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카르 데스탱 前 프랑스대통령
  • 김춘옥 문화부장 ()
  • 승인 1990.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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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95년경 가능”

프랑스최고의 명문 파리 이공대학(에꼴뽈리테크닉)과 국립행정학교(CNA)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 서른에 국회에 진출하였고 6년 후에는 재무장관에 임명돼 19년 동안 프랑스 경제를 요리했던 운좋은 행정관료. ‘살아 있는 암기기계’,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식인 대통령’, ‘제2의 루이 16세’라는 애칭을 가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그는 49대 51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81년 선거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현 프랑스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유럽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미래의 ‘초대 유럽합중국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현직 유럽의회의 평의원이자 프랑스의 쁘드돔므 지방의회 의장이다.

  5월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8차 전직정부수반 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던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을 두차례에 걸쳐서 단독으로 만났다.

● 1993년 1월1일부터 국경없는 유럽이 탄생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의 야당을 중심으로 단일유럽에 반대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유럽통합의 핵심 ‘설계자’로서 그 당위성을 다시 한번 말씀해주십시오.
  첫 번째는 전쟁방지 때문입니다. 금세기에 들어서만도 유럽은 두 번에 걸쳐 세계대전을 겪었습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으로 서로 얽혀 있어서 유럽 여러 국가들간의 관세장벽을 허물어버리자는 목적 때문입니다. 경제적 공동체가 잘 운영되자 사람들은 유럽내의 모든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같은 목표를 실행하려고 하니 국가간의 협정만 갖고는 부족했습니다. 정치적인 결정을 함께 내릴 수 있는 공동기구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독일통일 때문에 몇 달 전부터 이 같은 단계를 수정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유럽 국가간의 균형체계가 바뀔 예정이고, 한편으로는 여태까지 참여하지 않았던,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고 싶어하는 동유럽국가들을 참여시키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 더블린 정상회담(4월28일) 직전에 <르 몽드>지와 가졌던 회견에서(4월19일) 밝힌 유럽통합 단계에 대한 구상은 지금도 변화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유럽통일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전될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나는 유럽통합의 세 단계로 통합방법의 결정, 단일금융통화의 실시, 외교 및 국방 문제의 공동결정을 주장했습니다. 통화통합이 정치통합보다 더 빠르게 추진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얘기죠, 통화통합, 즉 단일화폐 사용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시장에서는 자연스런 행위입니다. 이 단일화폐가 독립된 한 은행에 의해서 운영된다면 그 이후에는 단지 기술적인 문제만 남는 거죠. 나는 우선 금융통합을 신속하게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 유럽통합 작업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난관이 많은 걸로 관측되고 있는데….
  첫째 방위문제에 있어서 프랑스와 독일지도자들은 유럽대서양조직(organization euro atlantique)을 원합니다. 다시 말해서 대서양동맹 테두리 안에서 유럽국가동맹을 원하고 있고 이에 대해서 대처 총리는 쌍방조직(organization bilaterale)을 원하고 있습니다. 둘째 금융통합 문제에 있어서는 그동안 강력하게 반대해왔던 영국이 입장을 수정해나가고 있습니다. 영국이 유럽금융통합에 동조하려는 명백한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지요. 셋째로는 독일통일과 유럽통합과의 조화 문제인데, 서독은 소련군이 동독에 주둔하는 것을 묵인하는 대신 소련의 잠정적 동의를 얻어 독일통일을 이룩해서 유럽통합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 3억4천만의 인구를 갖게 될 ‘통합유럽공간’의 최고통치자 선출 방안을 갖고 있습니까?
  나는 4년 임기의 유럽대통령과 순환제의 부통령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의 대통령은 유럽위원회(European Council)가 임명하도록 하고 통합이 실현되면 곧바로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가, 그 후에는 보통선거에 의해서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초대 유럽대통령’, 이표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주 호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쟁자가 될 만한 또다른 인물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유럽에는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들 가운데 유럽의 미래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스페인 총리 필립 곤잘레스라고 생각합니다.

● 빌리 브란트는요?
  안됩니다. 아니, 되긴 하지만 이제 75세쯤 됐죠? 정계에서 은퇴했죠? 곤잘레스는 젊기 때문이죠.

● 유럽통합이 한국과, 한국의 통일과, 한국과의 교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럽통합이 된다 해도 아무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유럽은 더 큰 시장이 될 것이며 더 경쟁적인 시장이 될 것입니다.

● 프랑스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상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어떤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독일통일로 프랑스인들은 경제발전에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교육문제에 있어서 집중적인 현대화가 필요합니다. 우선 교육의 지방분권화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외교적 해결책으로 유럽의 정치통합에 대비한 프랑스 정치체제의 재조직이 필요합니다. 유럽은 내가 주장하듯이 연합국가(federation)와 국가연합(confederation)으로 나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미테랑 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시사저널이 많이 읽힌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가 알게 될 겁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만큼 내가 이러쿵저러쿵하면 안됩니다.

