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계급의 지배를 받는가”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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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잭 런던 자전적 장편소설 한기욱 옮김 한울 펴냄

당시 미국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밑바닥 인생이라고 천대받던 한 선원이 우연히 전형적인 상류사회 여성을 만나사랑에 빠진다. 할리우드 영화의 흔한 구도이지만, 자본주의 종주국에서 일찍이 좌절을 겪은 미국사회주의 작가 잭 런던이 1909년에 설정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와의 ‘애증관계’는 그 80여년 후 20세기 후반의 한국으로 옮겨져서도 많은 접점을 가진다.

지난해 《강철군화》가 국내에 번역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잭 런던은 소설 속에서 노동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회주의 혁명가를 그리면서도 노동자에 대한 믿음과 불신, 사회주의의 선명성과 낭만적 전망 등 이중적 태도를 보여 찬사와 비판을 함께 받았다. 미국문학사도 마찬가지여서 그를 미국 최대의 사회주의 작가라고 치켜세우는 평가가 있는 반면 ‘가증스런 매문작가’라는 혹평이 상존하고 있다.

주인공 마틴처럼 ‘하류문화’ 출신인 런던의 생애 및 사상적 편력과 겹쳐지는 《마틴 에덴》은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사랑과 부를 누릴 수 있다는 ‘미국의 꿈’을 그리면서도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개인적이고 본질적 관계에도 계급간 갈등이 엄존하며 나아가 그 사량을 지배함을 보여준다. 마틴은 상류 사회 여성 루스와 만나면서 그 녀가 속한 계급의 문법을 배우고 작가로서 성공해 그 사회에 편입되지만, 부르주아의 천박함을 발견하는 동시에 사회주의를 끌어안지 못하고 개인주의로 빠져들었다는 자책감으로 자살하고 만다.

자본주의의 운영원리와 노동의 상품화를 꿰뚫는 미국 사회주의 활동가였던 런던의 소설이 드러내는 미덕과 결함은 사회주의의 붕괴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한국 문단 일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상의 선명성을 강조할수록 그 관념주의 때문에 문학성은 뒤떨어짐을 런던은 보여주고 있다. 옮긴이 한기욱 교수(인제대· 영문학)는 런던이 오히려 죄파들로부터 개인주의라고 비난받는 지점에서 문학적 생명력을 얻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전망을 노동자 계급에 섣불리 투영하여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을 효과 있게 한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 책 해설에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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