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공부, 결과는 무직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1.09.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사 실업자 갈수록 적체… 외국 유명대학 학위소지자도 되돌아가기 일쑤

서울 ㅇ여대 국문과 시간강사 ㄴ씨(37) 는 요즘 회한에 잠겨 있다. 지난 8년간의 강사생활이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날 것 같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주부로서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참으며 그가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교수직에의 희망 때문이었다. 89년에는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는 이 희망을 잃었다. 그동안 여러 대학의 교수요원 모집공고 때 몇 차례 원서를 내봤지만 그때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교직의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대학측의 부당함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됐다. 지금은 전임교수가 안 돼도 좋으니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이라도 계속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앞으로 3년밖에 안 남았다.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계속 늘어나자 그가 속한 학과에서도 내년부터는 시간강사 연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 기간이 3년이다.

“생각해보면 후회가 크다. 무엇을 이루어보겠다고 그동안 그 야단을 치며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요즘 그의 심정이다.

그의 경우는 그동안의 노력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라는데 대한 허탈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강사 연한제에 밀려 대학을 떠나야 하는 많은 남자 강사들은 허탈감에 빠져 있을 여유도 없다. 당장 가족의 생계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던 ㄱ대학 국문과의 경우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자리를 못 잡은 사람이 10여명에 이른다. 그들 중에는 40대 시간강사들도 있는데 지금은 교직을 포기하고 대학 입시학원 강사 등 생업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박사학위가 존경의 상징이었고, 품위 있고 보수를 많이 주는 직장을 구하는 보증서 구실을 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들의 경우 박사학위가 있어도 전임강사 자리를 얻지 못하면 중매도 안들어 온다고 한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또 그만큼 대학의 전임강사 자리는 쉽게 얻을수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서울에 있는 대학은 거의 자리가 찼고 지방대학에서도 요즘은 경쟁이 극심하다.

경상계열이나 이공계의 공대 등 응용학문 분야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아직도 기업체나 연구소 등으로 진출할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체에서의 대우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예전에는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오면 대개 부장급 대우를 해줬는데 요즘은 과장급도 얻기 힘든 편이라는 것이다.

교수 30명 모집에 국내외 박사 4백 명 몰려
경상 ·이공계열도 교직쪽은 이미 포화상태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경우 예전에는 석사학위만 취득해도 지방대의 전임자리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박사 학위를 취득해도 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姜林鎬씨의 말이다. 그는 “서울 소재 대학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외국학위는 필수적이고 그것도 웬만한 수준 가지고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난 8월 홍익대에서 교원채용 공고를 낸 적이 있었는데 30명 모집에 국내외에서 4백여명의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원서를 냈다. 뽑힌 사람들은 미술대학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국에서도 일류급이라고 알려진 대학의 학위소지자들이었다(52쪽 표1 참조).

국내학위만 가지고는 교직진출이 어려워지자 최근에는 국내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외국으로 다시 나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ㅅ대 정외과에서 지난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ㄱ씨는 그것만 가지고 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외국대학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올해 유학을 떠났다. 이른바 포스트 닥터제라는 것이다. 그동안 이과계통에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일정기간 선진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외국으로 다시 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공계보다 박사학위 취득 기간이 2배에 가까운 문과쪽에서는 드문 현상이었다. 요즘에는 문과에서도 몇몇 대학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학위를 따가지고 왔다고 해도 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ㅇ씨는 대학졸업 이후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몇년 하다 유학을 떠났다. 결국 학위를 받고 돌아왔지만 대학에 자리가 나지 않아 고등학교 교사로 다시 복귀해야 했다. 그래도 그는 최근에 부산에 있는 대학에 자리를 잡아 잘 풀린 경우에 속한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가 자리를 못 잡고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아예 돌아오지도 못하고 현지에서 계속 원서만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韓相仁씨(42)는 73년 ㅇ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고생 끝에 89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국내의 극심한 구직난 때문에 귀국할 엄두를 못 내다 최근 어렵게 파리 제7대학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에 의하면 프랑스에만도 박사과정의 유학생들이 국내 각 대학별로 평균 20여 명씩 되는데, “힘들게 공부해서 돌아와 봐야 결국 시간강사 자리도 잡기 힘든 현실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한다.

“이제는 유학을 가더라도 적당히 학위만 받아가지고 오던 시대는 지났다. 어느 대학의 어떤 지도교수 밑에서 학위를 땄는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얼마나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는가 하는 것도 평가기준이 되고 있다.” 홍익대 교무부처장 林海喆씨 의 말이다.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교직 이외에 달리 진출할 분야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거의 전분야가 적체돼 있다. 특히 정치학과나 사회학과처럼 교직체제가 잡힌 학과일수록 더 심하다. 이밖에 독문학 불문학 사학 철학과 같은 순수 인문과학은 모든 분야가 적체돼 있다.

일부 대학에선 채용조건으로 금품 요구
ㅅ대 국문과 박사과정에 있는 ㅈ씨에 따르면 요즘은 인문사회계열 학위 소지자의 경우 교수직 진출 희망을 포기하고 다른 생업에 종사하면서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어쩌면 건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문과학 학위소지자들 중에는 “순수 기초학문에 대해 전혀 배려를 하지 않는 이사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동안 대학들이 부족한 자리나마 교수요원 채용을 엄격하고 객관적으로 해왔다면 이러한 불만은 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 교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경우가 있어왔고 또 학연 및 지연, 그리고 대학 재단 측의 자의에 따라 채용되는 사례가 많아 불신을 사고 있다.

