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鎬溶 사퇴 巨與 도덕성에 상처 남겨
  • 대구·조용준·하창섭 기자 ()
  • 승인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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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서 "대통령 탄핵 사유된다"고 나서 파문 확대 4·3선거에 역효과 우려도 여권에 큰 부담

 대구의 '지뢰밭' 선거열풍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鄭鎬溶 무소속후보의 돌연한 사퇴소동으로 대구 및 전국민의 관심은 이제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이 사태가 몰고올 향후 정국의 추이에 더 쓸려 있다. 

  그의 사퇴는 옳았는가, 틀렸는가, 또 사퇴를 종용한 盧대통령의 처사는 과연 정당했는가, 아니면 야당의 주장대로 선거법 위반인가.

  그의 사퇴는 여권에게는 5공비리의 망령을 완전 봉쇄하는 '뇌관제거'의 구실로, 야권에게는 공작정치의 유습을 규탄하는 對與공격 무기로 각각 기능했다. 문제는 여도 야도 아닌 일반국민에게 이번 사태가 과연 무엇을 남겼느냐로 집약된다.

  TK목장의 결투는 결국 이미 희생된 '5공속죄양’에 대한 또 한차례의 칼질로 유야무야 끝나버렸다는 정치적 허탈감만을 남긴 셈이다.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는 결과적으로 '패자만 남은 싸움'이 됐다. 노대통령이 두차례에 걸쳐 직접 나서서 정호용후보에게 사퇴를 종용한 사실은 단기적으로는 민자당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최선의 카드'였지만 거시적으로는 되돌이킬 수 없는 정치도덕성의 실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대통령이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文憙甲후보를 내세웠을 때부터 정치권의 도덕성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돼왔던 마당에 일개 보궐선거 출마자에게 가해진 끈질긴 사퇴종용 압박은 결국 민자당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냄과 동시에 노대통령의 통치력에도 커다란 흠집을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민자당은 이번 선거 초반부터 거대여당이라는 프리미엄과 '물리적 힘을 지나치게 자신', 강공드라이브 일변도의 전략을 구사했으나 정호용후보가 끈질기게 저항함으로써 민자당의 취약점만을 여실히 보여주게 되었다. 또한 민자당내 민정계의 6공 신주류와 5공 비주류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켜 당을 분열시키는 역작용을 초래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퇴하면 분신자살 하겠다" 벽보 수십장  재

  정호용후보의 사퇴가 분명하게 드러난 26일 아침 10시경 민자당의 朴在鴻의원은 정후보 선거사무실에 나타나 "정의원이 떠나는 모습을 보러왔다"고 말했는데 그동안 문희갑후보의 선거운동원으로 일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꼭 인간으로서 못할 이야기만 해야 되느냐. 그런 것 이야기하지 맙시다"라고 곤혹스럽게 대답해 민자당의원간에도 정후보에게 가해진 사퇴압력이 커다란 갈등요소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朴의원은 "정치노선을 떠나서 그동안 너무 정이 깊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이제 다른 방향으로 가신다니까 악수라도 한번 하고 싶어 왔다"고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후보는 비록 "시간을 달라.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 이야기하도록 하자"며 사퇴와 관련한 최종결정을 유보시켰지만 26일 예정시간을 훨씬 넘긴 오후 5시 40분에 사퇴발표를 함으로써 마지막 순간까지 결심을 하지 못하고 흔들린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낳았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사퇴 전부터 정후보가 이미 후보사퇴쪽으로 돌아섰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는데 정후보가 지난 15일 노대통령과의 1차회동 이후 급격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을 부인 金淑煥씨의 '자살파동'이 가까스로 되돌린 사실과 1차합동유세장에 나타나지 않은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만 정후보가 기자들과의 약속을 깨고 한동안 선거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압력에 의한 사퇴'가 현지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고가 전날과 같은 소동이 일어날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분위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겠다는 의도로 비쳤다. 사실 정후보 선거사무실에는 "여론조작에 속지 말라" "사퇴하면 분신자살하겠다"는 벽보가 수십장 나붙어 예기치 않은 돌발사태가 우려되기까지 했다. 이와 함께 현지에서는 한때 정후보가 공식회견장에 나오려는 것을 '기관'에서 막고 있는 것 아냐 하는 추측도 나돌았다.

