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부처님 먹칠한 검은 돈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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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대 이전비 유용 사건 / 2백27억 행방 묘연…군 · 검 태도 석연찮아

 전국불교운동연합 지선 스님의 표현을 빌리면 이 ‘사건’은 “우리나라 불교 1천6백년 역사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추악한 비리”이다. 민주당 정대철 의원은 “검찰 창립 이래 이처럼 수사가 불투명하게 진행된 일도 드물 것이다”라고 말한다. 불교와 검찰의 역사까지 들먹여지는 이 사건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다름아닌 청우건설 조기현 회장의 상무대 이전 사업비 유용 사건이다.

 광주항쟁을 기리는 시민공원을 조성하기위해 광주와 김해에 있는 제병합동교육본부와 각종 군사학교를 전남 장성으로 옮기는 상무대 이전 사업은, 88~95년 5천8백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이다. 청우건설은 그 중에서 1천5백억원 상당의 공사를 따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방부는 청우건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계속 공기를 어기고 노임을 체불해 민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무대 이전 사업은 지난해 12월28일 발족한 국방부 특명검열단(특검단 · 단장 장병용 중장)의 주요 감사 대상에 포함됐다.

 1월27일 특검단은, 조회장이 공사 선급금 6백58억원 중 2백23억원을 유용했으며, 국방부 실무자인 정석용 대령과 임명용 중령에게 뇌물을 줬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은 건설업자와 국방부 실무자들이 저지른 단순 사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민주당 정대철 의원이 2월25일 국회 국방위에서 조회장이 유용한 돈의 일부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정의원은 국방위에서 “조회장이 유용한 2백23억원 중 80억원은 지난 대선 직전 불교계 지원을 위해 동화사 건립기금으로 내놓았고, 40억원은 정치자금으로 정부 · 여당에 전달했으며, 10억원은 그가 착복했다”라고 주장했다. 정의원은 이와 함께 “수사 과정에서 특검단이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은폐했다”라고 덧붙였다.

 정의원의 국방부 질의 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이 불교계였다. 2월26 전국승가회 회원들이, 2월27일 대한불교조계종 혜종원 원장 홍도관 스님 등 6명이 잇달아 정의원을 방문해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이번 기회에 정치 스님들을 불교계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재야 불교계의 성명도 잇따랐다.

 3월4일 국방부 특검단장 장병용 중장은 정의원을 방문해 “특검단이 조기현 회장의 유용 내역을 밝혀냈다는 정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해명했다. 특검단이 민간인을 수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검찰에 이첩했다는 얘기였다. 장단장은 또 조회장이 유용한 액수는 추가로 밝혀진 4억원까지 모두 2백27억원이라고 수정했다. 한편 검찰은 출입기자들에게 한 비공식 발표에서 “조회장이 유용한 액수는 1백35억원이다. 횡령 혐의로 구속했기 때문에 횡령한 액수만 밝히면 되는 것이고, 그것의 사용처까지는 조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지금까지 수사에서 정치권으로 돈이 흘러간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3월7일 정의원을 위원장으로 하여 의원 9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민주당은 일단 당 차원에서 조사를 진행한 뒤 결과에 따라 국정조사까지 요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처음 청우건설이 공사를 수주하게 된 경위에서부터 나중 비리가 밝혀지기까지 모든 과정이 의혹투성이이다. 93년 도급순위 1백위인 청우건설이 어떻게 1천5백억원짜리 공사를 따낼 수 있었느냐 하는 것부터가 의문이다. 보통 건설업체의 단위 공사 도급액은 전년도 실적의 50%를 초과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청우건설의 91년 도급액은 4백74억원, 92년은 7백24억원, 93년은 6백75억원에 불과했다. 아무리 성장세에 있는 회사라고 해도 5백억원이 넘는 공사를 따내기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또한 청우건설은 대통령 선거 직전인 92년 10월 선급금으로 모두 6백58억원을 받았는데 이는 93년 말까지의 총공사에 대한 대금 8백32억원의 80%에 가까운 액수이다. 공사를 시작하자마자 80%의 선급금을 받는다는 것도 건설공사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 · 검, 유용 내역 안 밝혀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국방부 특검단과 검찰은 조회장이 유용한 액수만 밝히고 내역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유용 내역도 모르면서 총액은 밝힐 수 있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유용 액수에 대한 발표도 들쭉날쭉이다. 특검단은 처음(1월28일) 유용 액수가 2백23억원이라고 했다가 나중(3월4일)에 4억원을 덧붙여 2백27억원이라고 고쳐 발표했다. 어째서 4억원이 불어났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검찰은 조회장이 유용한 액수가 1백35억원이라고 발표했다. 특검단 발표액과는 무려 92억원이나 차이가 난다. 어째서 이렇게 서로 다른지 검찰은 밝히지 않고 있다.