“교직 채용과정에서 학위논문은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몇몇 지방대학에서는 학위논문을 잘 쓴 사람이 불리한 경우도 있다”고 ㅅ대의 ㅈ씨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지방대에서는 터줏 대감격인 기존 교수들이 실력 있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은근히 견제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또 일부 사립대에서는 교직채용 조건으로 대학발전기금 명목의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예로 든 강사 ㄴ씨는 지난 해 가을 모대학 면접시험 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 “당시 그 대학의 총장 학장 교무처장 등으로 이루어진 면접위원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것은 학위논문의 내용이나 교육에 대한 입장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남편 직업이 무엇인가, 그리고 심지어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런 질문들을 받으면서 그는 순간 “이렇게까지 하면서 교수를 꼭 해야 하는 것인지”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같은 대학의 ㄱ씨는 그보다 더 지독한 일을 당한 경우이다. 그는 지방의 모전문대학에서 몇 년 동안 강사료 한푼 안받고 시간 강사를 했다. 강의경력을 쌓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마침 그 대학에 전임강사 자리가 하나 났는데 학교 측은 그에게 전임을 주는 조건으로 몇 천만원의 돈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런 요구에 대해 대개 거절하는 편이라고 한다. 실제 일부 대학의 경우 그 요구에 응하는 사람이 없자 한 학기에 몇 번씩 교수 채용공모를 하기도 한다. 서울대 불문학과의 모 강사는 “돈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자제 중 그런 식으로 교직을 얻은 사람이 많다. 어떤 경로든 일단 교수 사회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분개했다.

학위는 양산하고 채용엔 인색
대학당국이 편법으로 교수를 채용했다가 소동을 벌인 사례도 있다. 지난 6월 서울의 모 사립대학에서는 철학전공 교수요원 1명을 모집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철학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몰려들어 경쟁률이 15대 1이나 됐다. 그러나 결국 교수로 채용된 사람은 철학과는 상관없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이 대학 재단 이사장의 친구였다는 것이다. 문학 쪽에 자리가 없자 엉뚱한 사람을 철학전공으로 둔갑시켜 채용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이 학생들에게 알려져 물의가 빚어지자 학교 측에서는 서울대 철학과에 시간강사 1명을 빨려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소동을 벌였다.

지금처럼 수많은 박사학위 소지자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대학가 주변을 맴돌게 된 데에는 근본적으로는 학력에 의해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우리 사회의 풍토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접 적으로는 졸업정원제 이후 대학당국들의 편의적인 대학운영과 이를 묵과하고 있는 정부당국에 책임이 있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그동안 대학당국은 등록금 수입만을 노리고 대학원을 마구 증설해 박사학위 취득자들을 양산해놓고는 이들을 교직으로 흡수하는 데는 인색했다는 주장이다.

졸업정원제의 영향을 받지 않은 80년도 전국의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5백28 명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90년 한해 동안 배출된 박사학위 취득자는 5배 웃도는 2천7백 47명이다(위 표2 참조). 각 대학마다 80년에 비해 4배에서 5배씩 더 많은 박사들을 배출한 셈이다.

반면 대학당국은 늘어난 학생 수에 비해 교수직을 늘리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드는 전임교수 대신 이들 박사학위 소지자들을 시간강사로 대거 채용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아왔던 것이다. 현재 대학교수의 한달 월급은 9시간 강의를 기준으로 2백만원대인 데 비해 시간강사는 똑같은 시간을 강의하고도 그 10분의 1 정도인 20만 ~30만원대를 강사료로 받고 있다. 한국노총이 3인 가족 최저생계비로 설정한 67만5백 21원의 3분의 1 수준인 것이다. 전국강사노동조합 韓勉熙 위원장의 말대로 시간강사들의 노동력이 대학당국에 의해 착취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법정교수 요원의 3분의 1 범위 내에서 시간강사 3인을 교수 1인으로 인정 한다”(대학 설치기준령 제6조)는 조항을 두어 이러한 편법을 방조해왔다.

교수보다 더 많은 시간강사들
졸업정원제 이후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 1인당 학생수 비율의 변화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75년 당시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20.9명으로 당시 18.8명이던 일본과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졸업정원제로 학생수가 가장 많았던 85년 일본은 17.2명으로 줄어든 반면, 한국은 37.7명으로 최악을 기록했다. 그 이후 이 비율이 완만하게 낮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90년에만 해도 33.6명이다. 이 기간에 각 대학의 교수와 시간강사의 구성비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사립대의 경우 89년에는 교수 1백명 대 시간강사 1백3명을 기록해 대학 사상 처음으로 시간강사 수가 교수 수보다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그 이후 이런 추세가 변하지 않고 있다. 현재 사립대의 전임 교수는 2만2천6백 명인데 비해, 시간강사는 2만3천5백 명이다. 결국 그동안 대학당국이 교수는 늘리지 않고 박사학위만 양산 해온 게 학위소지자들의 정체를 심화시킨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면희 위원장은 “대학당국의 이런 편의적인 대학운영이 결국 대학교육의 부실화를 초래한 원인이다”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는 자신의 진로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대부분 ‘어떻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선배들의 피곤한 모습을 보면서 차츰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올해 박사과정 2년째인 ㅇ여대 국문과 ㄱ씨는 박사과정 입학시험에 합격했을 때 선배들로부터 “축하를 해야 할지 애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무척 착잡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애써 공부한 학문이 나중에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