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새봄맞아 활짝 핀 지방문화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0교향악축제에 15개 시향 참가 고향자랑…’급조‘·지원금 미비 등 문제점 드러나

예술의 전당 개관 2주년 기념으로 기획되어 2월15일부터 3월12일까지 계속된 ‘90교향악축제에 전국 15개 단체가 참가, 지방자치시대를 앞둔 시점에서 교향악 문화가 만개하고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올해에는 서울시향을 비롯, 부천·춘천, 제주·마산시향 등이 새로 참가했다.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서울음악’의 자기권안에 있는 인천·수원·부천시향은 서울과의 잦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어 인적구성이나 연주기량면에서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원로지휘자 임원식씨가 이끄는 인천시향은 연평균 60회의 연주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87년에는 동남아 순회연주까지 다녀옴으로써 국제적인 교향악단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단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적인 연주를 선보여 이번 축제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은 것은 부천시향이다. 부천시향은 젊은 지휘자 임헌정씨의 음악열정과 44명의 젊은 단원들의 의욕, 그리고 이렇다할 문화유산이 없는 부천시를 음악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시 당국의 정책이 서로 잘 어울려 기대 이상의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부산·광주·대구시향 등은 도시의 성장속도에 비례해서 꾸준하게 음악적 경륜을 쌓아왔다. 지난 64년에 창단된 대구시향은 89년에 정기연주와 기획연주 등 총29회의 연주회를 개최했다. 대구에는 계명대·효성여대·영남대 등에 음악대학이 있으며 경북대 예술대학 안에 음악과가 있어 다른 지방보다 배출인력이 풍성하다. 대구시향 단원의 95%쯤이 이 지방 출신이며, 청중들의 수준과 열의도 높아 연주회 때마다 객석의 3분의2쯤이 찬다 연주활동은 1천6백석 규모의 시민회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비교적 음향상태가 좋은 어린이회관 꾀꼬리극장에서는 주로 실내악과 독주회 등이 열린다. 또 오는 5월 1천2백석 규모의 대구문화회관이 개관될 예정이다.

887년부터 대구시향을 지휘해온 강수일씨는 “연주장을 찾아오는 청중에게만 음악을 들려줄 것이 아니라 잠재청중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포부를 펼치며 3월에는 인근 구미공단 방문연주회를, 6월에는 장애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개최할 계획임을 밝힌다.

대구시향보다 두해 앞서 창단된 부산시향은 상임지휘자 박종혁씨의 사퇴 이후 잠시 주춤했으나 89년 9월부터 소련 출신의 마크 고렌슈타인을 상임지휘자로 영입,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음악대학이 없기 때문에 단원 중 서울·대구 등 다른 지역 출신이 많아 부산지방만의 독자적인 오케스트라 문화를 창출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한다.

광주음악으 간판격인 광주교향악단이 창단된 것은 76년으로 부산·대구·인천보다 10여년 이상이 뒤늦은 셈이다. 지난 89년 7월에 1백회 정기연주회를 가진 광주시향은 89부터 젊고 패기있는 지휘자 금노상을 영입하여 힘찬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지방 교향악단은 제 고장의 독자성을 가질 때라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금노상씨는 호남사람을 중심으로 단원을 선발하고 90년에는 호남권에서의 연주에 주력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어 모름지기 광주의 숨결이 느껴지는 오케스트라 문화 창달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연주활동은 주로 9백석의 시민회관과 5백석의 남도예술회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두 곳 모두 음향·조명시설 등 무대설비가 열악하기 그지없다. 90년 10월에 완공되는 1천6백석 규모의 문화회관에 대한 광주 음악인의 기대는 그래서 남다르다.

