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세지는 ‘다뉴브강 분쟁’
  • 부다페스트·김성진 통신원 ()
  • 승인 200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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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건설 놓고 대립…헝가리 ‘환경론’ 슬로바키아 ‘경제론’

 지난 9월25일은 다뉴브의 역사에 신기원이 열린 날이다. 독일 정부가 30년의 세월과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설해 온 다뉴브 · 마임강 연결 운하가 이날 마침내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다뉴브의 켈하임과 마인강의 밤베르크간 1백71㎞의 수로가 뚫림으로써 유럽인의 오랜 소망인 라인 · 마인 · 다뉴브강의 유럽 3대 강이 연결돼 북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꿈의 뱃길이 현실화한 것이다.

 이날 행사장에는 다뉴브연안 7개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참석해 독일에 축하를 보내는 한편 명실공히 국제하천의 지위를 되찾은 다뉴브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석한 요제프 안탈 헝가리 총리가 축사에서 이례적으로 슬로바키아가 다뉴브강을 자국의 이해에 얽매여 잘못 이용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함으로써 일순간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슬로바키아의 블라디미르 메치아르 총리는 주제가 적절치 못하다고 되받아쳤지만 양측의 감정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다뉴브강은 비엔나에서 뱃길을 따라 슬로바키아의 수도 블라티슬라바를 지나면서부터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선이 된다. 그러다가 슬로바키아의 가브치코프라는 곳에 이르면 다뉴브강을 따라가던 국경선이 강 북쪽으로 올라간다. 슬로바키아의 가브치코프와 마주보는 헝가리 지역은 뵈시.

 지난 77년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바로 뵈시 · 가브치코프를 연결하는 수력댐을 만들기로 협정을 맺었다. 이른바 ‘다뉴브 분쟁’의 시작이었다. 과학적인 검증이나 경제성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내려진 이 결정은 기초 공사도 끝마치기 전에 분쟁의 회오리에 말려들기 시작했다. 헝가리측의 환경공학자들이 제일 먼저 이 공사에 이의를 제기했다.

슬로바키아 분리독립 계기로 심화

 수력댐이 완성되면 생태계가 파괴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그 피해의 대부분은 헝가리 쪽에서 입게될 것이라는 논지였다. 수력댐 하류부터는 다뉴브가 완전히 헝가리의 내륙하천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관계자들도 이에 가세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주장을 강력히 폈다. 결국 헝가리에서 일방적으로 공사를 중단했다. 그러다 80연대 후반이 되면서 양국 공산정부는 체제 위기에 몰려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못했다.

 다뉴브 분쟁이 부활한 것은 체제가 완전히 바뀌어 안정을 찾은 91년 초부터였다.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는 쌍무협상에서 수력댐의 기술적 문제를 재검토하기 위해 유럽공동체의 중재를 통해 상호기술위원회를 구성키로 최종합의했다. 그러던 도중에 확정된 슬로바키아의 분리독립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슬로바키아측으로서는 그동안의 막대한 투자액을 포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단 전력이 생산되면 오스트리아에 수출해 분리독립 후 예상되는 경제난국에 활력소로 삼을 전략이다. 이때문에 슬로바키아측은 올해 초부터 가브치코프 지역 쪽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어 저수지에 저장한 뒤 발전하는 건축방식을 채택했다.

 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헝가리국회는 지난 5월 77년의 양국협정을 무효화하고 정부로 하여금 새 협정을 마련토록 건의했다. 지난 8월에 안탈 총리는 슬로바키아측에 친서를 보내 다뉴브강의 물길을 변경하는 것은 현재의 국경선을 결정한 1947년 파리평화협정 위반이며 헝가리주권을 침해한 중대한 사태라고 규정하면서 이 문제를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의뢰해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슬로바키아측은 재판의 당사자는 슬로바키아가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연방이라는 점을 들어 이를 반대하고 있는 형편이다.

 범지구적인 환경운동의 틈새에서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슬로바키아의 경제논리와 헝가리의 환경논리. 시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눈길이 이 다뉴브 논쟁으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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