 전국불교신도회 회장이기도 한 조회장이 유용액 중 80억원을 대구 동화사 통일대불건립기금으로 내놓았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이 부분은 검찰에서도 출입기자들에게 시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돈이 동화사에 전달되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동화사 대불 건립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대불 건립 비용은 모두 50억원 남짓인데 그 중 20억원은 정부 보조금, 20억원은 대구 대불후원회 지원금, 나머지는 신도들의 시주로 충당했다”고 주장한다. 조회장이 낸 돈은 한푼도 대불 건립 비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진상조사위는 “조회장이 낸 돈은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님을 통해 대선 당시 반YS 정서를 무마하기 위한 선거자금으로 활용됐다”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 조계종 총무원측에서는 아직 아무런 공식 논평을 하지 않고 있다.

 조회장이 구속된 뒤 청우건설은 우성건설(회장 최일호)로 넘어갔다. 조회장이 우성건설 부회장 최승진씨에게 40억원을 빚졌기 때문이다. 최부회장은 전국불교신도회 부회장이다. 우성건설은 국방부에 조회장이 유용한 금액 중 1백88억6천만원을 변제하고 상무대 이전 사업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변제 액수를 어떻게 계산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특검단이나 검찰이 얘기하는 유용 액수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 관련 증거 없어
 이 사건을 처음 터뜨린 정대철 의원은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여러 계통의 제보자들로부터 들은 정보를 토대로 하여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됐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에게 정보를 준 사람들이 책임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만큼 이 사건의 진상이 자기 주장과 거의 맞아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사건의 은폐 · 축소를 위해 청와대측이 무리수를 둔다고 비난한다. “사건이 커진 뒤 청와대측에서 몇 차례 대책회의를 열었으며 관계 기관에 정보 누출 경위와 정대철 개인에 대해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김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벌어진 일이라 그냥 덮어두고 넘어갈 생각도 있었으나 저쪽(청와대)에서 비신사적으로 나오는 이상 진상을 끝까지 밝혀내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민주당 주장처럼 조회장이 유용한 액수 중 상당 부분이 정부 · 여당,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대통령의 선거진영으로 흘러들어갔는지는 확실치 않다. 불교계 사정에 밝은 사람들 중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지난 대선 때 조계종 수뇌부가 겉으로는 김대통령을 지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돈거래를 할 만큼 긴밀하지는 않았다는 얘기이다. 실천불교 전국승가회의 법안 스님은, 대선 직전 조계종 수뇌부와 김대통령 진영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선 때 불교계를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서석재 전 의원도 공 · 사석에서 5 · 6공 때부터 양지만 지향해온 조계종 수뇌부를 자주 비판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국방부와 검찰의 태도는 석연치 않다. 뭔가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족하다. 사건 관련자가 조회장과 국방부 실무자만이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정치권이 됐든 불교계 인사가 됐든 광주의 한과 부처님의 얼굴을 팔아먹은 자들의 정체는 밝혀야 한다.
文正字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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