이번에 참가한 악단 중 부산·대구·인천·광주·부천·수원시향 등은 독자적 연주활동을 전개하는 직업전문악단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80년대를 전후해 창단된 지방교향악단은 그 지역의 음악적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조된 예가 많아 아직 전문적인 직업교향악단으로서의 뚜렷한 성격과 질적·양적 수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85년에 열린 전국체전을 계기골 창단된 춘천시향은 현재 상임단원인 1명뿐인 악조건속에서 지난해에는 정기연주회 4회와 특별연주회 2회를 개최하였고, 같은 해에 창단된 강릉시향은 상임단원이 1명도 없는 실정이다.

시 예산에 돈줄을 대고 있는 지방 교향악단으로서는 ‘원님 행차 때 나팔부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각 시·도에서 개최하는 문화시상식 등 기념행사 때 동원되는 예도 많아 지방 교향악단은 “시청의 얼굴이지 시의 얼굴이 아니다”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휘자와 단원간에 불화가 잦아 한 지방 오케스트라는 지난 연말 지휘자 없이 송년연주회를 갖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대도시 교향악단을 제외하고는 시에서의 제정지원이 극히 미약한 실정이라 단원들에게도 월급이라기보다는 교통비조의 수당만 주어지는 곳이 많다. 연주활동만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이들에게 수준높은 연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고, 레퍼터리가 대개는 고전·낭만음악에 머물고 있는 까닭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금음악계의 고질적 취약점으로 꼽히는 관악부문의 취약성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현악주와 달리 관악전공자들은 ‘레슨’도 변변히 할 수 없는 형편이엇, 특히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수당이 지급되는 지방교향악단으로서는 유능한 관악연주자 확보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상임단원을 비교적 많이 확보하고 있는 악단의 경우도 전체 편성면에서 심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으며, 연주가의 보유악기 수준 또한 매우 뒤떨어져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84년 4월에 창단된 마산시향의 경우를 살펴보면 지방 교향악단의 열악한 조건을 짐작할 수 있다. 마산·창원을 합치면 인구 1백만에 육박하는 대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마산시에는 아직 음악대학이 없다. 단원은 경남대학의 음악학과와 창원대학의 음악과 출신을 주축으로 하여 전국 14개 대학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단원 58명과 연구단원 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마산시향의 운영은 시비와 운영위원지원금을 합쳐 1년에 7천만원쯤. 지휘자는 월 70만원, 악장 35만원, 수석단원 23만원, 창단단원 20만원, 연구단원 7만원쯤의 ‘수당’을 받는다.

또 마산시에 마땅한 연주홀 하나 없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다고 이곳 단원들은 입을 모은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음악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시민회관 건립의 필요성을 건의해 왔으나 아직 실효를 거둑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마산시의 경남학생과학관을 이용하거나 창원시의 KBS다목적홀에서 연주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속에 놓여 있지만 공단지역이라는 지역여건을 살려 수출자유지역 안에서의 근로자를 위한 연주회도 개최하고 있다.

이번 교향악축제에는 1천3백여명의 교향악주자가 참가, 음악으로 고향자랑의 장을 펼쳐 보였거니와, 이 축제가 문화예술의 중앙집중 현상을 완화시킨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 평가르 받고 있다. 음악평론가 김형주씨는 “전국 교향악단을 한 무대에 서게 함으로써 선의의 경쟁의식을 고취, 지방 오케스트라의 활성화에 기여한다”고 진단한다. 전국의 교향악단이 연주경합을 벌임으로써 각 교향악단이 우수한 단원확보·악기교체 등 교향악단을 정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며 또한 연주내용, 연주기능, 편성, 레퍼터리, 악기 등을 상대적으로 비교 평가함으로써 서울악단과 지방악단 사이에 존재하는 엄연한 격차를 좁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 고장의 명예를 걸고 출연한 각 교향악단은 ‘90교향악축제를 시 당구자나 행정당국으로부터 교향악단에 대한 적극적인 육성책을 유도해내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반면 시운영당국자들이 연주평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ㄹ 보인 나머지 행여나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하는 지방 오케스트라 문화를 밟아뭉개는 일은 없어야겠다. 지방 오케스트라 문화는 운동선수들의 승패가 걸린 시합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