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澤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 김재일 차장 ()
  • 승인 199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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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뜻 따라 장외로 나섰다”

쌀시장 개방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은 장외 투쟁을 택했다. (   )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국회에서만난 것은, 농수산위와 재무위에서 추곡수매 동의안과 세법 개정안이 날치기 통과된 직후인 12월2일 오후였다. 또 민자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 방침으로 여야가 격돌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들 때였다. 왼쪽 가슴에‘쌀 개방 절대 반대’리본을 달고 나온 이대표는, 전날 민주당 의원들과 농성하면서 밤을 꼬박 새운탓인지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원기왕성한 모습으로 돌변해 시종 강한 어조로‘문민 정부’를 몰아붙였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상임위에서의 날치기 처리를‘폭력을 동원한 신종 날치기’쿠데타적 폭거‘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쌀 개방 반대 장외 투쟁은 정국을 주도하려는 정치 공세가 아닙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앞두고 쌀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의 강한 의지를 보이자는 겁니다. 이번만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한다는 것을 이미 선언했습니다.

국내용이 아니라 국제용이란 말씀이군요.
그렇지요 국제 설득용입니다.

‘쌀만은 안된다’가 안 통한다는 것이 우루과이 라운드에 관한 상식입니다. 장외 투쟁으로 대외 협상력을 높인다는 것은 국제 협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온 발상이 아닙니까?
모르는 바 아닙니다. ‘예외 없는 관세화’라는 포괄 규정이 있지만, 각 국가의사정에 따라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문제 같으면 우리가 노력하다가 포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쌀은 민족의 생명 줄과 같은 겁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각오가 모두 함께 이뤄질 때, 저는 쌀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결사 반대를 외치기보다는, 국민 눈치 보면서 쉬쉬하기에 바빴던 정부의 불성실성에 비판의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점이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어제 경제 장관 회의에서 쌀시장 개방 불가라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석간 신문을 보니까, 경제기획원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쌀시장 개방은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하룻밤새 불가가 불가피로 바뀌었는데, 국민을 속여도 유분수지, 이런 정부이기 때문에 쌀 개방이 목전에 다가오지 않았느냐 그 말입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해 정부가 좀더 솔직하라고 저도 그동안 여러차례 촉구해 왔어요. 지금은 이미 때가 늦었어요. 현시점에서 오직 한가지 길은 쌀 수입 저지를 위해 전국민이 일어서는 것입니다. 

만약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할 때, 민주당에 대안이 있습니까?
현재 대안이 있고, 앞으로 만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안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쌀 수입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뿐입니다. 대안을 생각할 정도면 결사 반대를 안해야지요.

국민투표를 제안하셨는데 무모한 발상 아닌가요. 만약 투표 결과가 개방 반대로 나온다면 가트를 탈퇴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하룻밤새 쌀 개방 불가가 불가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동안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솔직하라고 여러차례 촉구 햇습니다. 지금은 때가 늦었어요. 전 국민이 일어서는 길밖에 없습니다.”
국민 투표를 하자는 것은 쌀만은 사수하자는 우리 국민의 총의를 우루과이 라운드에 전하자는 것이지, 가트 탈퇴 여부를 따지는 것은 쌀 개방이 불가피할 때 대안은 뭐냐 하는 말과 같습니다. 국민투표라는 발상은 마지막 순간까지 쌀 수입을 저지해 보자는 국민의 뜻을 국제 사회에 반영하는 수단으로 삼자는 것이지요.

개혁 정국에서 야당이 수세를 벗어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루과이 라운드에 관한 문제나 이번 국회 날치기 처리 같은 것이 김영삼 정권에 큰 타격을 줄 걸로 봅니다. 우리는 새 정부의 개혁이 사상누각과 같을 것임을 벌써부터 예상해왔습니다. 내년쯤 김 영삼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대단한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정권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국민에게 알려지면 야당의 역할은 더 커질 것입니다.(이 때 문희상 비서실장이 여당의‘오늘 내 예산안 강행 처리’방침을 이대표에게 알리며 진두지휘를 요청했다.)

야당 처지에서 쌀을 정략적 무기로 이용하는 측면이 없단 말입니까?
없다니까요. 진짜로 애국 차원입니다. 민주당이 6백만 농민과 다수의 국민, 그리고 재야와 호흡이 맞는다는 것이지, 당리당략 차원은 아닙니다.

야당으로서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공격해 국민의 마음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려는 것은 당연한데, 그런 관점에서 이대표는 정국을 주도하려는 의지가 약한 것 아닙니까?
물론 야당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쌀 문제에 정치적 이해를 결부시켜선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자세입니다. 저도 쌀 수입 반대에 민주당이 앞장섬으로써 정국을 주도할 기회가 마련된다고 보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쌀을 이용해서 정국을 주도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국면 전환의 명수인 김대통령이 어떻게 나오리라고 보십니까? 또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은 있습니까?
우리 민주당으로서는 모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지요. 쌀 개방과 관련해 김영삼 정부가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결국 민심이 이반하게 될 겁니다. 김대통령이 아무리 국면전환의 명수라 하더라도 앞으로 당분간 특별한 방안이 있겠습니까


영수 회담으로 얼어붙은 정국을 풀 생각이 있습니까?
제가 영수회담을 원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뜻이라고 봅니다. 대통령이 필요해서 야당과 더불어 난국을 헤쳐 나가자고 한다면 언제든지 응해 국정을 논할 용의가 있습니다.

혹시 김대통령이 이대표를 별로 겁내지 않는 것 아닙니까?
겁낸다 안내다 차원보다도… 역시 김대통령의 정치 파트너는 김대중 선생이라고 봐야 하는데 그분은 이미 정계를 은퇴했고, 제가 김대통령의 상대역이 됐다고 볼 수 있지요. 김대통령과 제가 과거에 총재 · 부총재 관계였기 때문에 외형상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엄연한 여야 대표의 관계라는 것을 김대통령이 가볍게 본다면 민주적 지도자로서 결함이 될 것이고, 앞으로 두고보면 알겠지만, 그래 가지고는 국가를 평안하게 운영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본인의 지도력을 자평해 주십시오.
정치 활동을 30년 이상 해오고, 지금 최다선(7선)입니다. 리더십 없는 사람이 그렇게 오래 국회의원을 할 수 있습니까. 또 우리 민주당은 9인 집단지도체제입니다. 통합 야당의 복잡한 구조를 가진 민주당을 그래도 중지를 모아 이만큼 끌고 나가는 일이 리더십 없이 되렜습니까. 저보고 리더십이 없다고 한다면 저를 흠집내려는 말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물론 맢으로 보완하고 노력해야겠지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의결정이 의원총회에서 가끔 뒤집히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저는 그것이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더 많은 의원이 참여해 더 좋은 당론을 마련할 수 있다면, 아무리 지도부의 결정 사항이라 하더라도 당론이 바뀐다는 것은 민주 정당의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라고 봅니다. 당이 분열된다면 몰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인터뷰를 마친 그는 대기중인 민주당 의원들을 지휘하기 위해 서둘러 대표실을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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