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개표 관권 부정” 야당, 원초적 불신
  • 이흥환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당 참관인 지침서 ‘전투교범’ 방불



선거관리 허점…“부정????실수??공방 여전
 다리미표 아노표 샌드위치표 무더기표 릴레이표 환표…. 선거철만 되면 60년대 용어가 춤을 준다. 야당은 투·개표장의 부정을 집어내려고 눈에 핏발을 곤두셍고, 여당은 “개명천진에 어떻게 부정이 있을 수 있느냐. 으레적인 유언비어성 정치공세다??라고 야당을 몰아세운다.

 조직적인 부정이든 정치공세든 서울 노원을구 재검표 결과 14대 국회의원 당선자가 뒤바뀌고, 역시 서울 영등표 을구의 재검표 결과 개표 당시의 선거관리위원회 집계와 실제 득표수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선거관리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야당은 단순한 선거관리의 실수로만 보지는 않는다. 관권이 개입한 조직적인 부정이 횡행한다는 것이다.

 당락이 결정되는 곳은 개표장이다. 야당이 투표 부정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것이 개표때의 부정 가능성이다. 민주당은 지난14대 총선 직전에 ‘투?개표 참관인 지침서??를 작성해 각 지구당에 배포했다. 이 지침서에는 개표 참관인의 행동지침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전투병을 위한 야전교범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생명을 바쳐 투표함 지켜라??

 우선 참관이는 사진기와 손전등,녹음기를 필히 유해하라고 지시해놓았다. 개표 참관인은 개표소 안에서 개표상황을 촬영할 수 있다(국회위원선거법 9장 122조). 전지나 양초등 조명기구도 개표 참관인의 필수품이다. 고의적이든 우연한 사고든 정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개표 참관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격한 선정 기준이 있다. 민주당 지침서에는 지구당위원장이 직접 참관하도록 했다. 신념과 용기가 있고 선거법에 정통하며, 특히 돈에 매수되지 않는 사명감이 투철한 간부급이 선정 대상이다. ‘개표 진행중 소란행위나 난동에 말려들지 말아야??하며??개표중 어떠한 혼란이 일어나도 생명을 바쳐 투표함을 지켜야??하는 임무가 참관인에게 부여 되어 있다.

개표 참관인은 후보자가 모두 8명을 선정해 해당 선관위에 신고하도록 되었고, 4명씩 교대로 개표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참관인은 개표 내용을 알아볼 수 있도록 1m 이상 2m 내의 가까운 거리에서 참관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개표장 내를 돌아다니며 부정 여부를 감시할 수도 있다. 단 참관인이 직접 투표용지를 만질 수는 없다. ‘개표 참관인은 개표장 내에서 어느 곳이나 볼 수 있고 다닐 수 있으므로 민첩하고 날카롭게 행동해서 분위기를 장악하라??는 것도 민주당 지침의 하나다.

 개표 작업은 개함점검부에서부터 시작된다. 개함점검부에서는 투표함을 열어 우선 유효표와 무효표를 가려놓고, 유효표를 후보자별로 나눈다. 개표 작업의 반이 점검부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며, 이후이 절차는 확인 작업일 뿐이다. 투표함이 열리면 야당 참관인들의 눈에서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낱장이 아닌 ‘무더기표??나, 접은 흔적이 없는 이른바 ??다리미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확인 절차의 첫 번째 작업은 심사부에서 이루어진다. 후보자별로 표가 정확하게 분리되었는지가 확인되면 다발과 낱표로 분리되어 묶인 표는 검산부로 넘어가, 검산부에서 개표상황표를 작성하게 된다. 야당 참관인들은 검산부로 넘어가는 득표수를 기록한다. 나중에 위원장의 발표 숫자와 맞아떨어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노원 을구의 개표 사고가 난 곳이 바로 이 검산부다. 당시 검산부에는 노원구청의 계장급 공무원 4명과 국민학교 교사 4명이 개표종사원으로 있었고, 개표상황표 작성은 노원구청의 한 계장이 맡았다.

 검산부에서는 표수만 확인하고 통계부로 넘기며, 통계부에서 모든 표수가 집계된다. 총선거인수와 총투표수, 유효투표수와 무효투표수, 기권자수와 각 후보자별 득표수 등이 통계부에서 최종 집계된다. 이때 야당 참관인들은 특히 무효표의 유형별·후보별 투표수를 확인하며 재검을 요청하기도 한다. 투표자수와 투표용수지수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것도 야당 참관인들이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투표용지수가 투표자수보다 많을 경우에는 릴레이식 환표가 된 것이다.

 통계부를 거치고 나면 선거관리위원석으로 넘어가 재검표 작업이 이루어진다. 선관위원들의 자리 배치는 각 개표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각 부에 배치되는 수도 있고 통계부 다음 자리에 횡렬로 배치되기도 한다. 선거관리위원의 재검표 과정에서 야당 참관인들은 야당 후보 표가 타당 후보의 표사이에 끼워지는 ‘샌드위치표??의 유무를 눈여겨본다. 선관위원의 재검표 작업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선거관리위원장이 결재를 하고 공표함으로써 모든 개표 작업이 마무리된다. 공표된 후에는 정리부에서 투표지를 묶어 봉투속에 넣어 보관한다.

