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뒤흔들 사안 폭로하겠다”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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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 전 군수 주장…야당, 지자제 명분 얻었지만 등원 여론에 곤혹


“정부는 지난 14대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금권·관건선거를 지시했다.”

한준수 전 충남 연기군수가 행정부의 관권·행정선거를 고발하며 불어댄 ‘호루라기’ 소리가 후속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정국의 물줄기를 바꿔놓고 있다.

한씨가 “지난 3·24총선은 사상 유례없는 타락·관권선거”였음을 주장하며 15종의 증거 자료를 제시하고 나선 것은 지난달 31일, 이에 대해 정부 관련부처와 민자당은 즉각 “야당의 상투적인 수법” “군수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인기 전략”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개인적인 돌출행위’로 치부했다.

그러나 ‘한군수 개인의 일’로 치부하려던 정부 여당의 입장은 한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속속 제시되는 바람에 약화되기 시작했다. 한씨가 이종국 충남지사로부터 선거지원용 자금으로 받았다는 10만원권 수표다발은 민자당 재정위원이 대표이사로 있는 대아건설 예금구좌에서 인출된 것임이 지난 2일 민주당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나아가 한씨가 처음 ‘양심선언’을 결심할 즈음인 지난 6월 초순경 연기군 담당 안기부 정보관과 심대평 청와대 행정수석 비서관의 요구로 몇 차례 그들을 만난 사실도 확인됐다. 물론 당사자들은 만난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공로연수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였지 양심선언을 만류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일개 군수를 몇 차례나 만난 ‘특이점’은 설명되지 않고 있다.

한편 한씨는 자신의 폭로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한씨는 지난 5일 관권선거 규탄 민주당 대전집회에 참석하기 직전《시사저널》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 여당이 공정선거 의지를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나를 돌출분자로 몰아붙이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대전집회 이후 적당한 시기를 봐서 처음 발표한 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을 터뜨리겠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중대 폭로’의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다만 “선거에 관련된, 훨씬 범위가 넓은 내용으로 정권이 뒤집어질 만큼 큰 사안”이라고만 밝혔다.

철저한 수직 구조인 내무관료 사회의 조직체계상 일개 군수가 개입하거나 지득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가 있음을 감안할 때, 이 주장의 사실 여부는 좀더 두고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씨 주변에서는 그의 꼼꼼하고 보수적인 성격으로 보아 “많은 정보를 기록하고 정리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한다.

지자제와 등원, 분리 가능성

어쨌든 한씨의 ‘양심선언’으로 그동안 야권이 심증으로만 제기해온 관권·부정선거의 실상이 ‘조직 내 인물’인 고급 공무원을 통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남으로써, 야권은 ‘관권·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단체장선거 연내 실시 주장에 강력한 명분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지난 8월12일 영등포 을구 선거 재검표 결과와 김영삼 총재의 “단체장선거 연내 실시 불가” 발언 등으로 한동안 “지자제는 물 건너간 게 아니냐”하는 패배감에 휩싸였던 민주당은 아연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반면 무조건 국회 등원 방침을 고수하던 민자당 김총재는 13일 3당 대표회담을 가지는 데 합의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으로 몰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 3당 대표회담에서 그동안 정국의 뜨거운 현안으로 존재해온 단체장선거에 대한 극적인 합의점이 도출되기는 매우 어려우리라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야권의 협상력이 높아진 만큼 ‘여권 목조이기’를 시도할 것은 분명하지만, 김총재 역시 여권 내의 강력한 반발과 경제난을 내세워 쉽사리 양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야권 내부에서도 3자 회담에서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더라도 일단 9월 정기국회에는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단체장선거와 등원’의 고리를 과감히 풀고, 국회에 들어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단체장선거 실시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는 사안 분리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대여권 협상력은 높아졌지만 언제까지 국회에 들어가지 않기는 힘들다. 여론의 압력과 산적한 국정을 더 이상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라며 “야당이 상임위 활동과 국정감사에서 뚜렷한 전과를 올리면서 국민의 지지를  더 끌어낸다면 여론을 등에 업고 단체장선거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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