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 베를린ㆍ김진웅 통신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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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12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유렵연합이라는 이상보다도 각국이 당면한 국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사 표시로 나타났다. 오는 10월 총선의 전초전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던 독일에서는 선거 이후 각 정당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기민당ㆍ민사당ㆍ녹색당은 자축연을 연 반면, 사민당ㆍ자민당과 극우파 공화당은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이번 선거의 초점은 집권 여당의 콜 총리와 사민당의 차기 대권주자 샤르핑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콜 총리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샤르핑이 이끄는 사민당은 32.2% 지지를 얻은 반면 콜 총리는 38.8%의 지지를 얻어 지난 5월 대통령 선거에 이어 또 다시 멋진 승리를 이끌며 순조로운 향해를 계속하고 있다.

 샤르핑은 “이번 패배는 1회전에 불과하다. 선거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라며 이번 선거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콜의 정치적 능력이 탁월해서라기보다는 샤르핑의 무능이 패배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잇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5월 대통령 선거전의 패배에서부터 샤르핑의 정치 능력은 의심을 받아왔다. 그가 이번 선거에 내세운 슬로건도 여당의 구호로 착각할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작은 콜’아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이 따라다닌다. 한 언론은 ‘샤르핑이 가려는 곳마다 노련한 콜은 벌써 와 있다’고 무능을 꼬집었다.

옛 동독 집권당인 민사당 급부상
 이번 선거에서 벌어진 또 다른 이변은 옛 동독 집권당의 후신은 민사당이 강력히 대두한 사실이다. 옛 동독 지역에서 지지 기반을 확고히 다진 민사당은 녹색당에 이어 네 번째 정당으로 떠올랐다. 통일 이후 과거의 전력으로 말미암아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해왔던 민사당은, 비록 이번 선거에서 유럽의회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5% 이상 득표해야 가능) 기존 정당들은 초긴장 상태이다. 일부에서는 민사당이 극우 정동보다 더 위험하므로 정당 활동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사당 대두는 동ㆍ서독 간의 갈등과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한꺼번에 표출하고 있다. 89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멘스 라이히는 “동독 출신은 멀지 않아 열등 계층으로 전략하여 독일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러한 위기 의식에 공감하는 옛 동독 지역 주민들은 ‘새로운 자아 의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민사당에 지지표를 던졌다.

 실제로 기존 정당들은 모든 동독 지역에서 지지 기반을 크게 상실했다. 특히 자민당은 독일 통일 이후 옛 동독의 개혁사회주의 세력을 결집하고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베를린 사회연구소 책임자인 롤프 리이치히는 “민사당이 강하다기보다는 자민당의 전략이 취약해 민사당이 동독 지역에서 압승했다”라고 분석했다.

 이번 선거에서 기민당 47석, 사민당 40석, 녹색당은 12석을 각각 확보했다. 반면 극우 공화파는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현재 상황에서 10월 총선을 섣불리 예상하기는 어렵다. 현재 불리한 처지에 놓인 샤르핑은 새로운 선거 전략을 세우고 민사당ㆍ녹색당으로 흘러들어간 유권자들의 표를 회복해야 한다. 그런 뒤 연정 상대를 물색해야 한다. 이에 비해 콜 총리는 차츰 회복되기 시작하는 경제 상승 국면이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경제 상승과 자신에 대한 지지율과는 비례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경제 재건을 바탕으로 강력한 독일을 건설해야 한다는 국민의 염원에서 부합하는 인물을 찾고 있다. 그 적임자로는 좌우 눈치만 보는 샤르핑보다는 뚝심 있는 콜이 앞서고 있다는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된 셈이다.

 사민당 처지에서 보면 10월 총선은, 관료화한 당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과 아울러 당과 국민 사이의 거리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다.
베를린ㆍ金鎭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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