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 혼성군 파병하자”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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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총리 특별고문 가세 히테야키…“자위대 파견은 군국주의와 무관”



가세 히데야키(加瀨英明)의 명함 직함란은 비어 있다. 그저 일본 도쿄도에 있는 자신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만이 적혀있을 뿐이다. 그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비롯한 역대 총리의 특별고문이자 국제문제 상담역이었다. 현재는 유엔평화유지활동(POK)에 참여할 예정인 자위대원 교육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안전보장협의회 이사장이자 마쓰시타정경숙의 평의원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89년에 번역 출간된 《恨의 한국인, 황송해하는 일본인》(브래태니커 출판국 펴냄)을 비롯해 주로 외교문제를 다룬 30여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다. 직함이 없는 명함은 그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의회를 통과한 유엔평화유지활동 법안의 시행령이 일본 각의에서 의결되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오후 그를 만나 이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그는 지금까지 70여회나 한국을 방문하여 고위층과 교분을 맺어온 이른바 ‘지한파 지식인’이다. 그와 동행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그의 이번 방한은 일본에 비교적 덜 알려진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후보를 일본 각계에 널리 소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안전보장협의회란 어떤 단체인가. 민간단체인가.

아니다. 마리야마 고리는 방위청 차관에 의해 설립된 방위청 자문기구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 단체가 유엔평화유지활동에 파견될 자위대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이 협회에 방위청 차관이 소속돼 있어 그의 요청으로 강사를 보내 자위대원들에게 안보에 대해 강의할 뿐이다.

일본 자위대의 파병에 대해 주변국들은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징조라고 보기도 한다.

일본만 유엔평화유지활동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캄보디아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불가리아 등 11개국이 유엔평화유지군(PKF)에 참여할 예정이다. 일본은 12번째로 참여하는 것뿐이다. 캄보디아 정부도 일본의 유엔평화유지군 파병을 거듭 요구해왔다. 필리핀 국방부도 일본 자위대가 캄보디아에서 활동할 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했다. 또 일본 자위대가 파견되더라도 몇백명에 불과할 것이고 세계평화를 기치로 내건 유엔의 이름 아래 가는 것이다. 명령권도 유엔이 가진다. 평화협정을 위해 캄보디아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인데, 그 때문에 군국주의가 부활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심지어 자위대 일각에서도 파병에 대해 바판적이라는 보도가 있는데.

그럴 리 없다. 일본의 파병문제가 지상에 등장하는 곳은 중국과 한국 뿐이다. 한국와 중국, 대만과 필리핀만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일본의 외교를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본다. 일본 신문의 일부가 유엔평화유지활동 참여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적은 있으나 정부 당국자가 반대한 일은 없다.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일본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인가.

65년 한?일국교정상화조약 체결 당시 한국의 학생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한국이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지금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인가. 일본이 유엔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논리는 당시와 비슷하다.

그 나라는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얘긴가.

그렇다. 네 나라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이 도와준 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 지금 올림픽이 열리고 있고 여기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만일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나라가 독립할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 네 나라 가운데서도 일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하는 얘긴가.

캄보디아의 시아누크공과도 친분을 맺고 있다. 그는 일본 자위대의 파병을 몇번이나 간청했고 일본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마르코스 대통령이 필리핀을 통치하던 시절 내가 그곳을 방문하면 그와 부인 이멜다 여사가 직접 일본군가인 ‘애국행진가’를 부르며 환영해주곤 했다.

일본이 주장하는 이른바 ‘국제적 공헌’이 반드시 군대파견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내가 만난 외국의 많은 저명한 학자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일본이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1인단 국민총생산(GNP)은 이미 미국을 앞질렀지만 미국의 인구가 일본 인구의 2배가 되므로 1인당 GNP도 2배가 넘어야 미국을 앞지른다고 볼 수 있다. 2004년까지는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은 1달러당 1백20엔대이지만 2000년이 되면 1달러당 90엔으로 엔화가 평가절상될 것이다. 일본이 10여년 후에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이 미국이 했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경제대국이 된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일본에 많은 역할을 요구해왔다. 그래서 일본은 국제기구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왔지만 미국은 ‘수표외교’라는 비난만 했다. 파병도 우리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원해서 하는 것이다. 금년 6월 유엔평화유지활동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것도 국제정세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란?이라크전 당시 이란이 페르시아만에 지뢰를 깔았을 때, 미국이 나카소네 내각에 소해정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카소네 자신은 소해정 파견에 적극적이었으나 고토다 관장상의 반대로 파견이 늦춰졌다. 당시 나는 나카소네의 고문으로서 군대의 파견을 주장했다. 그런 위험한 지역에는 위계가 잘 잡힌 군대가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선 일본이 소해정을 파견하면 큰일이 난다고 여겼지만 아직까지 별일 없었다. 캄보디아에 자위대가 파견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엔평화유지활동에 굳이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은 캄보디아가 아직도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군의 포격이나 총격이 계속되는 위험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민간인을 보내는 일은 위험하고, 이들을 훈련시켜 보내기엔 시간이 없다. 그래서 무장한 자위대원을 보내려는 것이다. 건설업자나 민간인이 가서야 되겠는가.

한국의 유엔평화유지활동 파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환영한다. 만일 일본 자위대의 파병에 대해 한국 국민이 그렇게 불안해 한다면 독일과 프랑스처럼 한 ? 일 혼성군을 만들어 파병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양군 사이에 친목을 도모한다면 첩첩이 쌓인 오해도 풀릴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아이디어를 양국 고위층에 내볼 작정이다.

최근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비슷한 ‘아시아안보협력회의’(CSCA)구상을 발표해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그 구상이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중국은 지금 엄청나게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중국의 공식발표에 따르더라도 89년부터 오래 5월까지 96% 증가했다. 실제로는 더 될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최초로 이 지역에 대한 안보문제가 거론됐다. 그동안 이 지역의 유일한 적은 베트남과 그 배후에 있는 옛 소련이라고 여겨왔는데,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남아 각국이 베트남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이 나라들이 중국의 군비증강에 대비해 미국으로부터 F16이나 F18을 사들이려면 미국 국회의 동의를 거치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러시아로부터 미그29를 사들이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남아지역에서 군비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실제로 이 지역은 지난 1년 동안 무기 구입량이 사상 최초로 중동지역을 앞질렀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해 유럽에서와 같은 집단안보구상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군비증강에 대응해서 일본도 군비증강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군비증간은 곡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하지만 일본 자위대의 수는 15만명에 불과하고, 해군력은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재래식 무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핵무기를 가졌느냐이다. 중국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북한도 개발중인데 일본은 핵무기가 없다. 일본에는 비핵 3원칙이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국회가 열릴기만 하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이 평화주의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곧잘 나오지만 말이다. 미국의 핵 억지력을 신뢰하는 한 일본은 핵무기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막대한 양의 플루토늄을 도입하는 것은 핵무장을 위해서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당신의 그 말은 미국의 핵무기를 믿지 못할 때 일본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인가.

미국이 핵우산으로 일본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면 일본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이미 핵무장을 한 상태에서 북한이 핵을 가진다면 미국의 핵을 신뢰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느 것은 미국의 핵 억지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역의 안전을 위해 핵무기 보유가 유리하다고 본다. 중국에 핵무기가 없었다면 중 ? 소전쟁이 발발했을 것이다. 중국과 인도도 서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일본이 핵무기를 가졌더라면 아시아의 안전은 더욱 보장됐을 것이다. 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게 되면 한국도 핵무기를 가지는 게 전쟁을 억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에 대응해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일본은 핵무기를 보유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일본은 당연히 가지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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