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김대중 손 잡을까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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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낙관‘망월동 묘지 공동참배’계획도, 연희동은 “희망사항일 뿐”



 “아버님이 큰절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길, 잘 오셨오.” 추석을 일주일쯤 앞둔 시점인 지난 9월 4일 全斗煥 전 대통령의 두 아들 宰國, 在庸씨가 재용씨의 결혼식을 축하해준 데 대한 답례의 형식으로 민주당 金大中 대표최고위원의 동교동 자택을 찾은‘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잠시 정가의 이목을 끌었던 이 사건은 韓□洙 전 연기군수의‘양심 선언’이 일파만파의 파문을 불러일으키면서 일어난 정국의 큰 소용돌이 속에 이내 묻히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전씨의 두 아들이 김대표에 이어 민자당 金泳三 총재, 金鍾泌 대표최고위원을 차례로 예방함으로써 이들의 동교동 방문은 의례적인 순회 방문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이날 방문 이후 정가 일각에서는 동교동과 연희동의 제휴 가능성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아직은 이르지만 단체장선거 연내 실시 여부를 둘러싼 대치정국이 어떤 형태로든 가닥이 잡히는 시점에 이르면, ‘동교동과 연희동의 물밑 교감’이 구체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더구나 그 방법으로 두 사람의 ‘망월동 묘지 공동 참배와 대화합을 전제로 한 광주선언 발표’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전두환씨가 직접 내방할 계획 있었다”

 80년 5월 全斗煥 장군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내란음모’로 기소돼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대표와 그 당시 정치주역이었던 전씨와의 제휴는 과연 가능한가.

 양 진영의 제휴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로 동교동 진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동교동측은 전씨의 두 아들이 민자당 인사들보다 김대표를 먼저 방문한 점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총선 직후 연희동을 개인적으로 방문해 눈길을 끌었던 金相賢 최고위원은 “어떤 이유에서건 동교동을 가정 먼저 방문했다는 건 매우 의미심장한 선택”이라고 전제하고 “6공 이후 전씨 자신이 어떤 방향에서 입지를 도모할 것인가를 암시하는 한 단서로 파악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교동의 한 핵심 측근은 한발 더 나아가 이번 방문은 원래 아들이 아닌, 전씨 자신이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월 김영삼 대표의 연희동 방문 이후 연희동측으로부터 김대표도 한번 방문하는 게 어떤가라는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쪽에서 역제의를 했고, 7월 초순경 전씨도 이를 받아들여 동교동 방문을 추진하다가 양 진영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아들들만 보내는 쪽으로 축소했다”는 게 이 측근의 주장이다.

 최근 정가에 유포되고 있는 전-김 두사람의 ‘광주 망월동 묘지 공동참배’ 프로젝트도 동교동 일부 참모들의 발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핵심 측근은 “전씨의 공교동 방문이 추진되던 7월 초쯤 망월동 묘지 참배안도 연희동과의 채널을 통해 그쪽에 제시됐다”고 말했다. 현재 정가에 나도는 ‘망월동 프로젝트’의 기본 골격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유로운 정치행보를 위한 첫 수순으로서 5·18의 상처를 치유하고 광주 시민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하기 위해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고, 여기에 김대중 대표가 동행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서 지역감정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동·서간, 계층 간의 대화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양인이 진력한다는 내용의 ‘광주선언’을 함께 발표한다는 꽤 충격적인 시나리오까지 포함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망월동 공동참배안’을 동교동이 먼저 제의했을 가능성은 부인하면서도, “전씨가 자유로운 시민생활에 앞서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면, 김대표는 광주 시민들에게 돌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대화합의 차원에서 길을 열어주리라고 본다”며 여운을 남겼다.


연희동측 “전씨 정치적 행보 없을 것” 장담

 김대표 진영이 ‘전두환 끌어안기’를 통해 노리는 정치적 효과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경북 지역과 범 보수세력의 반DJ 정서를 완화시키는 한편, 현재 주인 없이 흔들리고 있는 이 지역의 표가 다시 YS 쪽으로 일사불란하게 뭉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효과다. 또다른 효과는 ‘용서할 수 없는 인연’을 지닌 전씨와의 극적인 화해를 통해서, 지속적인 ‘뉴 DJ 플랜’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하의 오랜 이미지 조작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DJ의 강경 이미지를 ‘대화합의 실천자’로 극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5공으로부터 가장 심한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김대표인 만큼 전씨와의 제휴는 기득권 세력이 갖는 “DJ 집권시 정치보복”의 우려를 일거에 불식시키는 ‘대화해’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으리라는 게 동교동의 계산이다.

 그러나 전씨와의 제휴과 관련, 김대표측의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5공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5공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민주당의 기존 지지층을 고려할 때, 전-김 제휴로 야기될 역작용과 정치적 위험부담도 간과할 수 없다. 뉴 DJ 전략만으로도 기존 민주당 지지표 중 일부 표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김대표 진영은 전-김 제휴의 수준을, 이 정도의 정치적 효과를 거두되 정치적인 또다른 부담은 피할 수 있는 매우 상징적이고 제한적인 수준으로 상정하고 있다. ‘망월동 묘지 참배’도 이런 상징적인 수준의 효과를 거두는 선에서 추진한다는 것이 동교동 참모진의 기본 전략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전씨를 끌어안는 일은 그의 잠재적인 지지기반을 감안할 때 민주당의 지지표로 직결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 지지표를 잃게 만들 공산이 있다. 따라서 성사되더라도 매우 신중한 수준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동교동과 연희동의 제휴 가능성에 대해 정가의 관측통들은 전씨가 만약 이번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특정 정파에게 ‘심정적인 지지’를 보낸다면 5공 청산과 백담사 하산 과정에서 강경입장을 취했던 YS보다는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보였던 DJ와 제휴할 공산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씨는 7월 말경 연희동을 방문했던 5공 인사 ㅎ씨와 시국담을 나누다 “DJ가 잡으면 나라가 혼란에 빠지지 않느냐”는 ㅎ씨의 반문에 “예전에 한강 개발을 할 때도 처음에는 흙탕물이 엄청나게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 괜찮아지지 않던가. 야당이 집권해도 처음에만 다소 혼란스럽지 곧 괜찮아질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연희동측은 정가에 나도는 전-김 제휴설을 두고 “환상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씨 아들들의 여야 정치인 방문에 동행했던 연희동측의 한 핵심 측근은 “추석을 맞이해 자녀들을 정계 어른들에게 인사 보내는 건 연희동의 오랜 풍습이다.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다. 동교동을 먼저 방문 한 데에도 전혀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지 않았다. 세 분에게 동시에 연락을 드렸고, 먼저 일정을 잡아준 동교동쪽에 들렀을 뿐이다”라고 잘라말했다. 또 그는 최근 정가에 나도는 전-김 제휴설에 대해 “모든 이야기는 동교동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대통령선거 이전에 어느 한 정파로부터 이용 당하거나 국민의 오해를 살 행동을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라고 못박았다.

 전-김 제휴는 과연 동교동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인가. 양쪽의 교감이 진행중인데도 연희동이 연막 전술을 펴는 것인가. 멀지 않아 그 진상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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