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국민 후보’ 0순위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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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판도 예고하는 김우중 추대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신당의 대통령후보가 될 것인가. 지난 3일 결성된 새정치국민연합의 한 핵심인사는 김우중 회장을 신당의 대통령후보로 추대할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그는 아직 전체적으로 합의한 상태는 아니나 김회장 추대론은 신당 창당의 전 단계로 발족한 새정치 국민연합에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김우중 회장이 ‘국민 후보’로 추대될 경우 지금의 정치 판세를 뒤엎을 수 있는 파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회장은 여전히 신당의 ‘비밀 병기’로 감추어져 있다.

김회장의 의중에 정통한 한 야당 의원은 “김회장은 명예욕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다. 대권 후보로 거론됨과 동시에 그는 안팎의 유혹에 휘말릴 것이다”라고 말해 대통령후보로 추대될 경우 그가 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합 대표위원으로 선임된 이종찬 의원의 측근에 따르면 지난 6월말 이의원의 민자당 잔류 발표 직후 김회장은 이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한번 나서보면 어떻겠느냐”하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지난 7월말 민주당 조홍규 의원이 터뜨린 ‘현역 의원 60명 규모의 김우중 신당설’은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8월10일 우즈베크 공화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김회장이 신당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미 지난 얘기”라며 부인한 후 김우중 신달설은 서서히 꼬리를 감췄다. 그러나 그의 대답에서 분명해진 것은 그가 한 대 신당 창당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는 사실이다.

그후 다시 김회장에게 미심쩍은 눈길이 쏠린 것은 8월25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때다. 김회장은 이때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고 50대 대망론‘을 펼쳤다. 당시 김회장의 측근들은 그의 50대 지도자론에 대해 “양김씨로는 안된다”는 뜻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후 새정치 국민연합의 국민후보 추대 움직임과 관련해 ’50대 대망론‘은 바로 김회장 자신을 지칭한 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와 함께 새정치국민연합을 이끄는 이종찬 의원과 김회장과의 교감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8월 중순 이종찬 의원이 민자당 탈당을 선언하면서 김회장과의 관계가 정리됐음을 유난히 강조한 대목이 오히려 반대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당 나오면 민자당 과반수선 무너져”

김우중 회장의 정치 관여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김회장의 동향과 주변 여건을 살펴볼 대 그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회장의 ‘국민 후보’ 수락 여부는 향후 신당의 모양새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신당의 전망은 어떤가. 서울 동숭동 우당기념관에서 열린 새정치국민연합결성식은 7백여명의 발기인을 포함해 1천명정도가 참석한 가운데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국민연합은 9월20일께부터 지구당 창당 작업에 들어가 10월25일에는 중앙당 창당 대회를 열 예정이다. 민주당을 탈당한 한영수 의원은 야권 인사들을 결집하고 있다. 한의원 외에 신당에 동참할 것으로 보이는 야권 인사는 노승환 김승목 오홍섭 허경구 이원범 이형배 최봉구 전 의원 등이다. 이밖에 민주당의 이용희 최영근 박영록 박종태 전 의원 등이 “신당규모를 봐가면서 거취를 결정하겠다”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 신당 추진 인사는 전한다. 구야권 인사로는 이철승 고흥문 이민우 고재청 씨가 거명되고 있다.

이종찬 의원과 함께 국민연합을 이끌고 있는 이영일 전 민자당 광주시지부장은 “신당이 창당되면 민자당 의석 과반수 선이 무너지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고 장담한다. 민자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종찬 의원 진영에 섰던 한 의원도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이의원의 중간 행보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지 않은 민정계 의원들이 갈등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나 상황 변화 추이를 봐가면서 중대 결심을 할 것이다.”

국민연합측은 여야당 현역의원 15~20명선은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자당의 박철언 김용환 장경우 박명환 박범진 의원과 박철언 의원의 영향력 아래 있는 몇몇 의원, 민주당의 정대철 조홍규 박정훈 의원, 국민당의 한두 의원, 그리고 강창희 의원 등 몇 사람의 무소속 의원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9월3일 현재 외유 중인 박철언 의원은 비서진을 국민연합 결성식에 보내 신당 창당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세력이 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반양김’ 정서다. 현재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두 김씨의 지지도는 50%를 밑돌기 때문에 적당한 후보를 물색해 두 김씨에 반대하는 세력을 묶는다면 지금의 판세를 바꿀 수도 있겠다는 것이 신당 추진 인사들의 판단이다. 국민연합측은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이종찬 의원의 탈당을 지지한 응답자가 전국적으로 29%이며 반대한 응답자가 37.5%라고 밝혔다. 탈당 반대율이 더 높지만 이는 양김씨의 고정 지지율임을 감안할 때 조사결과는 고무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 판세가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 있다는 기본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통령후보로 김준엽 전 고대 총장, 강영훈 전국무총리, 그리고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인 강원룡 목사가 거론됐다. 제6공화국 출범때 노태우 대통령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직을 사양한 김준엽씨는 일찍부터 대통령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학계의 원로로 남고 싶다”며 고사해 왔다. 강영훈씨는 노대통령과의 의리를 내세워, 역시 총리직을 거부한 바 있는 강원룡씨는 “진정한 국민연합은 각계각층을 망라해야 한다”라며 이종찬 의원 진영의 후보적 제안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가운데 김우중씨 추대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한 인사는 “김회장이야말로 대통령후보로서 누구보다도 좋은 상품”이라고 주장한다. 김준엽씨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고, 강영훈씨는 비교적 지역 기반이 약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반면 출생지가 대구이고 원적지는 제주도이며 본관은 광산 김씨인 김우중씨는 지역 기반이 비교적 튼튼할 뿐 아니라 대우그룹이 족벌체제가 아니어서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특히 김회장의 자서전《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실로 볼 때 그가 젊은층의 호감을 사고 있음을 강점으로 들었다.

