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보도인가, 언론탄압인가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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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서버》“청와대 이권개입, 비자금 조성”보도 법정으로



청와대 정무비서관 염홍철씨가 지난 3일 월간 《옵서버》발행인 조원민씨와 이잡지에 글을 기고한 <한겨레신문>정치부 곽병찬 기자를 명예훼손을 이유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그동안 일반인이나 연예인이 신문기사나 잡지사를 고소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고위 공직자가 기사를 문제 삼아 검찰의 문을 두드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곽기자가 쓴 기사는 특정인의 사생활을 폭로한 단순한 흥미 위주의 내용이 아니라 노태우 대통령 임기 말기에 잇따라 터지는 의혹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한 것이어서 특히 주목된다.

곽기자는 《옵서버》 8월호에서 정보사터사기 등 일련의 의혹사건을 노대통령의 퇴임 후 비자금 조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곽기자는 “말기적 총력부패 현상”의 하나로 국내의 유슈한 종합병원 산부인과 의사가 지난 2월 청와대 과장급 관계자에게 5억원을 주고 부동산 형질변경을 시도하다가 그 관계자가 형질변경될 땅의 절반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는 예를 들었다. 곽기자는 익명을 쓴 그 산부인과 의사의 말을 빌려 “과장급이 그 정도니 비서관들이나 다른 고급 공무원들은 어떻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노대통령과 함께 퇴진할 가능성이 높은 청와대 비서관 가운데 상당수가 이처럼 이권개입에 혈안이 되고 있으니 이들을 거느라고 있는 사람은 어떻겠느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라고 썼다.

곽기자는 또 “민자당 경선 과정에서 김영삼 대표가 노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을 음양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이같은 노태우 대통령의 약점을 잘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소문이 야당가에 파다하게 퍼져있다"고 소개했다.

곽기자는 5공 때부터 전통적으로 이용돼온 비자금 조성방법은 대지주 소유 토지나 국공유지를 형질변경시켜 중간에서 돈을 챙기는 것인데, 6공 들어와서는 대상 토지가 고갈되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봤다. 그래서 도심 군부대터 토지가 주로 말썽을 빚고 있으며 경부고속전철?제2이동통신 등 대형 이권사업들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책사업 추진을 이권개입으로 오도”

곽기자는 이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초대규모 이권사업의 문제점들을 이모저모로 지적하고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최근에 추진되는 각종 이권사업과 의혹사건의 배경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고 끝맺었다.

“구체적으로 어디 어디가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이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직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의 명예를 손상하는 악의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만약 이같은 허위 기사를 읽은 국민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불신하게 된다면 이는 국가적인 불행이다.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려 국민의 불신을 씻기 위해 법에 호소하기로 했다.”

곽기자 등을 고소한 염홍철 비서관은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 언론이 허위 사실을 보도할 때는 과거처럼 힘으로 해결하려고 할 게 아니라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철저하게 맞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씨는 기사내용 중 청와대 비서관들을 가장 분개하게 만든 것은 “상당수의 청와대 비서관들이 이권개입에 혈안이 되고 있다”라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신빙성도 없는 청와대 과장급의 비리를 빌미로 청와대 비서관 모두를 싸잡아 부패 공직자로 몰 수가 있느냐”하는 것이다.

“현재 청와대에서 부동산 관련 민원을 다루는 과장급은 한명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기사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곽기자가 법정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해명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염씨는 부동산의 형질변경 등에 청화대 직원이 개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부동산 형질변경은 기본적으로 건설부 소관이다. 건설부도 그들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처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다음에야 추진한다. 게다가 최종 허가권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다. 청와대 과장급 정도가 좌지우지할 여지가 없다.”

염씨는 노대통령의 퇴임 후를 대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형 이권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업들은 대부분 지난 정권 때 검토되고 결정된 것이다. 국책사업을 사사건건 그런 식으로 색안경을 쓰고 보면 곤란하다”며 곽기자의 기사는 모든 점에서 상식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염씨의 주장은 결국 청와대측이 허위보도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하는 언론을 제재할 방법을 강구하다가 과거와 같이 힘으로 통제하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판단으로 ‘법정투쟁’의 길을 택하게 됐다는 것이?.

하지만 이번에 피소된 《옵서버》측의 주장은 이와는 딴판이다. 그들은 최근 각족 의혹사건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언론에 대해 청와대측에서 비상수단을 택한 것으로 본다. 즉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언론데 단단히 제갈을 물릴 속셈이라는 주장이다.

《옵서버》편집부장 김영모씨는 “책이 나오기 하루 전인 7월 20일 공보처측에서 전임 편집부장에게 6차례나 전화를 걸어왔다. 처음에는 ‘전면 삭제하라’ ‘배포를 중지하라’는 등 강경하게 나오다가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자 나중에는 ‘문장을 순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그쪽이 요구하는 사항을 전체 문맥이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수용한 뒤 인쇄해 배표했다”고 주장했다.

“공보처 요구 최대한 들어줬는데…”

그는 또 공보처측 요구 사항을 나름대로 최대한 받아들였기 때문에 청와대측에서 고소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염비서관이 고소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책이 배포된 지 열흘도 더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청와대측에서 고소를 한 까닭은 자명하다. 대선 정국을 맞아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우리를 택한 것이다. 우리 잡지는 다른 잡지처럼 일간지를 끼고 있지도 않고 규모도 작으니까 적장한 상대로 생각했을 것이다.”

《옵서버》측에서는 곽병찬 기자 개인에 대한 청와대 비서관의 ‘원한’도 사태가 악화되는 데 크게 한몫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곽병찬 기자는 올해 《옵서버》3월호에서 ‘권력개편 앞둔 청와대 내 동요’라는 기사를 통해 “청와대 비서진들이 14대 총선을 앞두고 이 선거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좀더 안정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고 쓴 바 있다.

사실 정부가 힘으로 언론을 통제할 생각을 버렸다는 얘기는 요즘 보면 괜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번 《옵서버》의 경우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공보처측에서는 책에 실린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인상이 짙다고《옵서버》측은 주장한다. 《옵서버》의 이인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공보처측에서는 전화를 걸어와 기사 내용 중 구체적인 부분을 지적하면서 고치거나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엄연히 헌법에서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의 공보처라는 곳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 이는 기사의 진위 여부를 떠나 도저히 묵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옵서버》기자 일동은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손주환 공보처 장관의 퇴임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또 ‘전두환 한풀이 나섰다’ ‘정호용 충격고백-노태우와 정치 단교’라는 특집기사를 게재한 《월간중앙》8월호가 정부측의 압력으로 재판발행과 신문광고를 못한 일이 있다. 중앙일보사 출판국 간부들은 이일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여러 곳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앞서 《월간조선》도 지난 3월호에 노대통령의 정치자금 규모를 추정한 기사를 실었다가 외압에 못이겨 이미 인쇄한 16만부를 파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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