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전남 무안 여성
  • 안병찬 (편집주간)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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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부산에 갔다. 부산은 항구도시여서 잡연하다. 그렇지만 지배층을 지독하게 비꼬는 내용의 ‘동래들놀음’이 계승되어 토박이 민중의식도 강한 곳이다. 그 속에 틈을 내어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전남 무안 태생의 여성이다.

 그 도서의 잡연함은 택시 속에서부터 느껴졌다. 교통체증 제1의 도시 부산은 연쇄방화사건 때문에 심해진 가두검색으로 길이 더 막혔다. 만덕터널 입구에 늘어선 자동차행렬ㄹ 꽁무니에 택시를 대며 운전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 몬해 묵겄다.”

 이윽고 차가 체증에서 풀려나자 입이 가벼워진 운전기사는 시세를 반영하는 얘기를 해댔다.
 불과 몇주일 전에 전라남도 어느 도시에 장거리를 뛴 적이 있었는데 주유소에서 ‘부산번호판’을 보더니 끝내 기름을 주려 하지 않아 그때부터 ‘한’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뒷자리 손님이 믿거나 말거나 흥분한 부산말씨로 그렇게 말했다. 불안정한 정국의 한끝이 예민하게 감촉되는 말이었다.

 그날 저녁 어느 좌중에서 전라남도 완도군 노하읍 출신의 남자를 만나지 않았던들 생각의 균형을 가누는 데 좀더 시간이 결렸을지 모른다. 그는 부산시 영주동 자기집 앞에 ‘전남번호판’ 승용차를 세웓게 했는데 안테나가 부러지고 차체에 흠이 나는 봉변을 당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36년이란 긴 세월을 부산에 살면서 부산에 동화되어 왔노라고 은연중에 ‘융화’에 힘을 주는 것이었다.


22년간 옥바라지하면서 남편을 기다린 까닭

 이런 사람들과 조우한 끝에 부산진구 양정2동 137번지를 찾아나 섰다. 살아온 인생이 남다른 데가 있는 전라남도 무안군 안좌면(현 신안군) 태생의 여성을 직접 대면하여 궁금증을 풀 작정으로,

 농업협동조합 양정지점 옆 건물, 3층 사글세집 문앞에 당도한 것은 저녁을 넘긴 때였다. 장정자씨, 금년 쉰살의 주인공이 문을 열었다. 1966년 세밑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영등포 상업은행 갱사건의 주범이던 ‘권오석’이 그의 남편이다. 남편은 지난날의 과오를 자복하고 천주교 믿음을 고백하는 수기 《보니파시오의 회심》 제3권을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가고 없었다. 장정자씨는 크고 선량한 눈으로 상대방에게 안도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부산에서 온 권오석이 두 동생을 데리고 ‘개머리판 없는 카빈총’으로 서울 은행을 털다가 임검 순경의 목숨 하나를 빼앗은 후 도피중일 때 만나 ‘영원한 아내’가 된 사람이다. 권오석이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되어 22년의 교도소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막노동에서 식모살이까지 안 해본 일 없이 고단한 삶 속에서도 병든 시부모와 어린 딸을 지키며 남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가 ‘잘못 만나도 너무 잘못 만난 권오석’을 마흔아홉이 된 작년에 다시 만나기까지 바보처럼 기다린 이유는 단순했다. 착하고 인정많은 남편의 본심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라도 무안 여성이 권오석과 어울려 사는 곳도 부산이다.

 이제 남편 보니파시오는 과거의 죄악적 의지에서 벗어나 회심했다. 보니파시오는 요즘 범죄가 ‘칼날을 번득이는 보복 난자 살인의 잔인성’을 보이는 원인을 간결하게 진단한다. 요새는 전과자가 되어 ‘감호’까지 붙으면 인생을 포기해야 하므로, 잡히지 않기 위해서 절도범조차 극한적 범행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니파시오는 ‘카스트로의 수인’으로 유명한 쿠바 시인 아르만도 바야다라스를 생각나게 한다. 똑같이 22년의 형기를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61년 쿠바에서 반혁명집단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3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야다라스는 국제사면위원회 · 국제팬클럽의 압력 덕분에 억압에서 벗어나 81년 11월 스페인에 정착했다. 그는 자유의 맛이 어떠냐는 질물에 이렇게 답했다. “자유의 맛이 달콤하다.”


“자유의 맛은 달콤하다.”

 억압과 자유의 의미를 터득한 보니파시오도 “지금이 내 일생에서 가장 달콤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도소 수감자의 10명중 9명이 정치적으로 ‘야당’임을 강조한다. 그의 말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마저 생각나게 만들었다.《감시와 처벌》 첫 줄은 루이 15세 암살 미수범인 프랑수아 다미앙이 처형되는 광경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마침내 그는 네 조각으로 찢겨졌다. 이 마지막 작업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동원된 말들이 그러한 작업에 익숙치 못했기 때문이다. 끝내는 말 여섯필이 필요했다. 그래도 충분치 못해 어쩔 수 없이 근육을 자르고 관절을 부수어야 했다….”

 푸코는 현대사회가 그런 원시적 체형의 가혹성을 완화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형벌권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강화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하여 기계주의 · 관리주의 · 통제주의는 현대적 특성이 되어 삶의 구석구석까지 규제조치가 파고들게 하는데, 그 극단적 형태가 바로 감옥이라고 고발한다. 마침내 그는 현대사회 전체를 하나의 감옥, 창살없는 감옥으로 그리니, 그의 문명비평과 인권론은 예리하다. 그리고 보면 다음 인용구의 물음들이 한층 실감난다.

 “교도소의 높은 담 아래 있는 사람은 모두 악인인가 또는 억울한 사람인가, 정권이 바뀜에 따라 죄인이 되고 안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왜 시인이나 학생들은 까닭없이 감옥에 들어가는가, 도대체 저 음울한 모순은 무엇인가, 그런 감옥을 그냥 두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양심이 있는가….”

 부산여행을 돌이켜보니 부산은 역시 잡연하고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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