 야당에서는 투표장에서의 부정 못지않게 개표장의 이른바 ‘집계부정??을 지적한다. 아무리 투표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더라도 개표 과정에서 표로 ??장난??을 치게 되면 야당 후보가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점검-심사-통계-재검표 과정을 거쳐 표 계산이 정확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마지막 공표 과정에서 당락이 뒤바뀔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여당이나 선관위측에서는 이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야당의 뿌리깊은 피해의식과 선거관리에 대한 일방적인 불신 때문에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한다??는 것이며, 노원 을구의 당선자 당락 번복에 대해서는 ??특수한 경우??라고 주장한다.

 

“여당은 2백만표 먹고들어간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개표 사무는 관계행정기관(주로 구청)이나 법원 공무원 또는 교원 중에서 선관위가 위촉하는 개표사무 종사원(1일 수당 8천원)이 담당한다. 개표사무 종사원

위촉 기준은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이며, 대부분의 교원이나 법원 공무원은 개표사무원으로 위촉되는 것을 꺼린다. 선거 때마다 선관위 사무과장이 해당 교육위원회나 학교측에 협조를 의뢰하지만 여간 골치아픈 게 아니다.

 선관위에서는 재검표 때 후보자의 득표수가 바뀌는 까닭에 대해 “서울의 경우 1개 개표소당 약 10만여표를 다루어야 한다. 유효인지 무효인지 판단하기 힘든 투표지도 많다. 그럴 경우 개표 종사원들이 나름대로 판단해 분류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검표과정에서 법률적인 판단을 할 경우 오차가 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당 참관인들의 감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노원 을구의 경우에도 개표장에는 민주당 개표 참관인들이 있었다. “정당 참관인들이 교대로 4명밖에 참관할 수 없어 실제 투표함 개함에서부터 득표수 산정, 최종집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제대로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민주당 金大中 대표는 “개표보다 투표가 더 문제??라고 말한다. 대통령에 세 번재 도전하는 김대표로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집권여당이 현재의 구청장이나 시장, 군수 등 행정기관장을 총동원해 관권개입을 하게 되면 야당이 집권할 기회는 주어지기 힘들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방자치 단체장선거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대표의 논리는 간단하다. ??1개 투표구마다 1백표씩만 부정을 하더라도 전국 1만5천여개 투표구의 표를 모두 합하면 1백 50만표가 된다. 여기에다가 부재자 표까지 합할 경우 집권당은 최소한 2백만표를 확보할 수 있다. 2백만표를 집권당이 미리 먹고들어가는데 어떻게 야다이 집권할 수 있겠느냐??하는 게 그의 숫자 계산이다.

 김대표는 또 “구청 직원등 오랫동안 부정 선거에 관여해온 도통한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한 공정하 선거는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14대 총선을 치르고 난 직후 부정선거 사례를 한데 모아 책으로 엮어냈다.

 투표와 관련한 부정·불법 사례에는 면사무소의 총무계장이나 동사무소 민원주임, 구청 총무과장 등 간부급 행정 관료들의 이름이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전국적으로 통장이나 이장이 8만5천8백여명이고, 반장은 41만4천6백여명으로 통?반장급을 합하면 약 50만명이 된다. 집권당이 선거 대마다 이들을 활용한다는 것은 상식이다??라고 말한다.

 야당이 투표 부정을 마기 위해 동원하는 자구책은 비장하기가지 한다. 투표함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개표장의 야당 개표 참관인에게 투표상황보고서와 함께 이상없이 도착 되도록‘사수??해야 하며, 투표소 내에 동?면?군 직원이나 사복형사 또는 기관원(특히 귀에 리시버를 꽂은 사람)의 출입을 막아야 하고, 투표소로부터 1백m 이내에 경찰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투표소 내에서는 상대방의 ??교란작전??에 말려들지 말라는 것 등이 야당이 투개표 참관인에게 교육시키는 내용이다.

 이외에도 투표 마감시간이 임박해서 기표소 내에 책이나 서류봉투, 가방이나 핸드백등 불필요한 물품을 지참하고 들어가는 사람을 유의하라는 지시도 받는다. 또 점심식사는 지구당에서 제공하는 것만을 먹을 것이며, 여당측에서 제공하는 커피나 드링크제, 담배 등 식품은 마취제가 투입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절대 사양하라는 내용도 있다.

 야당 투표 참관인의 선정 기준도 까다롭다. 첫째는 당성이 강해야 한다. 신념과 용기가 있는 청·장년이어야 하며, 건강하고 시력도 좋아야 한다.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는 기준도 있다. 야당의 투표 참관인이 숙지하도록 되어 있는 지침 사항은 곧 부정이 개입될만한 대목들이다.

 야당 참관인들은 기표소 내의 인주도 반드시 시험해본다. 인주에 석유 등 휘발성 물질이 섞여 있을 경우 기표 후 시간이 지나면 인주가 날아가버려 무효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대중 대표측의 주장에 다르면 87년 13대 대통령선거 대 특히 호남지역에서 이런 류의 무효표가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야당의 부정 선거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끝이 없다. 기표할 때 쓰는 붓 뚜껑이 파손되어 있지는 않은가, 붓 뚜껑의 줄 길이는 충분한가, 붓 뚜껑의 구멍이 잘 뚫려 있는가 등도 투표 개시 한시간 전에 투표소에 미리 나와 점검해야 할 사항이다. 야당의 이런 태도에 대해 여당이나 선관위측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반박한다.

 그래도 야당은 여전히 60년대식 선거 감시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현행 선거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야당의 집권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정치 평론가도 있다. 선거를 치른 후에 야당이 부정선거 ‘백서??를 발간하지 않는 날, 한국의 정치는 원시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