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文玉, 아는 것이 너무 많은가?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6.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찰 조사 미지근” 여론 속에 꼬리무는 국민 의혹… 재야 ‘구명활동’ 잇따라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로 구속된 감사원 감사관 李文玉씨가 구속적부심 심리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 정치권에서까지 쟁점으로 부각되는 등 또다른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43.3%나 된다” “이에 대한 감사가 모재벌의 로비에 의해 중단됐다”는 등의 내용을 언론에 제보,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그가 이번에는 서울시 예산 88억원이 선거자금으로 전용됐다는 등 충격적인 뉴스를 터뜨린 것이다.

  이씨가 지난 23일 오전 11시부터 서울형사지법 항소4부(재판장 金正洙부장판사)심리로 진행된 신문을 통해 진술한 바에 따르면 “88년 11월 서울시에 대한 감사 도중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69억원, 88년 국회의원선거 당시 19억원 등 내무국 행정과 예산 가운데 88억원이 정보비 명목으로 변태지출 된 사실을 발견했으나 상부 지시로 감사가 중단됐다”는 것이다.

  이씨는 또 “당시 수도방위사령관과 서울시 각 구청장에서 5천만원에서 1억원씩 모두 17억원이 변태 지출됐으며 나머지 71억원은 지출내역이 적혀 있지 않았다”면서 “감사중 서울시 간부가 감사반장에게 ‘이 정보비는 대통령·국회의원선거비용으로 들어간 것이니 감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재벌의 비리· 로비 숱하게 폭로
  이밖에 이씨는 문제가 된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실태에 대한 감사뿐 아니라 삼성·선경·현대그룹 등 대기업이 관련된 사안에 대한 감사도 외부(여러 곳이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청와대로 봐야 한다고 대답) 압력으로 중단됐다며 다음과 같은 사례를 폭로했다.

  ● 지난해 9월 서울시내 각 기업체 대표의 친인척 중 연소자에 대한 증여 여부를 감사할 당시 감사계획서에 삼성생명·대우증권이 포함돼 있었으나 결재과정에서 두 회사가 빠지고 이씨 자신도 감사반에서 제외된 적이 있다.
  ● 지난해 11월 중부지방국세청에 대한 감사에서, 선경그룹으로부터 12억원 가량의 법인세를 추징해야 할 만한 사안을 발견했으나 이 그룹 회장이 노대통령과 사돈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감사를 중단했다.
  ● 지난해 여름 포항시에 대한 정기검사를 실시하려다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라는 이유로 로비를 해 감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 88년 11월 현대그룹에 대한 감사 도중 현대가 우량회사를 비우량회사에 합병하면서 합병 전 비우량회사 주식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으로 약 2천5백억원의 거래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됐으나 ‘신중검토’의 명분으로 처리를 보류했다.
  ● 80년 부정축재자 환수재산 1천1백억원에 대한 감사 당시 1백억원 이상의 평가차액이 났고 또다른 1백억원 이상은 부정축재자 본인에게 되돌려졌으며 21억원 가량은 사용처도 밝혀지지 않은 채 없어졌으나 그후의 국정감사에서는 21억원만 평가차액이 난 것으로 슬쩍 넘어갔다.
  ● 삼성생명은 88년 증권투자로 얻은 2천7백여억원과 배당액 2백여억원 등 총 3천여억원의 이익을 남겼으나 법인세액을 80여억원에 불과해 적정 여부를 검토하려다 상부의 제동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88년 군인공제회가 운영하는 덕평골프장에 대한 감사에서 26억5천만원이 87년 결산서에는 회원환수금으로 장부에 기재됐다가 88년 5월에는 회장 가수금으로 둔갑했고 두달 뒤 사장에게 돌려준 것으로 처리돼 있는 것을 발견, 관계은행에 대한 감사가 필요했으나 상부지시로 자체 감사토록 통보하는 데 그쳤다.

