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실업’ 흔들리는 대학
  • 김동선 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共의 학원통제 노린 졸업정원제, 대학생 숫자만 늘려놓고 교육질서 파괴

교육 인플레이션이라고 진단되고 있는 고학력자 취업난은 이제 여러 병리현상을 유발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전국 4년제 대학(교) 89년 2월 졸업자 전체 취업률은 59.9%(리쿠르트사 조사·89.2.29 기준). 그러나 이 통계에서 진학·유학·군입대 등을 뺀 순수취업률은 45.7%에 지나지 않아 졸업생 절반 이상이 졸업과 동시에 실업상태에 놓이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85년 이래의 대졸자 미취업률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고학력자 취업난이 해가 지날수록 심해져 교육 인플레이션 병리현상도 5공화국 失政 중의 하나로 기록될 성격을 띠고 있다. 85년의 대졸자 미취업률은 25.8%였으나 그 뒤로 36.2%(86년), 38.4%(87년), 38.4%(88년), 40.1%(89년) 등으로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고, 금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으나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주요 기업체 신규채용이 전년보다 5~6% 낮게 잡혀져 대졸 취업난이 ‘사상 최악’ 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미 각 언론들은 작년 취업시즌에‘대졸취업 바늘구멍’ ‘80년대 들어 가장 좁은 문’ ‘심각한 취업전쟁’ 등의 제목으로 이 취업난을 보도한 바 있다.

각 기업의 신규채용 규모 축소는 그간 노사분규로 이한 가동률 저하, 환율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증가, 원화절상에 따른 체산성 악화 등을 기업경영 여건이 나빠진 데다가 노동문제를 의식 기업들이 자동화와 인력절감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살충동 불러일으키는 고학력 실업

고학력 취업난은 이제 ‘자살’과 ‘자살충동’사태까지 빚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취업문제연구원(원장 김일면)이 89년 6월부터 9월 사이에 고졸 이상 취업 상담자 1천4백50명을 대상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취업이 안돼 비관 자살한 경우에 충분히 공감하거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7%로 나타났는데, 지날달에는 호주 유학중 귀국한 청년이 취직이 안돼 비관 자살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 바 있다. 이 자살자는 陳暎秀씨(31)로, 86년 서울 ㄷ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럭키증권에 근무하다 호주의 시드니대에 유학,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던 중 가정형편이 어려워 작년 5월 귀국했으나 취직이 안되자 이를 비관하다가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자살 충동’까지 불러일으키는 고학력자 취업난은 재학시 전공외면, 취업재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위해 전문대에 다시 진학하는 학력역류현상, 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여성대졸자와 지방대 출신의 취업기회 박탈 가중, 나아가서는 대학교육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취업학원’으로 전락하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고학력 취업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경기 침체가 원인인가?

물론 산업화 이전의 50~60년대에는 세칭 일류대학 졸업생들도 졸업=실업 등식에 시달렸다. 64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언론계를 거쳐 관계 요직을 지낸 ㅇ씨가 졸업 무렵에 대학신문에 투고한 졸업소감 서두는 “졸업, 차라리 실업이라고 해야 할 만큼 우리의 졸업은 서글픈 여운을 남긴다”고 시작되면서 “우리에게 일터는 주어져 잇지 않다. 단 몇사람을 뽑는 취직의 문턱에 구름처럼 몰려드는 광경은 차마 볼 수 없는 처절한 비극이다”라는 구절도 있다. 일류대학의 , 세칭 엘리트가 졸업을 실업이라고 표현한 사회상은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얘기일지 모른다. 사실 그후 산업화와 고도성장으로 대졸자 취업기회가 확대돼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는 고학력 실업 문제가 전혀 심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85년부터 소위 고학력실업자문제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근본원인은 5공화국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졸업정원제 때문이었다 80년까지 대학생 정원을 억제해오던 정부가 81년에 입학정원제를 졸업정원제로 바꾸면서 대학생수가 급증해 인력 수급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졸업정원제는 5공정권의 또다른 죄과

졸업정원제는 80년 國保委가 “중병에 걸린 교육풍토를 쇄신하고, 과열과외로 만신창이가 된 학교교육을 바로잡기 이하여‘ 제정 공포한 ’7·30교육혁신책‘에 의해 81년부터 시행되었다. 이 제도는 종래의 입학정원제와는 달리 대학정원보다 신입생의 수를 일정수만큼 더 많이 뽑아 대학 입학을 쉽게 하되 졸업은 어렵게 함으로써 과열된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중등교육을 정상화하며, 대학의 면학분위기를 조성하여 대학교육의 질적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대학가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83년에 일부 보완되었다가 86년에는 유명무실해져 대학생 수만 늘려 놓는 결과를 낳았다.

