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군림의 칼’거뒀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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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개편.규제 완화 등 혁신 박차 … 의식 개혁으로 발전 필요



‘오이코시 오이코세(뒤따라 가다가 따라잡는다)’라는 일본 경제 부흥기의 격문은 최근 재무부가 보인 변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지난 1년간 재무부가 진행한 급격한 변화는 ‘보수와 규제의 화신’이라고 재무부를 꼬집던 외부시각을 무색케 한다. 재무부는 조직 현신과 규제 완화에서 경제 부처 중 선봉에 서 있는 인상이다. 뒤따라 가는 것 같더니 어느새 다른 부처를 앞질러 버린 것이다.

 3월 17일 재무부 장관의 집무실은 조용했다. 결제를 기다리는 장사진은 발견할 수 없었다. 洪在馨 장관이 회의용 탁자에 앉아 10여 가지 서류에 결재중이었다. 그는 빨간 스티커가 붙은 서류를 먼저 보았다. 간간이 전화로 내용을 묻기도 했다. 재무부는 정부부처로서는 첫 번째로 3월초부터 서면 결재를 시행하고 있다. ‘얼굴 도장’을 찍으려는 관료들은 섭섭해할지 모른다.
 지난해 6월 재무부를 방문한 사람이 지금 다시 찾아가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대기업 사무실에 온 착각이 든다. 재무부는 우선 지난해 7월 50t의 엄청난 쓰레기를 버렸다. 꼭 필요한 서류를 빼고 전부 처분한 것이다. 여기에 사무자동화를 이루었다. 각 사무관에게 개인용 컴퓨터와 다기능 전화기를 지급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초부터 5억7천만원을 들여 시행한 사무혁신 운동으로 재무부가 이루어낸 변화상이다. 기업 경영 마인드가 정부조직에 접목되기도 했다. ‘보고 SOS운동’은 기업 냄새가 물씬 풍긴다. 보고 절차의 단순화(SIMPLE)는 모든 보고에 원가 의식을 심었다. 부하 직원은 공짜가 아니다. 의사결정 신속화(ON-TIME)는 구두나 메모 보고를 장려한다. 또 보고는 사망 확인서가 아닌 건강진단서다. 타이밍을 중시한다. 문서 작성 간소화(SLIM)는‘1장 베스트’‘2장 베터’, 그리고 재작성 안시키기로 요약된다.

 국회를 연결하는 음성중개 시설은 행정 공백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전에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비해 평균 80~90명이 대기해야 했으나, 시설을 가동한 뒤 30~40명 선으로 줄었다. 조용한 개혁을 하는 홍장관의 다음 목표는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3월 말께 단행할 조직 개편은 그 폭으로 보면 보잘것없다. 개편을 ‘자리 줄이기’로 보는 이들은 과장 1명 줄이는 것에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홍장관이 ‘군살 아닌 생살을 도려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매우 이질적 조직인 증권국과 보험국을 합쳤다. 줄여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린 것이다.

 1월 중순 1급 회의에서 재무부는 10년 뒤 자기들의 위상을 자리매김해 보였다. 어떤 쪽을 털어내고 어떤 부분을 강화해야 하느냐로 초점이 모아졌다. 사업 재구축(리스트럭처링)의 문제였다.

 조직 개편에서 도드라진 것은 재무정책국 신설이다. 재무정채국은 재무부의 수석 국으로, 통화?금리?환율 같은 거시정책 변수를 한 곳에서 취합하는 통제사령탑 구실을 한다. 변수들 간의 유기적이고 신속한 조절을 시도하고, 종합적인 처방전을 내리려는 목적이다. 재무부는 지난해 내내 해외에서 들어오는 돈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해외에서 들어온 돈은 한국은행이 새로 돈을 찍어 낸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해외에서 돈이 들어오면 통화가 늘어 물가를 올린다. 또 해외에서 유입된 돈이 통화로 흡수되지 않으면 원화 가치를 높인다.

 올해도 해외에서 적잖은 돈이 들어올 것이 분명한 터에 기업들은 해외에서 돈을 더욱 끌어다 쓰고 싶어한다. 해외증권 발행 한도를 늘리라는 요구가 그렇다. 지난해 가까스로 물리친 상업차관 허용 압력도 사그러든 것이 아니다. 미국은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높이라고 주문한다.

‘적들에 포위’된 재무부 몸 낮춰
 재무부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개방 시대에 재무부 관료들은 정책 수단들이 무력화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나마 대응 수단은 흩어져 있다. 통화와 금리는 이재국이, 환율은 국제금융국이 들여다보고 있다. 재무부 각국간 체육대회에서 나라 국(國) 자를 쓸 정도로 국간 벽이 두터운 조직에서 업무 협조가 유기적으로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협상 전담팀을 만든 것도 달라진 행정 수요를 겨냥한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후속 협상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문제 등 대외적으로 협상할 일이 널려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외화자금을 굴리는 것도 중요해졌다. 이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새롭게 행정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무부는 규제에 매달릴 여력이 없다. 조직 개편과 함께 획기적인 규제 완화를 단행할 방침이다.

