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 속 이기택, 대통합이 ‘생명줄’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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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입지 강화ㆍ선거 위해 ‘야권 통일’ 안간힘…신정ㆍ국민 거부로 몸살



 야권 전체가 크게 술렁인다.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무성하고 서로 비방하는 말들도 점점 거칠어진다. 민주당이 야권의 흡수 통일에 본격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흡인력이 강해짐에 따라 국민당과 신정당의 통합 전망은 상대적으로 불투명해지고 있다.

 6월2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이기택 대표를 야권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야권통합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내외에 천명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당대표를 위원장으로 선입했다. 그것은 이대표의 뜻이기도 했다. 이대표는 진작부터 자기가 통추위 위원장을 맡아 야권통합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밝혀 왔다. 측근들은 이대표가 소명의식을 갖고 야권통합에 매달리는 것 같다고 전한다. 이대표는 거의 매일 저녁 비밀리에 통합 대상 야권 인사들과 돌아가며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실패하면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야권통합에 이대표가 열심히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표는 적어도 당에서 몰리지 않을 정도의 성과는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하다. 우선 새한국당 이종찬 대표와 장 경우 의원 그리고 재야의 김근태씨 입당은 시간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통추위에 관계하는 한 인사는 “그들은 모두 이기택 대표와 벌써 오래 전부터 수시로 접촉하며 민주당 입당 뜻을 굳힌 것으로 안다. 입당 시기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입당은 기정사실이다”라고 말한다. 민주당 통추위의 기본 구상은 빠르면 6월말, 늦어도 7월 초까지는 수임 기구를 구성해 야권 대통합에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다. 이종찬ㆍ장 경우 의원과 김근태씨는 이같은 민주당의 구상에 동의했다고 통추위측 인사들은 말한다. 본인들도 그같은 주장에 대해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양당제만이 민자당 이기는 길”
 이대표가 야권통합에 열심인 또 다른 이유는 코앞에 닥친 보선과 내년 지방자치선거, 그리고 총선을 양당 구조로 치르는 것이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대표 비서실장인 문희상 의원은 “당내에는 일부 인사들의 경력을 문제 삼아 통합을 회의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크게 봐야 한다. 만약 제3의 교섭 단체가 생기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민자당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한다.

 호남과 서울등 대도시만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에 제3 교섭단체 출현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신정당의 반찬종 대표가 국민당과 통합해 조직과 자금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을 민주당으로서는 묵과할 수 없다. 그동안 민주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대표가 인기순위 1위를 달리는 것을 놓고 ‘거품’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해 왔으나 박대표가 조직과 돈을 손에 쥐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표가 야권통합을 서두르는 데는 박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당내 사정도 이대표에게 돌파구 마련을 요구하고 잇다. 이대표와 권노갑 최고위원 등 동교동 가신들을 중심을 한 범주류는 최근 두 번이나 쓰라린 경험을 했다. 원에서 두 번 모두 표대결 끝에 패배한 것이다. 권노갑 의원이 국회부의장 후보 선출을 위한 최고위원회의 투표 뒤 “정치 생명을 걸고라도 반동교동계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들려올 만큼 이대표와 동교동 가신들의 충격은 큰 모양이다.

 이대표와 동교동계는 야권통합을 통해 점점 거세지는 비주류의 도전을 봉쇄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국민당과 새한국당 원내외 인사들을 대거 끌어들여 머리 수에서 우위를 확실히 유지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대표는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이종찬 대표와 김근태씨에게 공을 들여왔고, 동교동계는 최근 두 차례의 국회직 선출에 쓴맛을 본 뒤 이대표를 적극 지원하게 된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특히 이대표가 김근태씨 영입에 적극적인 것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부영ㆍ노무현 최고위원 등 당내 개혁모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야 투쟁 경력으로 보나 명망성으로 보나 결코 두 최고위원에 뒤지지 안는 김근태씨가 입당하면 상대적으로 두 최고위원의 개혁세력 대표성은 묽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통추위가 맹렬히 활동을 개시하자 국민당과 신정당의 통합을위한 발걸음은 비틀대기 시작하고 있다. 6월23일 국민당은 당무회의에서 29일 전당대회를 열어 신정당과 통합을 추진하기로 하고 당명까지 신민당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직후 일부 언론에 민주당의 이기택 대표, 새한국당의 이종차 대표, 그리고 국민당의 김동길 대표가 29일 합당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와 국민당과 신정 관계자들은 모두 혼란에 빠졌다. 이대표와 김동길 대표는 즉각 합의 사실을 부인했지만 국민당과 신정당 관계자들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은 상태이다.

 어찌됐든 이기택 대표의 기본적인 구상은 국민당의 전당대회 결과에 상관 없이 정기국회 전에 대통합을 밀어붙인다는 것이 틀림없다. 이대표 측근들은 결과를 낙관하는 분위기이다. “의외로 쉽게 풀릴 테니 두고보라”고 장담한다. 박찬종 대표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야권통합 대열에서 이탈해 연탄가스처럼 야권에 해만 입히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거나 중상을 입을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박찬종, 김상현과 합심해 민주당 입당?
 그러나 박찬종 대표의 생각은 대통합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신정당은 6월23일 성명을 통해 “민주당이 당리당락을 위해 통합 신당의 파괴 공작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대표는 근본적으로 야권의 대통합의 대해 회의적이다. 민주ㆍ반민주 구도가 깨진 마당에 굳이 야권이 하나가 될 이유가 없고, 민주당 중심의 통합으로는 반민자 정서를 가진 유권자를 끌어모을 수 없어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대표는 각 당이 차별성을 찾으며 다가오는 보궐선거 등에서 가능한 공조를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는 김대중 전 대표가 수렴청정하는 상황에서 이대표와 통합 협상을 벌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도 한다. 기왕에 야권통합을 하려면 창구는 당연히 김대중 전 대표가 돼야 한다는 얘기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그가 비주류의 대표 주자인 김상현 고문과 요즘 부쩍 가깝게 지낸다는 점을 들어 전격적으로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원내총무 경선과 국회 부의장 선출 과정에서 승리한 뒤 비주류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박대표도 “김상현 고문은 민주당에서 나와 만났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친밀감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박대표가 김고문과 합심해 민주당에 들어오더라도 그 시점은 이대표가 야권통합을 추진하는 때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야권통합의 공적이 이대표에게 돌아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당 내에도 민주다 통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국민당에 재입당해 김동길ㆍ박찬종 대표 등과 당 주도권을 놓고 알력을 빚고 있는 양순직 최고위원은 특히 민주당과 통합하는 데 회의적이다. 그는 김동길 대표가 민주당과 통합하기로 했다는 설이 나온 뒤 ‘상상도 못할 일’이란 반응을 보였다. 그는 “민주당과 통합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일부 사람들조차도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혼자 그런 합의를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대표가 “점잖지 못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일부 의원들에게 국회직ㆍ당직 등을 카드로 내밀면서 입당을 종용한다는 얘기이다. 6월25일 국민당 최고위원 당직자 연석회의는 ‘야권 대통합 유보’를 선언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야권통합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게만 보인다.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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