관련기관· 기업 “있을 수 없는 일” 반박
  이씨는 이같은 내용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감사원 간부들이 “삼성은 손대지 말라” “다른 사람은 잘 피해 감사를 하는데 눈치없이 왜 그렇게 물의를 일으키느냐”고 말했다면서 삼성그룹이 감사 때마다 로비를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삼성과 관련된 ‘문제’로 제시한 것은 작년 8월 삼성그룹이 보유한 비업무용 부동산 실태를 감사하던 당시 밝혀낸 것들이라는 것이다.
  이씨에 따르면 용인자연농원에 속한 부동산 4백만평 중 38만평을 제회한 나머지가 삼성그룹 회장 개인 명의로 돼있었고, 중앙 개발이 소유한 골프장 연간수익이 법인 전체 수입의 절반에 못미쳤으므로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간주, 법인세를 산정했어야 했는데도 이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씨의 진술에 대해 서울시는 “양대선거를 치르기 위해 계산한 예산은 20억1천8백만원이며 이는 선거인명부 인쇄비·사무용품비 등 필수 법정경비로 지출됐다”며 선거와 관련, 예산을 불법 유용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 수도방위사령부와 일선 구청에 지원됐다는 자금에 대해서는 각각 “서울시교위를 통해 모금된 방위성금 8천7백만원을 전달한 것” “연말연시 통반장에게 지급되는 보상금·불우이웃돕기성금·올림픽준비지원금을 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사원도 “선경그룹이 SKI(선경 인더스트리)와 선경창고(주) 등에 각각 48억~65억원을 대여, 이에 상당하는 이자를 손금처리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감사에서 지적됐으나 이 대여금이 업무와 직접관련이 없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과세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현대그룹의 기업합병에 따른 자본거래차액 2천5백억원은 법해석상 과세 여부에 논란이 많아 처리가 늦어지고 있을 뿐”이며 “증권투자이익을 감사사항으로 정한 바 없다”고 삼성생명의 증권투자 차액 2천7백억원에 대한 적정과세 여부 문제를 일축했다.

  이밖에 선경그룹은 “대통령과 사돈관계라고 해서 혜택본 것은 하나도 없으며 이를 빙자한 압력 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고, 현대그룹도 “이감사관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또 삼성생명은 “88년 총이익금 3천5백억원 중 순보험료 준비금과 계약자배당금·계약자이익배당 준비금을 뺀 나머지에 대해 정당하게 69억원을 법인세로 신고했다”고 밝혔다.

정치권의 여야공방 예상
  이런 공방 속에서 서울형사지법 항소4부는 24일 이씨가 청구한 구속적부심에 대해 “이유없다”며 기각결정을 내렸다. “이씨의 행위가 사전계획된 비밀누설 행위로 볼 소지가 있는데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구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재판부가 내세운 기각이유이다.

  하지만 이씨의 진술내용이 야권에서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정치문제화할 조짐을 보이고, 이씨가 폭로한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검찰도 “진실성이 의심스러우나 이 문제가 공개적 쟁점이 된 이상 검찰로서도 확인할 필요는 있다”는 공식입장 표명과 함께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대검 중앙수사부는 24일 오후와 25일에 걸쳐 이감사관 및 이씨의 폭로내용과 관련된 감사원 직원 등 관계자(당시 수석감사관 엄하열씨 등 감사원 직원 13명, 국세청 직원 2명, 서울시, 중앙일보, 은행감독원 직원 각1명 등 모두 18명)를 소환, 조사하는 한편 일부 인사와 이씨와의 대질신문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자신의 진술내용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검찰은 25일 이씨의 주장 8가지가 모두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수사 발표에 의하면 이씨가 구속적부심에서 주장한 8건의 비리사례 중 △삼성생명·대우증권의 감사누락 △선경그룹의 법인세 누락 △포항시 감사중단 △현대그룹 합병 과정 의혹 △부정축재 환수금 의혹 등 5건은 이씨가 감사원 직원 등으로부터 들은 내용이고 △서울시 예산 선거자금 전용 △삼성생명 법인세 과소 부과 △덕평골프장 의혹 등 3건은 이씨가 직접 처리했으나 모두 사실과 다르거나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이씨를 공무상 비밀누설죄만 적용, 서울형사지법에 구속 기소하고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종결했다. 같은날 감사원도 해명자료를 통해 이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의 폭로성 발언으로 인한 회오리는 당분간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우선 관련기관과 해당 재벌기업들이 반박자료로 제시한 내용들이 지금까지 제기됐던 의혹을 깨끗이 풀어줄 만큼 명쾌하지 못하고, 이씨가 밝힌 비리 중 몇가지를 모일간지가 조사해서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 검찰이 관련서류를 철저히 조사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민자당의 金東英총무와 평민당의 金令培총무가 지난 25일 국회에서 총무회담을 갖고 서울시의 선거자금 유용 및 재벌기업에 대한 감사중단 압력 등에 대해 국민의 의혹을 풀어줘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은 국회 법사위 소집을, 평민당은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는 등 의견이 맞서 정치권에서의 여야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가친 민주당에서도 이감사관 구속사건과 관련, 安東洙변호사 등 12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했으며 전민련은 26일 오후 1시부터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이감사관 석방촉구 시민 서명운동’을 벌였다.

 한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는 이감사관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변호인단 구성 및 다각적인 구명활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으며, 경실련에서는 6월2일 오후2시~4시 서울과 대구에서 ‘이감사관 석방과 정경유착 규명촉구 시민대회 및 양심의 행진’을 벌일 계획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