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식품 수입 국민 배앓이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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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산 식품의 수입량이 최근 폭증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통관검사마저 허술하게 이루어지는 등 수입식품의 안전도 관리에 허점이 많다. 특히 마구잡이로 들여오는 수입식품 중에는 농약으로 ‘코팅’하고 각종 유해물질로 신선도를 ‘가장’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외국에서라면 폐기처분할 식품마저 버젓이 팔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사저널》은 ‘공해추방운동연합’(대표 崔冽)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대표 金淳)과 공동으로 ‘가장 해로운 수입식품 10가지’를 골랐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이 식품들은 냉동감자 레몬 밀 바나나 오렌지농축액 옥수수 쇠고기 자몽 탈지분유 콩이다. 품목수는 10가지에 불과하지만 수입물량은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 1천3백50가지의 외국농산물 총 수입물량의 절반이 넘는다. 이 식품들은 국내외에서 이미 그 유해성으로 인해 사회문제화된 일이 있거나 아직 문제가 된 적은 없다 할지라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옥수수는 강력 발암물질 함유 가능성
  수입농산물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밀 콩 옥수수 등 곡물이다. 두 단체는 옥수수가 썩을 때 생기는 곰팡이 ‘아플라톡신 B1’은 강력한 발암물질로 이 물질이 15ppb 함유된 사료를 쥐에 투여하여 15~18개월 지나면 1백% 간암에 걸린다. 따라서 연간 6백만톤이 수입되는 옥수수의 경우 3분의 2가 사료용이라고 해도 먹이사슬에 의해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태국에서 수입한 옥수수에서 아플라톡신이 검출되어 사회가 떠들썩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정부당국자는 “아플라톡신이 검출된 4만톤의 옥수수를 오염되지 않은 옥수수와 섞어 공급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기상천외한 발표를 했었다. 독극물이라 해도 물을 타마시면 인체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논리였다. 현재 잔류 허용기준치는 10ppb 이하이다.

  베트남전쟁 때 정글지대에서 고엽제로 성가를 높였던 ‘다이옥신’은 그 독성이 청산가리의 5천~1만배에 달한다. 이 다이옥신 함유 가능성이 큰 수입레몬도 해로운 수입식품으로 판정받았다. 지난해 8월 일본에선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레몬에서 0.001PPM의 다이옥신이 검출되어 사회적 파문이 일어난 바 있다.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崔冽 대표는 “한국도 같은해 미국으로부터 레몬을 수입했다”면서 세계의 과일가격을 좌우할 정도로 규모가 큰 미국의 ‘델몬트’와 ‘도울’ ‘유나이티드 프루트’ 그리고 일본의 ‘스미토모’ 회사의 경우 물량확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수확 전에 뿌려진 농약은 비에 씻기거나 상당량 자연분해되지만 수확 후 저장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뿌려진 농약은 그대로 농산물에 남아 있다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므로 위험도가 지극히 높다. 88년 이래 단계적으로 들어오는 2백42개 수입개방 품목 중 과일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88년 3.1%, 89년 4.1%, 90년 5.5%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도입량이 폭증세를 보이고 있는 바나나의 경우 다른 과일과는 달리 서울 변두리 지역 길가 리어카에서도 ‘1㎏당 1천원’에 판매되어 소비자들이 쉽게 사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수입식품으로 뽑혔다. 전국민이 쉽게 바나나를 사먹을 수 있다는 것은 바나나에 함유된 발암물질 ‘메틸 브로마이드’가 소비자 가까이에 와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수확 후 농약사용의 필요성이 거의 없는 데 비해 미국의 경우 콩에는 8가지, 밀에는 20가지의 농약사용을 허용하고 있어 콩과 밀도 나쁜 수입식품으로 뽑혔다. 국내에 수입된 콩이나 밀을 조사하여 유해물질이 검출된 사례는 아직 없으나, 밀을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밀에 쓰이는 농약 ‘렐단’에 관한 잔류허용기준치가 없어 언젠가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알라’는 잔류허용기준치가 없었으나 89년 6월의 ‘자몽사건’을 계기 삼아 기준치를 정하는 데 성공(시행일 92년 1월1일)한 일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당시 여성지마다 앞을 다투어 ‘자몽요리법’을 특집으로 엮어낼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자몽에서 발암물질인 알라(농약 ‘다미노자이드’의 상품명)가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수입품이니까 국내 농산물보다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소비자들의 맹신풍조에 일대경고를 가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정부당국에 해명을 요구했고, 보사부에서는 보건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가 나온 후 보사부는 “알라가 검출되지 않았다”면서 민간소비자단체의 문제제기가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알라 잔류허용기준치가 정해진 것은 수입자몽의 알라 잔류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간이식품점에서 파는 손가락처럼 길쭉한 모양의 감자튀김(프렌치 프라이)은 수입 냉동감자로 만든 것이다. 냉동감자의 경우 유해성분은 CIPC로 미국의 허용기준치가 50PPM인 데 비해 일본은 0.05PPM으로 무려 1천배나 차이가 난다. 한국에는 기준이 없다.

