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파리ㆍ양영란 통신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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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염불보다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 프랑스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이보다 더 감칠맛 나게 요약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 사실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 통합이라는 독립적인 쟁점을 다루는 선거라기보다는 국내 정치의 현주소를 비춰주는 거울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집권 여당인 우파연합의 분열상이나 제1야당인 사회당의 고질적인 파벌 싸움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가 예전의 유럽의회 선거에 비해 유난히도 공염불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까닭은, 선거 시기가 공교롭게도 내년 봄으로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와 밀착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종 선거 결과가 공식으로 발표된 6월13일부터 프랑스 언론은 새로 구성될 유럽의회에 대한 전망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제히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계의 부산한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이다.

 프랑스 국내는 물론 유럽 각국의 언론은 이번 프랑스에서의 유럽의회 선거 결과 놓고 ‘프랑스가 병들어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의 구심점이며 통합 유럽 건설을 적극 지지하는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25.5%이다. 여기에 제1야당인 사회당 지지율 14.5%를 합하여도 40%밖에 안되는 반면, 나머지 60%에 달하는 유권자의 행방이 묘연한 데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진단이다. 극우당(10.6%), 집권 여당에서 갈라져나온 반유럽주의자이며 극우화 경향의 반공화주의자 필립 드빌리에 그룹(12.4%), 사회당 이념을 표방하지만 당체제는 거부하는 베르나르 타피 그룹(12%)등 제도 정치권 주변 세력의 대두는 기존 정당 정치 체제에 대한 적신호이며, 이는 곧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인식될 수도 있다.

 드골주의 공화당(RPR)과 중도파 자유주의자(UDF)의 연합인 집권 여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다음 대선에 여당 단일 후보를 내세울 것인가, 복수 후보를 택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통일된 여당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이번 선거에서 공동 후보 명단을 냈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중도파 자유주의자 소속 필립 드빌리에 그룹이 예상 밖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자 중도파 자유주의자측은 각 당이 후보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펼치기 시작했다. 반면 드골주의 공화당측에서는 표면상 여당 단일 후보를 철칙으로 삼고 있으나, 정작 누구를 후보로 추태할 것인가는 질문에 이르러서는 합일점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유럽의회 선거 기간에는 거의 침묵을 지켜온 드골주의 공화당의 당수이자 현 파리 시장인 자크 시라크가 최근 본격적으로 대선을 위한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같은 드골주의 공화당 출신 에두아르 발라뒤르 현 총리 역시 대통령 후보 자리를 겨냥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정치가는 단연 사회당 지도자인 미셸 로카르이다. 미테랑 대통령이 속해 있는 사회당이 15%를 밑도는 유례없이 저조한 지지밖에 얻지 못하자 미셸 로카르는 사회당 당수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이제까지 기정사시로 되어 온 차기 대통령 후보 자격마저도 잃었다. 이로 말미암아 좌파는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후보 자리가 공석으로 남게 됐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좌파 지도자 중 유럽연합의회 의장인 자크들로만이 유일하게 우파의 자크 시라크나 에두아르 발라뒤르와 대적할 만한 인물로 평가되는 만큼, 해체 위기에 놓인 사회당으로서는 마지막 승부수로 들로르 가크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당사자인 자크 들로르가 “유럽의회 의장 임기가 끝날 때(95년 1월)까지 프랑스 국내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한 사회당의 대선 전략은 당분간 제자리걸음만 거듭하게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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