한 정치관측통은 만약 김우중회장이 신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설 경우 국민당의 존립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김씨를 반대해 정주영 대표 쪽으로 가려는 표의 상당 부분이 김우중씨에게로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만들어질 신당이 국민당과 합당할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을 끈다. 그는 신당이 바람을 일으켜 국민당의 존립이 위협당할 경우, 두 당의 합당 논의는 필연적이고 주장한다.

“신당과 국민당 합당하면 승리 가능”

두 당의 합당은 말할 것도 없이 정대표의 후보 사퇴를 전제로 한다.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정대표의 핵심 측근은 “지금 단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끝까지 사퇴하지 않을 것인지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국민당의 한 최고위원도 “두 김씨를 타도하기 위해서 국민당은 신당과 당연히 합당해야 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덕망있는 인사를 대통령후보로 세울 수만 있다면 정대표도 양보하리라고 본다”고 말한다.

관측통들은 정대표를 설득하는 일과 관련해서 박철언 의원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정대표와 박의원은 밖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박의원은 외유하기 전 정대표와 만나 “지금 판세로는 정대표가 아무리 해 봐야 선거에서 3등이다. 국민당이 창당될 신당과 합당해 정대표가 당권만 갖고 새로운 후보를 내세우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터놓고 이야기했고 정대표는 별다른 반응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고 한다.

정주영 대표와 김우중 회장은 ‘앙숙’ 관계로 알려져 있으나 한 관측통은 “이익이 있다면 두 사람은 타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철저한 사업가 생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두 사람의 화합은 김회장이 정대표를 깍듯이 모시는 등 연출하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김회장이 신당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우선 그는 김영삼 민자당 총재와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두 사람의 껄끄러운 관계는 7월 하순 김달현 북한 부총리의 남한 방문으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김회장이 주선하다시피 한 북한 부총리의 방문 사실을 김총재측은 미지막 순간까지 까맣게 몰랐고 이에 대해 김총재가 격노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김회장은 정대표가 선거 막판에 김영삼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경우 대우그룹은 설 자리가 없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는 어떻든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회장이 정치 참여 쪽으로 뜻을 굳히게 된 데는 사업을 이어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장남이 작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말도 있다.

김준엽 전 고대총장 내세울 수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당 지원 가능성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국민연합의 한 인사는 “그 부분은 밝힐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5공 핵심 인물인 허문도씨가 신당 창당에 깊숙히 관여하는 사실로 보아 5공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8월19일 저녁 힐튼호텔 만찬 회동에서 김회장과 전두환씨가 신당 문제를 깊숙히 논의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강하게 일고 있다.

김회장의 신당 참여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또 다른 재벌 신당이 출현한다면 거센 여론의 비판에 부딪쳐 국민당과 함께 공멸할지도 모르는 위험 부담이 있음을 김회장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신당 추진 인사는 제반 세력이 주축이 되고 있는 신당은 김우중씨가 후보로 추대되더라도 국민당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김회장의 한 핵심 측근은 “지금은 때가 아니니 후보로 추대되더라도 수락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건의할 것”이라고 말한다. 남북통일이 되면 양진영의 경제력 차이 때문에 커다란 문제에 봉착할 것인데 그때 가서 생각해 보라고 말해 왔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김회장 측근 인사는 김회장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 김준엽씨를 내세울 것으로 내다봤다. 김회장이 강력하게 권유하면 김 전 총장은 거절하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준엽씨는 수년간 대우학술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8월15일 저녁 롯데호텔에서 김 전총장은 자신이 주재한 민주당 고대출신 의원들과의 만찬 회동에서 지금까지와는 색깔이 다른 입장을 내비쳐 관심을 끈다.

한영수 의원은 “내가 모임 막바지에 국민이 요구하고 분위기가 성숙된다면 총장께서 나설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자 김 전 총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박정훈 의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김 전총장이 사람이 늙으면 노망한다. 자신도 노망할지 모르겠다고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고 전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여건이 된다면 후보 추대에 응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김우중씨는 과연 신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설 것인가. 김달현 부총리의 남한 방문 때 그렇게 바쁜 중에도 정치인들을 별도로 만났다는 김회장이 쉽사리 정치를 포기했다고는 볼 수 없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처음에는 때묻지 않은 원로를 신당의 후보로 앞세워 지원하려 했으나 이종찬 의원의 당 잔류 결정 이후 자신이 직접 나서는 쪽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차차기를 노렸던 원래 계획을 앞당겨 지금을 대권 획득의 적기로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은 그의 추대가 신당 추진 인사들 간에 합의되지 않은 상태다. 추대됐더라도 그가 수락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신당측의 추대 움직임과 그의 정치적 욕망이 접합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10월초쯤이면 결과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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