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맛에만 맞춘 교과서
  • 송준 기자 ()
  • 승인 199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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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때마다 지배이념 반영 … ‘경쟁’ 미화 · 군사문화 정당화 등 부작용


 “내 몸집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나는 오늘도 학교에 간다/… 中略…/아주 공갈 사회책 /따지기만 하는 산수책/외우기만 하는 자연책/부를 게 없는 음악책/꿈이 없는 국어책/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무겁니?/….”

 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 쓴 이 시는 교과서 전문가들이 한국 교과서의 현실을 지적할 때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다. 지난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출범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교과서 분석 · 비판 작업이 시작된 이래 이 문제는 아직껏 이렇다할 진전 없이 현안으로 남아 있다.

 교과서를 둘러싼 해묵은 논의가 그대로 쌓여 있는 가운데 지난해 6차 교육과정 개편에 즈음하여 출간됐던 논문집《한국의 교과서》(李鍾國 지음)가 최근 ‘제10회 한국출판학회상’을 수상해 교과서 문제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 근대 교과용 도서의 성립 과정과 체제 변천, 그리고 교과서 편찬 발행의 속내를 상세하게 정리한 이 책은 특히 ‘교과서觀’과 ‘교과서 연구 방법론’을 제시한 면에서 눈의 띈다.

 이종국씨(대한교과서주식회사 출판2부장)에 따르면, 교과정책 분야 논술에 집중된 연구 관행을 버리고 이제는 출판물로서의 교과서 자체 연구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이씨는 이러한 연구시각을 유지하려면 “정책과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된 가치중립적 입장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과서》는 ‘교과서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구명한 저작임에는 틀림없지만 ‘교과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에 대해서는 함구한 한계를 보인다. 이 論究가 현재까지의 교과서를 대상으로 한 것이 데 비해 전 · 현직 교사와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는 오늘과 미래의 교과서가 대상이다.

 교과서 비판은 그 기능과 이데올로기 면에서 주로 제기된다. △수학 과학 등의 과목이 재미없는 이유는 교과서가 학생의 성장 속도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고 △국어 과목에는 해당 학년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와 소설이 실려 있으며 △실업계 교과서는 취업 후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점 들이 사례로 꼽힌다. 또 기존 교과서에 내포된 △경쟁 지상주의의 미화 △냉전 · 반공 교육의 강화 △자본가 철학 강조 △농촌 현실 왜곡 △군사문화 정당화 같은 논리는 시대착오라는 지적이다.

 

학생 성장에 따른 난이도 등 검토 없어

 이같은 문제는 교과서 편찬 과정을 살펴보면 그 원인을 쉽게 알 수 있다. 현행 교과서는 1종(국정) · 2종(검정) · 인정도서 세 종류가 있다. 1종은 국가에서 직접 편찬하며 (전체의 약70%차지) 2종은 ‘최근 3년간 10종 이상의 도서를 발행한 실적이 있는 출판사’(참여 의사가 있는)들의 견본 교과서를 검정을 거쳐 채택하고 있다(인정도서는 2종도서 검정기준을 적용).

 1종의 경우 교과서 신 · 개편 결정에 따라 연구기관 위촉과 교과서 편수작업 등이 시작된다. 이때 위촉 및 편수작업을 교육부 교과서편수관(현재 57명)이 주관하며, 각급 학교 교과목별로 ‘1종도서 편찬 심의회(9~21명)’를 구성해 맡긴다(도표 참조).

 교육부에 따르면 연구기관 및 심의위원 선정 기준이 문서로 규정된 바 없이 전부 편수관의 재량에 맡겨지는데, 편수관들은 교감 · 교장 · 장학관들 가운데서 선정해 발령을 낸다. 그러므로 이들은 교과서 편찬 관련 연구를 한 경력이 따로 없으며, 전문가가 되는 것은 편수관 발령을 받는 다음이 되는 셈이다.