● 한국은 프랑스의 정치제도나 사상 등 다방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에서는 현재 내각책임제로 개헌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중심제를 모두 적용하고 있는 프랑스의 전직 국가원수로서 두 제도의 장단점을 논해주시기 바랍니다. 
  순수 내각책임제의 취약점은 정부와 의회의 결정이 단기적 차원에서 취해진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제의 단점은 지나치게 개인화되고 주요 국사결정에 국민들이 참여할 수 없다는 점 등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제도에 대한 접목이 필요합니다. 프랑스식의 접목은 몇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보통선거에 의해서 선출되고, 의회는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정치적 각성을 촉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의회는 내각을 불신임할 수도 있으므로 이것이 바로 민주적 체제가 아닌가 봅니다. 나는 프랑스식 체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 두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로 대통령 임기가 너무 길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7년은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의회에 대한 정부의 권한이 지나쳐서도 안됩니다. 특히 정부는 의회가 법안을 통과하도록 강한 압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프랑스 헌법에는 대통령이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으나 나는 이같은 권한을 제한해서 사용했습니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법안통과를 위해 의회에 압력을 넣는 행위가 너무 잦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인들과 대기업과의 유착 등이 한국사회에서는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가원수로 재직하였으니 정치인들의 윤리와 도덕 문제에 관심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부패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요소의 하나입니다. 부패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확산 됐습니다. 우선 정부가 취하는 주요 경제관계 결정이 경제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지요. 어떤 한가지 테크놀로지체계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예들 들어 프랑스가 핵발전시스템을 선택했을 때, 이 계획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는데, 선택된 업체는 번영을 누리게 됐고 소외된 업체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결정과정이 분명해야 하고, 가끔은 여러단체나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면서 개인의견에 따른 결정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둘째로 공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돈벌이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흥미로운 삶,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는 등의 다른 이점을 추구하는 거죠. 재산 모을 생각은 버리고 시작한 것이므로 하지 말아야죠.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합당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공직자들이 정상적인 보수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론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같은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공직자들이 정상적인 보수를 받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그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 유대인 대학살 50주년이 돼가는 이때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차별대두에 항의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이같은 민족주의 현상에 관해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민족주의란 옛날에 말했던 민족주의와 꼭 같은 것은 아닙니다. 몇 년 전에 모든 사람들은 한 국민의 또는 한 개인의 아이덴티티 추구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나왔던 《뿌리》란 소설이 그겁니다. 아시죠? 일본에 있는 한국인 2~3세가 차별을 받고 있다는 말 자체도, 그것은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국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덴티티이며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인구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지금 이 세계에서 나는 이같은 가치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동질성 추구가 점차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개인의 이동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외국인들도 와서 살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자신들의 문화를 간직하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동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융화되는 문화도 있지요. 예를 들어 프랑스문화는 동양문화와의 ‘동거’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 민주화 과정에 놓여 있는 한국에서 경제발전이 침체상태에 있습니다. 경제성장과 권위주의는 함수관계에 있는 것일까요?
  경제성장률이 낮아졌기 때문에 하는 질문인지요? 한 국가가 민주화가 되면 사회적 욕구가 생겨 이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므로 능률이 떨어집니다. 전체주의 국가는 능률이 뛰어납니다. 개인적 욕구표현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체주의 국가에서 경제적 성장은 빠릅니다. 그러나 개인적 욕구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결국 이 두가기가 다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없는 듯싶습니다.

● 동유럽에서 민주화 물결이 일고 독일의 재통일도 91년말까지는 확실하다는 것이 귀하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예상입니다. 한국의 통일문제에 관해 밖에서 더 판단하기가 쉬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유럽사태 이후 한국도 머지않아 통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0월에 동독의 호네커 전 대통령이 베를린장벽을 방문해서 독일통일이 1백년은 있어야 될 거라고 했는데 이제 통일이 눈앞에 와 있습니다. 한반도에도 통일에 대한 압력이 가해질 것입니다. 정치지도자층에서가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말입니다. 통일이 되려면 첫째로 경제적 측면이 가장 크게 작용합니다. 통일을 하고 싶다면 한국은 경제발전을 계속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북한과 정보교환을 해야 합니다. 남북한의 모든 교류는 국제관계 테두리내에서 지원받을 것입니다. 한국은 북한이 이같은 교류를 악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교류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속한 전직국가수반회의 회원들은 국제기구를 통해서 두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다면 두나라 사이의 여행, 서신왕래 등을 포함한 모든 자유화조치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헬싱키협정에 의거해서, 한 민족의 정보교환권리의 차원에서 말입니다.

● 한반도의 통일이 언제쯤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금세기 말까지는 통일 된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같은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지리라 봅니다. ‘통일유럽공간’ 실현 직후인 95년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인터뷰를 한 다음날인 5월25일,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외신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질문자 사이에 끼어 있던 기자를 발견한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어제의 인터뷰가 충분했는가를 묻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했다. ‘권위주의’가 낙선의 한 요소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전직 대통령의 또다른 모습을 보는 듯했다.)

● 대통령 재직시에 여성각료를 여러명 기용하실 만큼 여성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고통tm럽게 받아들이는 프랑스 여성들이 있습니까?
  프랑스 여성들 가운데 아직도 여성이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분명 프랑스 사회는 복합적인 이유로 해서, 책임있는 직책 차원에서 여성을 충분하게 대우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프랑스 여성들은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젊은 소녀들은 자기들이 앞으로 일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부서에 근무하는 여성의 숫자는 아주 부족합니다. 그 이유는 문화적 측면과, 또 어떤 측면에서는 여성 근로조건 그 자체에 있다고 봅니다. 많은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열등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몰론 노동이나 고용문제 등에서 평등권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남녀평등이 인정된 나라에서는 자질향상과 승진이 문제가 됩니다. 한편 여성의 의무도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에게 주어지는 직업적 의무를 똑같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점이 가끔 여성에게는 힘든 일입니다.

● 취미가 무엇입니까?
  매일 독서를 많이 합니다. 당·송·명나라와 프랑스의 중세기 내지 르네상스시대의 고전문화 형식은 통하는 바가 많습니다. 중국인이 시간에 대해서 갖는 관심은 심오합니다. 우리시대가 잃어버린 이 문제에 나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열심히 중국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21세기 세계질서를 전망해주십시오.
  나뉘어졌던 모든 것이 통합되고 국제사회에서 유럽의 위치가 재확인되는 21세기에는 유럽과 아시아가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잡으리라고 봅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불투명하나 한국은 이 주도권을 잡는 국가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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