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재단, 눈이 멀었나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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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감사 결과, ‘전문경력인사’ 잘못 선정한 사실조차 몰라
 
‘전문경력인사 초빙 활용 지원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과학재단이 한국과학재단법에 의해 199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취지는 이렇다. ‘과학 기술 정책을 개발하는 능력을 높이고 과학 기술의 기반을 확충함으로써 국가 및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전문경력인사를 교육·연구 현장에 활용한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 7백93명이 혜택을 입은 이 사업에는 나랏돈 5백47억7천8백만원이 지원되었다. 지난해 들어간 돈만 98억원이 넘는다. ‘전문경력인사’에 선정되면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서 3년간 주 3~4시간을 강의하면서 연구 장려금이라는 명목으로 매월 3백만원을 받는다.

4년간 자격 없는 29명에게 9억여원 지급

전문경력인사는 국가공무원법상 정무직 공무원과 1급 이상 공무원으로 재직한 사람, 연구기관 및 산업체 등에서 고위 전문경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따위를 말한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이 사업을 감사한 감사원은 지난 3월6일 ‘전문경력인사 초빙 활용 지원사업이 부적정하게 추진되었다’라고 한국과학재단에 감사 결과를 통보했다. 2002년에서 2005년까지 29명에게 9억여 원이 적절치 않게 지급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과학재단이 정한 ‘전문경력인사 초빙 활용 지원요령’ 제11조에는 ‘해당 인사가 활용 기관 이외의 기관에서 상근직으로 근무하거나 정기적으로 보수를 받는 경우에는 재단지원금 전액을 지급 정지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고정 수입이 있는데 또 국고를 지원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규정되어 있지만 과학재단의 사전 검증과 사후 관리에는 문제가 있었다. ‘상근하는 사람을 전문경력인사로 잘못 선정하였는지 또는 전문경력인사로 선정된 뒤 정기적인 보수를 받는 직위에 근무하게 된 인사에게 연구 장려금이 계속 지급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대로 두고 있다’라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과학재단의 허술한 운용 때문에 규정대로라면 다른 사람이 혜택을 입었어야 할 9억여 원이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지급된 것이다.

 
형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애초 선정할 때 이미 다른 기관에서 보수를 받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행정자치부 차관을 지낸 정영식씨의 경우 대한투자증권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도 전문경력인사로 선정되어 조선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그는 전문경력인사로 선정된 뒤에도 대한투자신탁운용 사외이사를 맡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임좌순씨도 비슷했다. 인솔루션이라는 회사의 고문으로 있던 그는 전문경력인사로 선정된 직후 경남기업 사외이사를 맡았다.

이덕영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 김용규 전 주 네덜란드 특명전권대사, 민병서 전 수자원공사 감사, 이재춘 전 주러시아 대사, 김필수 전 기무사령관, 도명정 전 서울시 도시개발공사 사장, 김기옥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등도 이런 경우였다. 이들은 전문경력인사로 선정될 당시 이미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고문·연구교수·상담역 등을 맡고 있었다.

전문경력인사로 활동하는 도중 다른 기관에 취직한 사람도 일곱 명이 적발되었다. 대부분 비상근 사외이사를 맡았다. 신현웅 전 문화부 차관이 웅진코웨이 사외이사를 맡은 것을 비롯해 고재방 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보가 미래에셋생명보험 사외이사, 강정일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이 동부한농화학 사외이사, 안충준 전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이 이비티네트웍스 사외이사를 맡았다. 한국화학시험연구원장을 지낸 김광식씨는 한국화학시험연구원 비상근 전문위원을 맡았다.

혜택 본 주요 인사는 행정관료·군인·외교관

세 번째는 강의를 하는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경우다. 감사원도 ‘활용 기관 외의 기관에서 상근직으로 근무하거나 정기적으로 보수를 받는 경우에만 연구 장려금 지급을 정지하도록 되어 있을 뿐 활용 기관에서 상근직으로 근무하거나 정기적으로 보수를 받는 경우에는 연구 장려금 지급을 중단하도록 규정하지 않았다’라며, 관련 규정의 허점을 지적했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전문경력인사로 선정되어 한서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는 날 동시에 한서대학교 초빙교수가 되었다. 유병구 전 공군교육사령관도 이씨의 경우와 똑같았다. 이처럼 여러 경로를 통해 연구 장려금을 부당하게 지원받은 이들은 행정관료, 군인, 외교관이 다수였다.

