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눈물로 웃음 빚는 인생희극”
  • 김문환 (서울대교수·연극평론가) ()
  • 승인 1990.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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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말리극단의 <벚꽃동산>… ‘양식으로서의 사실주의’ 보여

 “체호프의 작중 인물들은 체념의 징후를 띠고 산다. 현실적인 만남에서의 행복을 단념한다. 이러한 체념에는 동경과 아이러니가 서로 얽혀 중간치의 태도로 나타난다. 이러한 체념이 형식을 규정하고 아울러 현대극문학의 발전사에서 체호프가 차지하는 위치를 규정해준다.”

  저명한 독일학자 페티 쏜디가 쓴 체호프에 대한 평이다. ‘만남의 단념은 고독’이라는 이러한 평은 그가 체호프의 드라마 주엥서 제일 걸작이라고 꼽은 <세자매>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인 <벗꽃동산>에도 어느 정도 해당된다. 극정 인물들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에 압도된 막간의 시간이며, 폐기된 시간이다. 이 시간에서는 잃어버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지만, 이 경우 그 고향조차 이미 고향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

  <벚꽃동산>의 극중인물들이 몰락해가는 지주라는 점에서 체호프는 러시아□□당국에 의해 사회주의작가로 몰리기도 했지만 소련의 공식기관지 <프라우다>의 평은 오히려 페티 쏜디의 평가를 뒷받침한다. “주인공들은 오랫동안 자신들만을 위한 생활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었고, 결국은 자신들의 조국에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며, 그들이 안주하고자 하는 곳이 아직도 공허하고 비현실적이기만한 세계라는 자신들의 과오를 조국 앞에 드러내고 있다.” 이 평은 도 작품 속의 인물인 만년대학생이 “러시아 전체가 우리의 정원입니다”라는 대사를 “벚꽃동산은 우리의 조국 소련을 시적으로 구현시킨 것이다”라고 뒤집어 해석하고 있다.

체호프의 작품은 한마디로 ‘눈물을 통한 웃음’을 기조로 삼게 되는데, <벚꽃동산>도 작가 자신에 의해 ‘인생희극’이라고 정의된 바있다. 그를 사회주의작가라고 한다 해도, 그의 작품은 결코 노동계급 혁명의 선동·선전과는 거리가 멀다. 이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해방된 하인의 해방되지 못한 의식조차 비판보다는 연민의 정으로 그려져 잇다. 그러기에 그는 표면적인 사실보다는 심리적인 현실을 추구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즉 인간과 사회를 외면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표면을 결정짓는 내면적 동기에 좀더 충실한 편이다. 관객ㄷㄹ에게 <벚꽃동산>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심리묘사를 정확히 소화하는 연출과 연기가 우선돼야 한다. 따라서 사건보다는 심리가 풍부한 그의 세계가 스타니슬팝스키에 의해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초연되었던 것은 지극히 다행한 일이었다. 스타니슬랍스키야말로 ‘왜’라는 심리적 동기를 가장 중시했던 연출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공연이 스타니슬랍스키의 해석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체호프는 이작품을 귀족계급의 몰락을 그린 비극보다는 인생희극으로 연출되기를 희망했고, 이 작품 해석의 권위자로서 이미 고인이 된 연출가 이리인스키는 체호프의 그러한 체취를 온전하게 노출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양식으로서의 사실주의에 충실했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인민배우니, 공훈배우니 하는 칭호가 단순히 黨性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벚꽃동산>을 관람한 소득을 얻었다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양식으로서의 사실주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소득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양식으로서의 사실주의’와 ‘의식으로서의 사실주의’가 혼동되어 불필요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 이루어진 문화교류 중 이 공연을 가장 의의있는 것으로 소꼽고 싶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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