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는 젊은 여성의 전형”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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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즐거운 사라》펴낸 마광수 교수

에로티시즘 소설집은 대개 ‘작가의 말’이 길다. 우리 사회의 에로티시즘에 관한 높은 벽 앞에서 할 말이 많은 것이다. 마광수 교수(40 ·연대 국문과가 최근 펴낸 《즐거운 사라》(서울 문화사 펴냄)도 마찬가지다.

마교수는 이 소설에서 “90년대의 여성상”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광수의 《사랑》에서부터 70년대 《별들의 고향》 80년대《숲 속의 방》 등에 이르기까지 문학이 제시한 여성상을 “리얼하지 못한 허상들”이라고 판단한 것이다.소설 속에 사라는 미대 3년생으로 처녀막과 결혼 사이에서 ‘섹시 신드롬’과 콤플렉스 때문에 방황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대학생활을 성을 학습하는 기간으로 여기고 있으며 처녀막 파열을 예방주사로 생각한다. 반성이나 논리가 없다.

이 소설이 병적인 개인들의 내면세계에 치중한다는 비판에 대해 작가는 “겉모습보다는 내재작 인간형을 형상화하고 싶었다”고 답한다. 사라는 물론 실재하는 인물은 아니고 사건의 전개도 작위적인 구석이 있지만 작가는 이같은 유형의 여성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사라는 이른바 ‘전망의 제시’같은 현실인식은 없으며, 육체적으로는 개방돼 있는 듯하지만 아직도 결혼과 가족 이데올로기에 제약당하는 이 시대 젊은 여성의 한 본보기이다.

이 소설은 윤리와 반윤리, 절제와 일탈 사이를 넘나드는 우리사회의 내면세계를 제시한다. “이 소설은 외설에 가까운 몰염치성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문학적인 몰염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는 그의 주장은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한편 그의 소설들은 에로티시즘의 단순 재생산이며 신세대들에 또 다른 성적 억압으로 작용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은 기우”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 사회는 자정능력이 있으며 신세대들은 기성세대의 선입관처럼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고 그는 믿고 있다.

“정치적 독재는 윤리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총리 사건이나 소련 쿠데타 실패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에서 그는 보수주의의 깊은 뿌리를 새삼 발견했다. 다시 윤리를 내세우는 정치  ·사회적 흐름을 억압의 부활로 해석하는 것이다. 성이 개인적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서도 그는 “성윤리의 자율성을 얻어나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육화된다”는 ‘진보적’생각을 갖고 있다.

서구의 기계문명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한 뒤 정신을 상위에 놓는 정신주의라고 규정하는 그는 이제 ‘육체주의의 시대’로 옮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견해는 인류가 생명(몸)의 문화로 이행할 것이라는 전망과 맞물리면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정신에서 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에로티시즘의 역할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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