에서 일하는 한 생활이 보장된다는 ‘직업 안정성’을 중요한 이유로 들었다. 그 중 하나는 사원주택제도인데 한달 1~2만엔의 임대료로 결혼전에는 독신아파트, 결혼후에는 회사사택을 제공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가 근로자에게 돈을 대며, 싼 이자로 자기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ㆍ퇴근을 무엇으로 하느냐고 묻자 이모토씨는 ‘전철’이라고 대답했다. 상무 이상 10명 정도의 간부만 계약한 여업을 택시로 출ㆍ퇴근하며,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는 간부든 평사원이든 회사차를 사용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아오야마학원대학의 쓰다마스미 교수는 일본기업의 특징으로 경영자, 관리자, 종업원이란 3자의 공동생활체적 성격을 들었다. 이러한 공동생활체 정신이 일본의 노사관계를 기본적으로 규정짓는다. 노사관계의 특징으로는 기업별 노동조합과 기업가가 노사관계안정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노사관계가 계약이 아니라 대화가 중심이며 노사교섭의 원칙이 기업의 지불능력임을 지적, 극한 대립이 적다고 분석했다.

사장들도 전철로 출퇴근

일본에는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이 많다. 1백80명을 고용하고 있는 판촉물 제조업체 히로모리(주)의 아라키 다케시 상무는 “그러나 노조가 없다고 종업원이 불리한 것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매년 정부에서 제시한 평균 임금 수준이거나 그 이상을 지급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계속하여 종업원들에게는 월급, 노동시간 문제가 제일 큰 불만일 수 있으나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신뢰를 바탕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쉽게 승복한다고 했다.

히로모리는 원래 사원주택을 가지고 있었는데 젊은이들이 집단생활을 원치 않는 풍조 때문에 지금은 없어졌다고 아라키씨는 말했다. 대신 종업원들이 융자로 집을 마련하도록 지원하고 이자의 상당부분을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회사의 주식 중 35%정도를 과장 미만의 사원들이 갖게해 경영에의 참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몇사람의 일본 근로자와 경영진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어렴풋이 살펴본 일본 노사관계속에서 뚜렷이 부각되는 한가지는 근로자와 사용자를 잇고 있는 ‘튼튼한 신뢰의 끈’이었다. 근로자도 경영진도 상대에 대해 말할 때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신연합의 가이바라 나오타케 국제국장까지도 “경영자는 노조를 완전히 인정하고 노조는 경영자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일본에서 노사관계는 거울과도 같다”고 단정했다. 노사의 정부방침에 대한 신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그런 탄탄한 신뢰관계가 어디서 연유하는가? 근로자와 사용자 양측이 서로의 분수를 아는 자세이며 특히 기업인의 검소한 생활태도와 도덕성이라고 아시아생산성본부의 ??國彬씨는 지적했다. 웬만한 회사의 사장들도 전철로 출ㆍ퇴근하며 TV방송국에서 장기신용은행 스기우라 회장의 방안을 찍는데 내부가 좁아 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찍은 사실은 일본 기업인의 생활이 얼마나 검소한가를 잘 설명해 준다.

종신고용제도. 이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평생직장제도인데 이 또한 양측이ㅡ 신뢰관계위에서 자리잡힌 풍토이며 이는 사원주택제도 등으로 나타나 노사관계의 안정에 더욱 이바지 하고 있다. 이러한 신뢰관계속에서 73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일본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기업들은 수지적자를 감수하면서 종업원들의 봉급을 전년수준에 맞춰 지불했고 79년 제2차 석유파동 때는 종업원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봉급을 동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엔화가 치솟았던 87년에는 대부분의 섬유공장근로자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봉급을 20%씩 삭감했던 것이다.

노조가 있고 업고를 떠나, 또 일본의 노사관계가 근대적인 것이든 아니든 일본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는 일본경제를 힘있게 전진시키는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비밀은 노사양측의 신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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