 2종 교과서의 경우 출판사가 임의로 편찬팀을 구성해 집필한 견본 교과서를 교육부에 제출해 합격되면, 편집한 필름을 한국2종교과서협회로 보내 책을 만든다. 1종과 2종 도서는 각기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일치할 것’ ‘교육 목적 및 목표와 일치할 것’ 등 20여 항목에 이르는 엄격한 ‘각급 학교별 교과서 집필지침’에 의거하여 제작된다.

 결국 교과서는 자연스럽게 정부의 입맛에 맞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 개편은 부분 수정에 머물 뿐, 학생의 성장에 따른 난이도 구분 등을 따로 검토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외국의 교과서 제도를 참조해보면 우리나라 국 · 검정제도의 파행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김두정 교수(충남대 교육학과)는 외국제도를 자유발행제와 국 · 검정제로 대별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전자이고 일본 대만 소련 등이 후자이다. 예컨대 “미국은 주나 지방 학구가 독자적으로 교육과정을 정해 교과서를 선택한다. 출판사들은 각 주의 요구 사항을 조사하여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검토해 판매에 유리한 교과서를 제작한다”고 한다. 만드는 축과 고르는 측이 공정히 경쟁해 최선의 교과서를 지향하는 것이다.

 또 일본은 엄격한 검정제의 의해 교과서를 만들지만 특수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일반 저자와 출판사가 집필 · 제작하여 문부성의 검정을 거친다. 불합격될 경우 그 이유를 신청자에게 통지하여 반론서 제출이 가능하다. 문부장관은 반론서를 첨부해 재차 검정 심의회에 회부한다. 한번 부합격 받은 출판사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우리와는 차이가 크다. 

 

산업재해를 노동자 부구의 탓으로만 기술

 우리나라의 국가독점적 교과서 편찬 구조를 역대 정부의 정통성 결여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한국교육연구소 沈聖輔 부소장(41)은 5차례에 걸친 교과서 개편이 거의 정권교체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63년의 1차 개정은 당시 박정희 소장에 의한 61년 5.16 쿠데타와, 2차(73년)는72년 유신헌법 간행과, 3차(81년)는 당시 전두환 소장에 의한 80년 5.17 쿠데타와, 그리고 지난 89년의 5차 개정은 87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의 집권 시기와 각각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집권세력의 교육(좁게는 교과서) 통제는 일제 식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교조 교과위원회 위원장 曺在導씨(36·전 온양여중 교사)에 따르면, 이는 일제의 효과적인 통치수단이었으며 미군정청 역시 교과서 통제를 통해 친미 교육을 뿌리내렸고, 일제-미군정-군사정권으로 이어지는 교과서 통제정책은 최근 정경유착으로 더욱 교묘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 다음은 그 사례들이다.

 △국민학교 3학년 1학기《도덕》: 산업재해 세계 1위국인 우리나라 실정을 왜곡, 그 원인이 노동자의 부주의 때문인 것으로 기술. △공업고《공업입문》: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과 순종적 자세 강조, △국민학교 2학년 1학기《바른생활》:북한의 남침과 일본 등 이민족의 침략을 동일시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읽기》: 귀 큰 임금님 우화를 통한 6공 정권 홍보. 일본 군국주의식 조회 묘사를 통해 군사문화 내면화. △중학교《사회》: 신도시 정책, 도심지 재개발 사업 등의 홍보에 치중. △중학교 2학년 1학기《국어》: 농촌을 막연히 살기 좋은 곳으로 묘사.

 전교조 교과위원회가 펴낸《교과서 백서》(푸른나무 펴냄)에는 이같은 사례가 각급 교과별로 실제 예문과 함께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거의 전과목에 걸친 서구문명 미화와 남성우월주의 암시 등도 지적되는 문제점이다. 특히 음악 미술 등 학생들의 정서와 밀접한 교과서는 지나치게 서구 위주로 구성돼 있어, 이것이 ‘뉴키즈’ 소동 등의 잠재적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학생들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교과서는 바람직한 미래 세력을 육성하는 경전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만드는 측과 비판하는 측이 교육목표의 언어적 표현에는 일치하면서도 ‘바람직한 교육’의 내용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엇갈리고 있는 이상 교과서 논의는 언제나 현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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