 올해로 근속 연수가 21년인 한 고참 과장은 젊고 팔팔하던 사무관 초기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내 인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볼 때마다 피가 끓었다고 말한다. 밥먹듯이 밤샘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러나 관료집단은 80년대 중반부터 ‘너만 잘했느냐’는 민간의 거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재무부의 또 다른 과장은 사회 계급의 변화를 이렇게 규정한다. “60년대가 군?관?민의 시대였다면 개발 연대인 70년대는 관?군?민의 시대였고 이제는 민?관?군의 시대다.”달라진  세태를 잘 안다는 말이다. 무소불위의 권능을 휘두르던 재무 관료들은 격세지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재무부를 흔히 힘이 센 부처라고 한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돈줄을 쥔 데 있다. 일본 대장성과는 달리,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지 않지만 금융 정책과 조세 지출은 재무부가 가진 정책 수단이다. 이는 정부 정책 수단의 70%나 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를 끌어가는 ‘당근과 채찍’을 두루 가진 셈이다.

 재무부가 가공할 힘을 행사하던 시기는 개발 연대였다. 이 때는 정책적으로 특정 산업과 기업에 자금을 몰아주었다. 70년대 이재 2과장은 기업에 국민투자기금을 주면서, 곱게 보이면 50억원쯤 더 얹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80년대 부실 기업 정리 때도 한 차례 금융과 조세를 지원하는 권한을 행사했지만 갈수록 재무부의 배분권은 약화됐다.

 ‘고압적이고 오만하다’‘보수적이고 관료적이다’같은 재무부에 고착된 나쁜 이미지는 이 때부터 생겼지만 배분권이 현저히 사라진 이후에도 붙어 다녔다. 이를 재무부 사람들은 억울해한다. 한 고위 관료는 “돈 배분권의 창구가 재무부였다. 재무부가 이 권한을 행사했다는 말과는 구별해야 한다. 은행장 인사 역시 상층부에서 결정됐지, 재무부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이견을 표시했다.

 지난해와 올해 재무부는 금융기관의 팔목을 비틀던 굵직한 규제를 풀었다. 금리 자유화와 인사 자율화, 점포 신설 자유화 등은 획기적 조처로 볼 만하다. 金永燮 전 이재국장은 “금융 자율화를 위한 큰 틀은 이미 단행된 것이다”라고 밝힌다.

 재무부는 다른 부처에게도 욕을 먹는다. 각 부처가 일을 하려면 최종적으로 재무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주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다. 재무부 업무는 기획원의 예산 편성처럼 자르는 일이다. 한정된 자원을 토막 칠 수밖에 없고 ‘칼질’대상이 된 부처는 불만을 갖는다. 헤프게 쏟아부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나라 살림은 결딴난다. 재무부는 곳간지기로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처지,형편,견해,주장이다.

 특히 경제기획원과는 견원지간으로 비친다. 기획원은 예산 편성권을 무기로 다른 부처를 쉽게 장악하지만 재무부는 잘 안된다. 독자 사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획원과 재무부의 알력은 감정 대립이 아니라면 한국 경제에 그리 나쁘지 않다. 진취적인 조직과 보수적인 조직의 대립은 견제와 균형의 미학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들에 둘러싸인 재무부는 몸을 낮추려고 애를 쓴다. 어찌됐든 부정적 이미지는 재무부의 행로에 짐이 되기 때문이다. ‘안되는 일일수록 친절하게’라는 구호나 방문객 설문조사 등은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이다.

 홍장관의 쇄신 열정은 3월 초의 ‘용퇴 발언’에서 절정에 이른다. 지난 연말 송년회에서 홍장관은 카드회사로 옮기는 설○○과장에게 “후배들을 위해 용퇴해줘서 고맙다”고 거듭 칭찬했다. 그는 최근 1급에 대한 용퇴 권유에 실패했지만, 조직의 신진대사를 위해 앞으로도 용퇴를 종용할 방침이다. 재우회에 대해서도 선을 긋겠다고 언급했다. 나갈 때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를 쓰겠지만 그 다음은 친정을 바라보지 말고 자기 능력으로 개척하라는 요지였다. 87년 결성된 재우회는 6백30명의 재무부 전직 관료를 거느린 막강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현직 금융기관 인사만 2백 60여 명이고, 이 가운데 기관장은 30여 명이나 된다. ‘한번 재무부 사람은 여우언한 재무부 사람’이라는 이들의 끈끈한 유대감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모피아(재무부 영문 약자인 MOF에 마피아를 합성)’로 불린 위세는 현저히 약화할 게 분명하다.

“권한 약화로 인한 정보 부족이 슬프다”
 李桓均 제1차관보는 “재무부는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행정을 펼치려 한다. 군림하는 자세가 아니라 서비스하는 자세로의 변신이다. 재무부는 경기 원칙을 세우고 시장 질서를 감독하는 고유 기능으로 돌아간다”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재무부의 영향력이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재무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오히려 현재의 한국 재무부는 그들에 비해 권한이 약한 편이다. 엘리트중의 엘리트가 재무부로 몰리는 현상은 각 나라가 공통적이다. 도쿄 대학이 지배하는 일본 대장성,‘옥스브리지(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합성어)’인맥을 형성하는 영국 재무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재무 관료의 유달리 강한 자존심은 미국 재무부의 고집불통을 상징하는 ‘T-맨’이나 루브르 궁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프랑스 경제재무부를 지칭한 ‘세계의 중심은 파리, 파리의 중심은 재무부’라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재무부는 격변하는 시기에 정책적인 고민과 갈등을 겪으며 일종의 금단 현상도 앓고 있다. 금융정책과 金錫東 서기관은 “금단 현상은 세대를 걸쳐 오면서 약화됐다. 오히려 권한 약화가 정보 부족으로 연결되는 게 젊은 관리들의 슬픔이다”라고 말했다.
 재무부의 변신은 의식 개혁의 차원으로 옮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눈길은 매섭다.
張榮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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