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주가 최고 5백% 상승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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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떠난 외국자본 유입중· · · 물가안정 · 높은 경제성장률 등 ‘경제혁명’ 진행중

 

국내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유엔환경개발회의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됐던 6월3~14일. 이때 한국의 주식시장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하고 있었다. 6월3일 종합주가지수는 568.98로 떨어졌고 8일에는 563.65로까지 추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별볼일 없어진 한국 증시를 떠나고 있을 때, 한국에서 빠져나간 외국의 자본은 ‘리우회담’이 열리고 있는 브라질과 같은 중남미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증시 활황에 해외투자가 관심 집중

 한국인들이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지역’쯤으로 알고 있는 중남미의 증시는 한국과 달리 91년 이래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드는 활황기를 누리고 있다. 브라질의 주가는 91년 이후 무려 4배 이상 뛰어올랐다. 이웃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5배가 넘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만이 아니다. 멕시코 칠레 베네수엘라의 주식시장도 비슷한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본지 4월23일자 130호 해외경제 참조)

 국내 증시의 투자환경을 조사하려고 최근 서울을 방문한 영국의 투자전문가 윌리엄 로씨는 “한국시장에 대해 투자를 결정할 만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반면에 그는 “중남미 주식시장의 ‘붐’은 대단하다”며 “성장둔화가 나타나고 각종 규제가 심한 한국 증시와는 비교하기가 곤란할 정도”라고 덧붙인다. 서울의 한 외국 증권사 투자분석가도 “한국시장에 해외자본은 당분간 들어올 전망이 없다”며 “중남미 시장에 많은 해외투자가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91년 중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5개 국가에 유입된 해외자본은 90년의 3배에 달하는 4백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기에도 이들 국가는 평균 4 · 5%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도표참조). 이는 지난 수년간 중남미 국가들이 추구해온 경제개혁이 본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믿고 있다.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18일자 사설에서 “세계의 이목이 소련과 동유럽에 쏠려 있는 동안, 중남미에도 동구권과 맞먹는 또 다른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80년대 후반만 해도 군부독재의 정치적 혼란, 외채 누적과 4자리 숫자의 인플레 속에 혼미했던 중남미는 90년대에 들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은 민선정부가 대대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해왔다. 중남미 5개국의 경제개혁은 △모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물가를 잡으며 △관세를 내리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이웃 국가들과 자유무역 지대를 만든다는 것이 그 골자를 이루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90년도에 마이너스 0.2% 성장을 기록해 뒷걸음질쳤으나 91년도 들어 4.5%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다. 90년에 5.8%의 착실한 성장을 기록한 베네수엘라는 91년에 8.5%의 기록적인 성장률을 달성했다. 중남미 경제개혁 중 가장 주목되는 청신호는 살인적인 물가가 잡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90년도에 중남미 전체의 인플레는 1천1백86%에 달했으나 91년에는 2백2%로 안정화되는 추세이다. 특히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90년도에 인플레가 2천3백14%에 달해 (도표참조) 백화점에서는 상품에 가격을 표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91년에는 1백71%로 낮아졌다. 미국의 경제연구 조사기관인 DRI/맥그로 힐은 92년에는 25%로까지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주식값이 가장 크게 뛰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가가 안정되면서 중남미를 빠져 나갔던 자본들도 되돌아오고 있다. 현재 유입되고 있는 해외자본의 절반 가량은 인플레 때문에 해외로 빠져나갔던 자본이다.

 

경제성장 이면에는 쿠데타 위험도

 중남미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혁명’의 성공 열쇠는 국민의 지지에 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초기에는 자본을 가진 소수의 부유층이 이득을 독점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문의 빈부의 차를 심화시켜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져 군사독재 정권이 내세웠던 사회경제로의 유혹을 부추기는 결과를 빚기 쉽다. 브라질 국민을 소득수준별로 보면 최상부 20%의 부유층이 가장 빈곤한 최하위 20%보다 무려 33배가 넘는 소득을 누리고 있다. 눈부신 경제개혁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에는 군사 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해외투자가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 거대한 북미시장과의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중남미 경제를 분석하고 있는 하영호 주임연구원은 “중남미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몸으로 느끼겠지만, 중남미에서 일고 있는 것과 같은 세계경제의 큰 흐름을 아는 기업이 국내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해외경제 정보에 어두운 한국의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언론도 중남미에 수출이 조금 늘면 난리지만 그런 뒤에는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그는 꼬집는다.

 자본과 상품의 이동에는 국경이 없는 ‘지구촌 경제’시대에, 중남미의 경제개혁이 우리에게는 너무 ‘조용한’ 혁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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