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익 “혁명보다는 개혁”
  • 한종호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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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강도 전략’영향, 합법영역 진출 등 ‘개량화’ 가속



 중남미 좌익운동 전체를 놓고 보면 페루 게릴라투쟁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좌익은 합법영역으로의 진출을 서두르면서 새로운 시대에의 적응을 모색하고 있다. 과테말라 통합 게릴라조직과 콜롬비아의 M19는 20여년의 게릴라활동을 중단하고 정부측과 평화협상을 맺거나 합법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엘살바도르의 좌익게릴라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은 금년 1월 정부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12년간의 내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합법정당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이 조직의 일원인 로베르토 카냐는 "지금은 중도파에서 좌익까지를 포괄하는 국민통일전선을 만드는 것이 과제이다"고 말했다. 19세기 독립과 함께 시작되어 1959년 쿠바혁명을 계기로 혁명정권 수립에 나선 좌익게릴라운동은 이미 새로운 노선을 정립해왔던 것이다.

 이같은 변화의 원인은 이른바 ‘저강도 전략’이라는 미국 레이건 정권의 새로운 제3세계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란과 니카라구아 혁명을 겪으면서 미국은 우익 군사독재에 대한 일방적 지지정책을 철회하고 온건 민선정부 구성을 지원하여 좌익세력을 고립화시키는 정책을 택했다. 니카라구아 엘살바도르 필리핀 한국은 그 주요 실험장이었다. 남미에서는 이를 '신자유주의 경향의 대두'라고 부른다. 각국은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국영기업 민영화·정부보조금 축소·수입개방 등 경계자유화를 통해 세계경제체계에 끼어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경제자유화 정책은 새로운 비교우위를 만들어주기보다는 대외종속만을 심화시켰고 중하층민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한패 풍요를 구가하던 베네수엘라의 페레스 대통령도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투자조건에 맞추기 위해 전화 철강 등의 국영기업 민영화와 수입개방을 단행했다가 나라살림을 거덜내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파탄은 기껏 도입한 민주주의의 존립 근거를 잃게 만들었고 중남미 각국은 다시 시위와 군부쿠데타 위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의 쿠데타 미수사건이나 후지모리의 헌정 중단도 이같은 통치력 한계의 소산이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의 카마쵸 교수는 “중남미의 80년대는 경제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의 10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와서는 총체적 위기에 빠진 셈이다.

 저강도 전략에 따른 신자유주의 정책은 합법정치영역의 확대를 가져왔다. 각국의 좌익은 대중의 정치적 불만을 자양분으로 삼아 각종 정당과 운동단체를 결성하여 합법영역으로 활발히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좌익’의 대두이다. 이들은 선거를 통해 의회에 대표를 보내고 있고 주변국 합법좌익과 연대하여 국제적 포럼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숭실대 서병훈 교수(정치외교학)는 “중남미 좌익은 민주주의 속의 사회주의라는 온건 개량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지지를 끌어모을 정치적 역량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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