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을 지배하는 ‘상품 미학’
  • 백지숙 (미술비평연구회 회원)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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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 그 쓰레기더미에는 상품의 포장재와 일회용 상품이 그득 쌓여있다. 도발적인 포장과, 내구재마저 대체해버린 1회용 상품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 신경망을 끊임없이 그리고 다양하게 자극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현대적 기질에 기생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현상은 빠른 소비와 재생산을 추동하는 경제력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하우크의 상품미학은 정확히 위와 반대방향으로 문제를 밟아간다. 먼저 생산의 문제, 즉 자본의 이윤추구가 기초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품의 형태로부터 출발한다. 그 상품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소비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때 상품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하우크는 상품미학에서 찾는다.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도록 상품 속에 각인된 미에 매혹을 느끼면서, 인간의 지각방식은 변조당한다. 하우크가 취하는 접근 방식의 방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상품미학은 인간의 취미를 형성해 왔던 순수예술의 역할을 이어받은 상품미의 대량생산예술-디자인, 포장, 광고-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하여 이미지 해독에 나선다.

가령 ‘포카리스웨트’라는 상품을 생각해보자. 이 상품은 포카리스웨트라는 상품명 이외에 일반 명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는 기호품들이 실제 사용가치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에,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매자의 감각을 설득해야 한다는 측면과 연관이 있다. ‘포카리스웨트’는 ‘건강’을 위협하여-알카리성 이온음료-밍밍한, 무언가 수상한 맛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한다.

실질적으로 지시대상이 없는 이 상품 주위에는 텅 비어 있는 공간, 따라서 언제라도 대중의 행위를 유도하는 미끼들로 메울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공간의 폭은 상품의 다지안이나 포장과 달리 상품의 몸체와 분리되어 매체만 있으면 어디나 떠돌 수 있는 광고의 형태에서 한층 증폭한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포카리스웨트의 캔 포장은 공간 전체로 확산되어 있다. 포장과 같은 색조로 디자인한 ‘포카리스웨트의 세계’속에서 청순한 소녀가 마시는 것은 연애감정 그자체-‘설레이는 내마음=포카리스웨트’이다. 포카리스웨트는 광고 속에서 단순한 음료수가 아니라 사랑과 행복을 약속하는 징표인 것이다. 흰 배경에 ‘순결한’젊은 남녀가 등장하는 이 광고는 건강, 사랑, 행복에 더해 무엇보다 그 순수함을 통하여, 오염된 현실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자기 이미지를 구매자에게 약속한다.

그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의 때가 끼기 전에 재빨리 새로운 이미지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상품의 미적 혁신은 이전의 이미지에 대한 노화와 폐기를 동반하고, 이 폐기처리한 이미지들은 없어지지 않고 우리 감성들 안에 쓰레기로 차곡차곡 쌓인다. 아름답고 유혹적이며 달콤한 모습을 한 그 이미지 뒤의 욕망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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