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母北子’ 해결해야 할 名論
  • 이문재·성우제 기자 ()
  • 승인 199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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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로마자 표기법, 의견 수렴해야


南母北子.프랑스 파리의 프랑스표준협회 회관에서 얼굴을 맞댄 제5차 ‘기계화를 위한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에 관한 남북한 회의’(6월16일~17일)에서 남북대표자들은 기분좋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남쪽의 모음과 북쪽의 자음이 만나 국제간 통신에 쓰이는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을 단일화시킨 것이다.

 남측의 정수웅 공업진흥청 차장과 북측의 홍린택 규격위원회 위원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해단일안을 마련한 이번  회의는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그동안 남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의 정보교류과정에서 빚어졌던 혼란이 해소되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회의결과가 가져올 실제적인 효과라면, 남북한이 비록 국제사회 속에서나마 언어 표기방식을 통일했다는 측면에서 그 상징적 의미가 증폭된다. 언어의 통일이 민족통일의 출발점이며 종착지인 까닭이다.

 더욱이 이번 단일안은 남북한이 직접 대화를 통해 채택한 것이고, 이같은 선례는 앞으로 각종 규격 표준화 작업의 촉진제가 될 전망이어서 ‘남모북자 단일안’의 여파는 오래 지속될 것 같다. 이번 한글 로마자 표기법단일화는 85년 유엔전문기구인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요청을 받아들여 87년부터 회의를 갖기 시작한 이래, 네 차례의 접촉을 거쳐 꼭 5년 만에 남북이 ‘입을 맞춘’ 것이다.

 이번 단일안의 가장 큰 특징은 한글 발음을 그대로 알파벳으로 옮겨적는 전사법(표음주의)이 아니라 한글의 자모와 알파벳을 1대 1로 맞대응시켜 표기하는 전자법(문자주의)이라는 것이다. 과거 문교부가 공식화한 알파벳 표기방식은 전사법인데, 이번에 전자법에 바탕한 것은 한글 기계화와 국제간 정보교류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간 표음주의에 입각한 전사법은 많은 혼선을 빚었다. 부산을 PUSAN, BUSAN으로 동시에 표기했기 때문에 외국인에겐 PUSAN과 BUSAN이 서로 다른 도시로 알려지기도 했다. 인명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성씨인 李가 YI · LEE · RHI 등으로 표기돼 한국 관련 자료를 검색할 때 번거롭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도출된 남북 단일안은 내년 5월에 열리는 국제표준화기구 총회를 거쳐 1년 후에 발효되는데, 앞으로 국내의 도로표지판·지도·교과서·도서관 자료·여권 등의 표기를 바로잡아야 하는 등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 것 같다.

 시행되기까지 1년의 ‘검증’기간과, “기왕에 국제사회에 알려진 표기법은 그대로 사용한다”는 예외조항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단일안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통신용이란 목적성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는 한글학회 리의도 연구원은 “ㄱ ㄷ ㅂ ㅈ이 한글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자음인데 우리식 발음(G·D·B·J)이 사장된 점과, 통신용 표기라면 경제성이 최우선인데 북측 입장을 수용한다는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ㅋ ㅌ ㅍ ㅊ에 각각 H를 첨가한 것은 불합리하다”라고 말했다. 리연구원은 “현재 우리 표기방식은 84년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게임을 앞두고 개정된 것이다. 한글학회에서는 현행 ‘종노’‘동님문’ 등 표음주의에 반대했다. 채 10년도 못돼 다시 문자주의로 바꾸게 되면 큰 혼란이 생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언어학과 이현복 교수는 “북한측 안을 수용한 게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자음표기법을 채택한 것이 잘못”이라고 본질적인 비판을 한다. ‘조’를 CO, ‘초’를 CHO라고 표기하는 북한식 표기는 옛 소련방식과 비슷해서 우리식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발’과 ‘팔’이 각각 PAR, PHAR로 표기돼 외국인이 발음하면 ‘발’과 ‘팔’이 구별되지 않는다면서 그는 “이것은 낱말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ㅂ계열은 B로, 그리고 ㄱ은 G, ㅈ은 J, ㅊ은 CH, ㄷ은 D, ㅌ은 T 등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만일 ㄱ을 K로 합의한 것이 ‘김일성’표기때문이었다면 이번 단일안은 재검토돼야 마땅하다. ‘이미 굳어진 것은 그대로 사용한다’는 예외조항이 있지 않은가. 언어 문제는 ‘협상 과정’에서 양보할 것이 아니고 바르게 인식시켜야 할 성질의 것이다”말했다.

 한글 로마자 표기법에 대한 학계의 위와 같은 진단이 있고 보면, 내년 5월 국제표준화기구의 공인을 받기 전까지 진지한 재검토와 다양한 의견 수렴이 요구된다 하겠다. 언어는 당대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민족 최대의 자산인 까닭이다.

이문재·성우제 기자

 

앞으로 이렇게 바뀐다.

경복궁 KY?NGBOKKUNG->KYEONGPOKKUNG 조치원 JOCHIWON->COCHIWEON 이순신 LEE SOON SHIN->I SUN SIN 부산 BUSAN->PUSAN 팔 PAL->PHAR 발 BAL->PAR

한글 로마자 표기법은 93년 5월 국제표준화기구의 공인을 거쳐 시행될 예정인데. 서울(SEOUL)처럼 이미 굳어진 용어는 바뀌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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