졸업정원제가 유명무실해진 86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이 기간 동안 늘어난 고등교육기관 학생수는 무려 88만7천8백77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5~6년 사이에 90만명에 육박하는 학생수를 갑작스럽게 늘려놓은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80년 교육개혁과 대학정원정책’에 대해 교육전문가들은 사회발전 전반에 대한 주도면밀한 분석 없이 이루어진 ‘무원칙·비교육적’정책이라고 지적하고 “나라의 교육질서를 파괴시킨 결과를 낳았다”고 까지 비판하고 있다.

졸업정원제 때문에 늘어난 학생수로 이해 85년에 7만여명, 86년에 8만6천여명, 87년에 8만8천여명, 88년에 9만1천여명이 대학에서 연마한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하는 사태를 낳은 것이다.

5공화국 정권이 ‘학원지배’를 목적으로 졸업정원제를 실시했다는 것은 정설로 굳어져 있다. 사회적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분출되는 대학을 통제·지배하기 위해 ‘교육질서를 파괴시킨 무원칙·비교육적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은 5공정권의 또다른 죄과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 최초의 대학문제에 관한 집중적 연구보고서인 ‘서울대종합화안 보고서’(70년, 서울대학교 기획위원회 작성)는 대학문제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는 저에서, 특히 다음과 같은 대목은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위대한 대학의 역사는 벽돌과 콘크리트로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꿈과 믿음으로 이룩되는 것이며, 대학의 발전이란 어떠한 필연적 법칙에의 추종이 아니라 창조적 선택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 운명이 어떠한 타율적 요소에 의하여 지배되지 않고 자율적 결정에 의하여 개척될 때 대학은 본연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다.”

27년에 걸친 군사독재 기간 동안 역대 정권들은 대학사회를 통제·지배할 수 있을 때 ‘정권안보’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71년의 군사교육(교련)실시, 이데올로기 주입을 이한 국민윤리 과목의 필수화, 학원사찰과 대학의 인사 및 재정에 관한 간섭, 학사징계, 교수재임용제도를 통한 교수활동 통제 등은 대학을 타율에 의해 지배하려는 기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도의 가장 극심한 폐해가 졸업정원제 실시에 의한 대학의 무분별한 양적 팽창이었다. 70년 서울대 기획위원회가 천명한 대학 발전의 원칙과 정권의 조치들을 대비해보면 오늘날 우리 대학이 왜 이렇게 황폐화되었고, ‘교육질서파괴’라는 ‘반국가적현상’까지 초래됐는지 명백해진다.


양적으로는 세계정상, 질적으로는 후진국

현재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양적 성장면에서는 세계 정상권에 진입해 있으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교육조건의 각종 지표에 있어서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국대학교육협회(회장 趙完圭 서울대총장)가 작년 4월에 내놓은 ‘한국교육지표’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이 교육지표를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교육열, 고등교육 선호도는 세계 제1위이다. 82년 이래 고교생의 대학진학률은 85년 한차례만 일본에 선두(일본 37.6%, 한국 36.4%)를 내주었을 뿐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취학률은 83년 이후 미국의 56%에 이어 계속 2위를 지키고 있다. 인구 1만명 당 학생수 또한 82년 이후 미국(5백14명) 다음으로 2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 학생수에 있어서도 미국 인도 소련 일본 중국 다음으로 세계 6위의 순위에 있다.

그러나 교육의 질을 나타내는 시설·설비·재정·복지·연구 등의 지표는 우리나라 교육조건이 이같은 양적 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교수 1인당 학생수는 88년현재 36.7명으로 미국 15.6명, 일본 7.2명, 소련 13.6명, 중국 5.2명 등에 비해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국교 36.4명, 중  32.6명 고 28.4명)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다.

또 강의실당 학생수는 78년에 46명이던 것이 80년대 들어 해마다 증가, 88년에 대학 9.0명, 교대 70.8명, 전문대 65.6명이 되었다. 학생 1인당 교육비는 88년 현재 1백30만원으로 85년의 미국 8백75만원, 일본 5백29만원과 비교해서 5분의 1 수준이 못되고 있다. 또 교육인구의 폭증에도 불구하고 GNP대비 문교예산의 비율은 80년대중 계속 3.2% 수준에 맴돌고 있으며 정부예산에서 문교예산이 차지하는 비용 또한 85년 이후 거의 같은 수준인 20%에 머물러 교육열이나 교육인구 팽창에 걸맞는 교육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지표를 놓고 볼 때 한국 대학교육은 이제 양적 팽창에 의한 교육인플레이션 현상을 초래해 대학교육의 질적 관리 실패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대학교육 위기’의 차원을 넘어 그 위기의 소산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사태로까지 발전할 것이다. 고학력 취업난은 이것의 한 단면이며 이 실업난이 누적되면 사회불안 요소로 확산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이치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