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조치’는 더 강력했지만
  • 이근직(서울시립대교수·경제학)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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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8일 정부는 부동산투기 억제대책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6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매각토록 하는 것이었고, 이에 호응하여 그 이틀 후인 10일, 10대재벌들은 모두 1천5백70만평의 토지를 자진하여 매각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번 조치와 똑같은 조치가 이미 있었다. 10년 전, 서슬이 시퍼렇던 5공 초기인 80년 9월27일 발표된 ‘계열기업군 부동산규제조치’가 그것이다. 이 조치에 의하여 1천여기업·기업소유주 및 임직원들로부터 총 8천5백만평의 비업무업무용 토지 및 개인소유 토지를 신고받았다. 그후 2년동안 5천9백만평을 매각토록 하였던 것이다.

 10년 전의 9·27조치는 기업소유의 부동산만이 아니라 기업의 소유나 임직원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5·8조치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그리고 실제 매각된 토지의 면적도 5천9백만평으로 이번에 10대재벌이 팔겠다고 내놓은 땅 1천5백만평의 4배에 달한다.

 이렇듯 강력했던 9·27조치가 우리나라 전체의 토지투기문제를 해결하였는가? 하다못해 재벌들의 토지투기만이라도 9·27조치로 잡혔는가? 87년부터 재벌들이 주역이 되어 토지투기가 재연, 오늘에 이른 사실은 9·27조치가 우리나라 토지투기 근절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하물며 9·27조치보다 내용이 훨씬 미흡한 이번 5·8조치가 우리사회의 토지투기를 근절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이번 조치는 단지 토지투기를 잠시동안만 잠재울 뿐 토지투기의 재연을 결코 방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재벌기업 소유 토지의 강제매각만이 아니라 임야매매증명제도의 도입, 토지투기특별단속반의 설치, 업무용토지 판정기준의 강화, 재벌기업의 신규 토지매입 금지 등 최근 정부가 내놓고 있는 토지투기 억제대책들은 대부분 정부의 행정력을, 구체적으로는 공무원들의 권한을 동원하는 방법들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규제와 단속은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함으로써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막으며, 공무원들에게 자의적인 권한을 줌으로써 부정부패의 소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규제와 단속은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도둑 1명을 경찰 10명이 잡을 수 없는데 어떻게 도둑 10명을 경찰 1명으로 막을 수 있는가?

 토지투기가 가장 수익률이 높고 안전한 재산증식 수단인 이상 토지투기는 결코 규제만으로는 잡을 수 없다. 땅값이 올라서 번 돈을 세금으로 대부분 환수하여 땅투기로 돈을 벌 수 없도록 제도를 고치면 아무도 쓸데없이 땅을 사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토지매매계약서에 기재된 거래금액을 양도소득세(기업의 경우에는 특별부과세)의 과표로 그대로 사용하고, 업무용토지를 비롯하여 비영리단체 소유 토지·목장·과수원·주차장 등에 현재 인정되고 있는 양도소득세의 모든 면세조항을 철폐하면 된다.

 기업의 토지를 업무용과 비업무용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빈 땅을 그대로 놔두면 유휴지라 해서 비업무용으로 분류되고, 거기에 하물들을 쌓아두면 하물하치장이라 해서 업무용토지로 분류되는데 어떻게 비업무용과 업무용을 정확히 구분 할 수 있는가?

 땅값이 올라서 얻는 이득은 사회에 기여하기는커녕 반대로 사회의 발전 덕분에 얻어지는 것이므로, 누가 갖고 있는 어떤 땅이든 토지의 매매차익으로 얻는 이득은 전액 세금으로 환수됨이 옳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 땅투기가 돈을 버는 방법이 되지 못할 때문 토지 투기가 근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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