물론 전문경력인사 가운데는 연구 장려금을 지원받다가 다른 곳에 취직하는 경우 이를 과학재단측에 스스로 알리는 사람들도 많다.

과학재단 관계자는 “전문경력인사를 선정할 때 어떤 경우에 연구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이 중단되는지 서류로 알려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인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해당 인사의 양심에 맡기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과학재단 관계자는 “장·차관 등이 많다 보니 당사자로부터 직접 확인을 받지는 않았는데 앞으로는 이 절차를 거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뒤 과학재단은 해당자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전문경력인사는 활용하고자 하는 대학교에서 당사자와 협의한 뒤 한국과학재단에 신청서를 내면 1년에 두 번씩 선정한다. 대학교 입장에서는 지명도 있고 경륜 있는 인사들을 자기 돈 들이지 않고 강의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과학재단 관계자는 “해마다 경쟁률이 높아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관장을 지낸 사람들도 많이 떨어졌다. 평균 경쟁률이 3:1이다”라고 말했다.

대학교에서 신청을 하면 과학재단 이사장과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등 정부 부처 소속 위원 네 명 그리고 민간 위원 네 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한 심사위원은 “전문성이 있는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인가 등을 집중적으로 평가한다. 대상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심사위원들이 각자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평가는 공정하게 진행된다”라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먼 대학교이고 정규 강좌를 맡는 경우처럼 활용도가 높을 때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사업은 그동안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과학재단’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상식적으로 선뜻 납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선정된 전문경력인사 가운데 공무원 및 공공기관 출신 비율이 90%를 넘는다. 과학계 출신 인사들의 전문성을 활용하자는 애초 취지에 맞지 않는, 퇴직 공무원들의 노후 대책용으로 전락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김의원은 또 “최종 경력으로 볼 때 과학기술계 인사의 비율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과학재단 관계자는 “올해부터 전문경력인사 가운데 50%는 반드시 과학기술계 인사를 뽑기로 했다. 또 전문경력인사가 활동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고 보수를 연구 장려금보다 적게 받는다면 다른 기관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쪽으로 규정을 바꿀 계획이다. 연구 장려금 지급이 중단되는 경우와 관련해 당사자의 확인서도 받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감사원으로부터 감사 결과를 통보받고 나서 어떻게 제도를 바꿀 것인지를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 전문경력인사에 선정된 사람들의 출신 기관을 분석해보면 국방부가 98명으로 가장 많다. 중앙 부처 장관이나 차관을 지낸 41명도 지원을 받았다. 또 외교부 소속으로 대사를 지낸 사람이 34명, 국회사무처 출신이 21명, 국가정보원 퇴직자가 15명에 달했다. 지금은 군 출신 비율을 줄이고 민간·과학기술계 인사들을 최대한 많이 뽑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 신청한 군 출신 인사 24명 가운데 심사를 통과한 사람이 네 명에 불과한 것이 이를 증명이다.

돈 돌려받지 못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

문제는 감사원 감사에 대한 후속 조처 여부다. 부당하게 집행된 9억여 원에 대해 감사원은 ‘처분 요구’에서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았다. ‘특정 기관에서 정기적인 보수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으로 연구 장려금 지급을 중단하게 되어 있는 규정을 합리적으로 개정하고, 선정할 때나 그 이후에 특정 기관에서 상근직으로 근무하는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라’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전문경력인사 신청자를 심사하는 한 심사위원은 “이것만 가지고 사업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되겠지만 신청서에 관련 내용이 다 나와 있는데도 다른 기관에 근무하면서 연구 장려금을 받았다면 당사자로부터 돈을 돌려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한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과학재단측에서도 이런 시각을 의식해 감사원 감사가 진행된 뒤 당사자로부터 돈을 회수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았다. 변호사에게 자문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당사자가 강의를 이미 진행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없다면 누군가 책임이라도 져야할 텐데 그러지도 않는다. 앞으로 잘할 테니 지난 일은 덮자는 식이다. 감사원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매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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