  "대구 시민의 인심과 인정, 의리를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사퇴압력이란 웬말입니까, 이제 더이상 놀아날 수 없습니다. 청와대도 정치권도 대구시민을 더이상 농락마십시오.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정후보 지지자들이 선거사무실에 부착한 대자보의 한 대목이다.

  한편 지난 I5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린 慮·鄧회동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정후보측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어서 이번 사퇴설의 배경이 과연 청와대측의 압력과 정후보의 결단 중 어느쪽에 무게가 실린 것이냐는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대 총선의 출마보장이라든지 공직임명 등의 사후보장을 충실히 약속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사실상 이 중 어느 것도 공식적으로 확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후보가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를 발표하면서 '과열' '분열' 등을 특별히 강조, 국민들에게 '궁금중'과 '의혹'을 더욱 크게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차례에 걸친 노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거론된 내용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될 미묘한 사안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측은 정후보의 후보사퇴와 관련, 공식논평을 유보하고 있는데 문희갑후보는 26일 아침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유세장에서 처음으로 정후보가 대통령을 만난 사실을 알았다"며 "선배의 일에 후배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후보사퇴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이러한 문후보의 태도와는 달리 25일 저녁 민자당선거대책본부장 金重權의원은 "오늘은 이만 일찍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하는 등 느긋한 태도를 보여 이미 사전에 정후보의 사퇴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던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정호용 지지표 문후보에게 간다는 보장 없어 

  정후보가 사퇴함으로써 이번 선거는 일단 문희갑후보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정호용 지지표가 반드시 문후보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민자당선거대책본부는 합동유세장에서 정후보가 문후보의 손을 붙잡고 문후보에게 표를 몰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이지만 정후보의 기질상 그러한 풍경이 연출되기는 극히 힘들것으로 보인다.

  또한 문희갑후보의 선거조직은 사실상 정후보의 조직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기 때문에 피아가 구별되지 않는 상황이며 선거운동원들마저 각기 의리냐 명분이냐 문제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고 누구를 찍을 것인지 서로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의 압력이 거의 '융단폭격'으로 자행됐다는 사실도 문후보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할 소지가 높다. 지난 25일 유세장에서 보인 유권자들의 반응은 이러한 가능성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기존의 여권성향 표가 투표를 포기, 死票가 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민자당으로서는 이러한 민심을 앞으로 어떻게 품에 안을 것이냐에 이번 선거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이의 흡수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유권자에겐 한마디 의견도 묻지않고… '

  평리4동의 한 유권자는 "이제 와서 정후보가 사퇴 한 것은 그야말로 두번째의 코메디라 할 수 있다. 유권자에게는 한마디 의견도 묻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들끼리 이랬다저랬다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며 일종의 폭력"이라고 강경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현재 민자당측에서는 비교적 돈에 약한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금전을 살포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돈에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문후보가 상당히 고전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편 自承弘후보측은 이번 사태를 "강제적인 사퇴 압력"이라고 규정하고 "대통령이 선거에 이렇게 간여하는 것이 과연 적법한 일인지 선관위에 따지겠다"는 입장이다. '여권후보단일화'로 사실상 白후보측이 불리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백후보는 "오히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장담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대구시민을 우롱하는 행위"이니만큼 이에 대한 반감표와 여권성향의 일부 부동표가 백후보쪽에 쏠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백후보측은 정후보의 사퇴가 던질 앞으로의 파장에 유의하면서 현재까지 소위 청문회스타들로 이루어진 백후보 지지의원들을 통한 사랑방좌담회를 더욱 확대시킨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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