  수입식품의 경우 기준치가 없다가 일단 사고가 발생한 후 ‘불끄기식’으로 기준치가 제정되는 경우도 있다. 방사능오염이 문제가 되었던 탈지분유가 이 경우에 속한다. 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핵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가 났을 때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식품 및 가축의 방사능오염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농작물을 폐기하고, 독일의 주부들은 장보러 갈 때 ‘방사능탐지기’를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체르노빌 사고 후인 87년 1월 네덜란드로부터 수입한 탈지분유가 부산에 도착했다. 당시 부산에 내려갔던 보사부 식품과 李楹씨는 “문제가 된 탈지분유를 수거하여 대덕에너지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한 결과 방사능 검출량이 24Bq/㎏에 불과했다. 30Bq/㎏까지는 공기 중에도 있을 수 있는 양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동국대 盧完燮 교수(식품공학과)는 “공기 중에서 검출될 수 있는 방사능과 핵에서 유출되는 방사능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자연방사능은 체내에 축적되지 않는 데 비해 식품에 오염된 방사능은 먹이사슬을 통해 최고 10만배 이상 확대 농축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필리핀은 방사능 허용기준치 22.2Bq/㎏ 이상 검출된 네덜란드산 분유를 수입금지한 바 있다.

  수입쇠고기와 오렌지농축액은 내일의 안전을 염려한다는 뜻에서 나쁜 수입식품으로 꼽혔다. 수입쇠고기와 수입돼지고기에 잠재된 위험요소는 성장호르몬제와 항생물질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사육된 가축의 고기라는 데 있다. 유럽공동체(EC)에서는 89년 1월 미국에서 수입한 쇠고기에서 성장호르몬제가 다량 검출되어 그해 2월부터 수입 금지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7월 대만에서 수입한 돼지고기에서 항생물질인 설파메타진이 허용치의 12배가 넘는 1.22PPM 검출되어 반송조치한 적이 있다.

  오렌지농축액은 앞에서 지적한 유해물질 다이옥신 외에도 ‘방사선照射’식품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방사선조사는 방사선 폐기물에서 이온화시킨 방사선을 쪼여 식품을 살균하는 방법으로 원료상태에서는 물론 포장된 상태에서도 살균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방사선조사를 할 경우 일시적으로 분자구조가 변하기 때문에 2~3일 이내에는 방사선을 쪼였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의 기간이 지나면 전연 감지할 수 없다. 방사선조사는 미국식품의약국(FDA)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 ‘안전하다’고 판정했으나, 미국의 경우 이 판정에 부정적인 과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메인주 뉴욕주 뉴저지주 등 3개 주에서는 사용을 금지했다.

“유해물질 잔류허용기준치 정해야”
  서울여대 宋寶炅 교수는 “식품 안전성에 대한 전세계의 규제는 상품의 효율적 취급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고려되고 있다. 세계소비자기구는 이러한 경향을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강제력을 띨 수 없는 만큼 결국 수출국의 도덕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전체 사망자 중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87년 17%, 88년 18%, 89년 19.4%, 90년 20.6%로 해마다 약 1%씩 늘어나고 있다. 수입식품 유해론의 가장 큰 근거가 되고 있는 발암물질은 그래서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끈다. 소비자의 안전은 누가 지킬 수 있는가. 이화여대 李瑞來 교수(식품영양학)는 “소비자단체·산업계·정부당국 등 입장이 다른 3자가 한자리에 모여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의 잣대로 우리의 식생활습관에 따른 유해물질의 잔류허용기준치를 정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덧붙인다.

  한국의 배를 수입해가는 미국에서는 농무부 직원이 우리나라에 와 배꽃이 필 때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눈’으로 재배과정을 현장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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