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도입 사기 사건/무기상 농간에 10조원 국고 손실…군수 관계자와 결탁 구조 전면 조사해야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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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상 '검은 세계'가 비리 온상

 올해 한 해 인사 비리, 율곡사업 비리, 하나회 파문 등 대형 악재에 시달려온 국방부가 연말을 넘기지 못하고 또 한번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프랑스로부터 육군 훈련용 포탄 구입을 둘러싸고 지난 91년, 92년 두차례에 걸쳐 국방부가 6백70만달러(약 53억원)에 달하는 국고를 사기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그 파문이 걷잡을수 없이 번져가고 있다.

 권영해 전 국방부장관이 12월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 · 현직 군수본부장 5명을 수사하고 있으며, 관련 실무자들을 구속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튿날 군 검찰은 당시 군수본부 실무책임자였던 윤삼성 대령(49)등 2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수사가 본격화해도 의문점만 증폭되자 불똥은 급기야 정치권으로까지 번져다.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회창 신임 국무총리에게 이 사건의 전모와 국방부의 은폐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문책하라고 지시했고, 민주당은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시사저널》서 지적한 '작은 사업 감사'소홀
 이제 포탄 도입을 둘러싼 사기 사건은 무기 도입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번 사건이 단순히 국방부 군수본부의 방심으로 인해 53억원만 날려버린 사기 사건 수준이 아니라 국내 무기상 및 군 내부의 공모자가 치밀하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흐르고 있소 충력을 더했다. 그 과정에서 군의 사건 은폐 기도가 속속들이 밝혀져 막대한 국방 예산을 쓰는 국방부의 내부 관리능력에 큰 허점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기 사건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무기 도입 체계가 맞은 '당연한' 결과라 해도 무리가 없다. 이미 율곡사업 특별감사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 6월24일 《시사저널》은 '율곡사업 비웃는 로비 뒷돈 수천억'이라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통해 무기상과 군수본부의 결탁 구조, 국고낭비 실태를 자세히 보도하고 그쪽으로 감사 방향을 바꾸라고 촉구한 바 있다. 당시 《시사저널》은 '외형상 구매 규모가 작아 보이는 유럽 무기도입 과정에 엄청난 비리가 숨어 있다. 따라서 현재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만 치중된 감사원의 감사가 이들 소규모 사업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외국 국적을 취득하고 군 관계자들과 결탁해 막대한 국고를 홍콩 · 스위스 · 싱가포르 은행으로 빼돌리는 무기상들의 문제를 감사원과 당국은 끝내 외면했다. 따라서 이번에 밝혀진 프랑스 포탄 도입 관련 사기사건은 지난번 감사 때 방향만 바꿨더라면 이미 적발해내고 보완책까지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서울에는 4백여 무기상이 '무역 대리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한다. 그러나 율곡사업과 관련해서는 이 중 약 20여 무기상만이 독점적으로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있다. 지난 5월 초 감사원이 율곡사업 특별감사를 실시하자 국내 무기상들은 썰물처럼 해외로 빠져 나갔다가 검사가 끝난 뒤 되돌아왔다.

무기상들, 검은 돈 챙겨 해외로 빼돌려
 이들 무기상은 대부분 군출신 인사들로 현역 재직시의 인맥 · 정보 등을 이용해 외제무기 판매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벌이는 로비 행태와 로비 대가로 쓰는 검은 돈이다. 국방부가 이들에게 인정하는 커미션은 '구매 금액의 2%와 상한선 4백만달러 중에서 큰 금액'으로 제한돼 있지만 실제로 무기상 세계에서는, 이 규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면 계약이 일반화해 있다. 우리가 주로 무기를 수입하는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무기 회사에서는 수수료율을 10% 안팎으로 높게 책정해두고 있기 때문에 국내 무기상은 규정에 명시된 2%만 신고하고 나머지 8%에 해당하는 돈은 해외 은행으로 송금받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 돈이 군수본부 관계자들 및 군 고위층과 결탁하는 '검은 돈'이 되는 것이며, 수수료는 무기값에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관행은 결국 막대한 국고를 빼돌리는 셈이 된다.

 따라서 검찰과 감사원, 국회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1회성 사기 사건 차원으로 보고 해결할 것이 아니라 무기상 세계에 대한 전면 조사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나타났듯이 무기 도입을 둘러싼 구조적 비리의 온상은 바로 무기상과 군수 관계자들의 결탁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올 한 해 국방부 군수본부가 외제 무기를 도입하는 데 쓴 예산은 무려 5조3천억원이다. 이번에 사기당한 약 53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0.1%밖에 안된다. 따라서 군수본부 실무자들이 이와 같은 '작은' 사업의 비리를 마음먹고 공모하거나 감추더라도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 군수본부라는 게 군 주변의 평이다. 그러나 이들 작은 사업을 모두 합하면 전체 무기 도입 예산의 30%에 달한다. 바로 여기에 국방 예산 관리 및 감사의 허점이 숨어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 무기중개상으로 활동했던 박○○ 예비역 육군 대령은 자신이 무기 도입에 관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집행한 율곡사업 예산 30조원 가운데 10조원은 무기상의 장난으로 인한 국고손실액이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국방을 위해 쓰이는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얼마나 누출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아닐수 없다.

 바로 이같은 사각 지대를 남겨놓고 추진되는 국방력 강화는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기상 세계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와 무기 도입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뒤따르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은 단지 '재수 없어서'들통난 촌극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丁善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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