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으로 주식 살 여력 없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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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 1조2천억 투자 발표…동원 가능액은 10분의 1 불과


 셈에 밝은 재무부의 돈 계산에 착오가 생긴 것 같다. 이용만 재무장관은 지난달 24일 ‘증권시장 안정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식투자가 가능하고 여유자금 규모가 큰 7대 기금을 중심으로 한 20개 기금이 1년간 1조2천억원의 주식을 사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5월 말 현제 20개 기금의 여유자금 잔고는 13조원이며 이 여유자금의 10% 정도를 주식에 투자해 증시를 되살린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13조원은 여유자금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돈이다. 20개 기금의 운용자금은 이미 재정에 예탁되어 있고 은행·투자신탁 등 다른 금융기관에 맡겨져 있다. 일부는 주식 채권 등의 형태로 증권시장에도 들어가 있다(표 참조). 기금 자금 운용 담당자들은 “주식을 사고 싶어도 살 여력이 없다”고 말한다.

 공무원연금기금은 7월 말 현재 총 조성자금 4조4백억원 중 재정예탁·금융기관예탁·구성원 대출 등에 돈을 넣고 있어 주식을 살 여력이 없다. 사학연금기금도 1백억원 남짓이 투자 가능 금액이다. 7개 기금 중 투자 가능한 금액이 가장 많은 기금은 국민 연금기금이다. 국민연금기금 운용부의 한 관계자는 “1천억원 정도를 주식에 굴릴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매입 여력이 있는 기금은 3개로 1천2백억원에 그친다(표 참조).

 재무부 증권국은 금융기관에 예탁이 되어 있어도 만기가 되어 돌아오는 돈이 있고 새로 조성되는 돈이 있기 때문에 매어??? 이를 합친 돈이 1%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면 1조2천억원의 여유자금이 생긴다고 해도 그 돈을 주식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국민연금의 경우 운용 규정에 정기예금 이자(11%) 이상의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금을 굴릴 수 없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14%대의 수익률을 올려왔다. 또 국민연금과 체신보험기금은 정부관리기슴이어서 원칙적으로 주식 및 부동산 매입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매년 최초로 확정된 자금운용 계획에 반영되었거나 경제기획원 장관과 협의하거나, 국무회의의 심의 및 대통령의 승인을 얻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시행령 제2조). 재무부 이두 기금을 주식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93년 자금운용 계획에 주식매입 계획을 반영하는 고육지책을 쓰려 한다.

 기금의 주식 매입을 유도하는 방법은 그동안 증시부양책의 단골 식단이 되어왔다. 그러나 91년 말 현재 기금의 주식보유 비중은 3.6%에 불과하다. 경제기획원 자료에 따르면 여유자금이 있는 44개 기금(정부관리기금 24개·민간관리기금 20개)이 90년 10월 말 현재 주식에 투자한 비중은 운영자금 6조9천억원의 1.3%에 그치고 있다. 기금은 주로 위험은 적으면서 고수익이 보장되는 채권과 은행의 금전신탁, 투자신탁회사의 수익증권 등에 돈을 굴렸다(도표 참조). 기금은 구성원의 돈을 안정성있게 굴려야 하는데 주식투자는 수익성을 높을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과감히 주식투자를 했다가 만에 하나 손실을 보면 자금 운용자가 문책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멍난 기금을 보전할 방법이 없다.

 재무부는 이같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올연초부터 1년 단위로 실시하던 기금 운용 실적 평가를 3~5년 단위로 실시하고,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아 투자할 경우는 운용 담당자 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놓았다. 대한교원공제회 투자부의 한 관계자는 “손해를 봐도 면책한다는 것은 자금 운용자의 목줄을 풀어주는 셈”라고 말하면서도 그동안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투자자문사를 통한 투자는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고 말했다.

 면책이 된다고 해도 정부의 말만 믿고 주식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본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기금에 돌아간다. 재무부 윤증현 증권국장은 “주가가 바닥권이어서 손해를 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손실이 날 경우 정부도 손실을 보전해 줄 수는 없다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 민재성 연구위원은 “공공성이 강조돼야 하는 기금의 자금운용은 원칙적으로 구성원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면서 이 과정없이 정부가 주식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금투자는 단기수익을 쫓아 들어갔다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성향을 띠고 있으므로 이 기금이 주식시장에 들어가면 증시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기금은 30% 남짓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어 주요한 기관투자가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기금의 성격상 기금 운용자는 종합적인 투자자산구성(포트폴리오)을 할 필요가 있다. 다른 금융상품에서 돈을 빼내 일방적으로 주식을 사는 정부 방침은 문제가 있을뿐더러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증시안정은 우리 경제의 과제이지만 정부는 증시부양에 급급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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