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 1번지는‘워싱턴 대사관’
  • 워싱턴ㆍ김승웅 편집의원 ()
  • 승인 199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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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ㆍ장관 비서ㆍ총무과 출신이 독차지…정실ㆍ편파 인사 의혹 여전


 한승주 외무부장관은‘핵외교’라는 개인 실기를 놓고 따질 때 수재 장관 소리를 들을 법하다. 국제정치학자 특유의 현실 접근 방식이 주효했고, 여기에 아름답다는 소리까지 듣는 영어 구사와, 때맞춰 터진 북한 핵이라는 난제가 그의 주가를 올린 덕분이다.  그러나 외무부 수장으로서는‘낙제 장관’소리를 듣는다. 외무부의 고유 업무, 그 중에서도 특히 외무 행정의 핵심인 외교관 인사에 관한 한 외무부 직원들의 불만이 2~3배로 증폭돼 있다.

 그가 외교관 인사를 놓고 큰 실책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그의 재임 1년은 역대 외무부장관 누구도 단행치 못한 혁혁한 전과를 올린 한 해였다. 외무부는 직제가 다른 부처와 다른 곳이다. 다른 부처에는 많아야 기껏 서너명인 1급짜리 직급만 53명(외무관)이 포진해 있다. 또 이 1급 위로 해외 공관장에 해당하는 특2급(37명), 특1급(47명)이 있어 1년에 한번 외무부 본부에서 열리는 해외 공관장회의는 말 그대로 별들의 잔치가 된다. 한장관은 취임과 함께 별솎아내기를 해, 특1급의 수를 30명으로 17명 줄이고 2급은 10명 늘렸다. 또 그밑의 1급 수효도 53명에서 70여 명으로 늘리는 등, 가분수였던 외무부의‘위’를 쳐내 정상적인 피라미드형 체제를 굳혀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 군사 정권 때처럼 당장 내쫓는 인사는 아니고, 앞으로 2~3년 안에 근속 정년이나 직급 정년 또는 연령 정년에 걸려 자동으로 옷을 벗도록 순리를 따랐다. 이런 혁혁한 전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낙제 장관 소리를 듣는 이유는 단 한가지, 주미대사관 직원의 발령에 얽힌 정실ㆍ편파 인사를 혁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싱턴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은 모두 1백35명이다. 이 가운데 무관등 다른 부처 직원 45명, 현지 고용원 62명을 제외하면 정규 외무공무원 출신 외교관 수효는 기껏 28명이다. 외무부 전체 직원 1천5백명을 놓고 보면 50분의 1도 안되는 워싱턴 공관의 인사가 뭐 그리 심각한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가 그리 단순치 않다. 외무 행정의 비리와 파행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환부가 워싱턴 공관이다.

‘기름에 두 번 튀긴 사람들’
 외무부에 갓 발을 들여놓은 병아리 외교관에서부터 대사(大蛇)급 거물 외교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한번쯤 바라는 근무처가 바로 워싱턴이다. 그리고 이런 소망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48년 건국 이후부터 계속돼 왔고, 대미 외교가 한국 외교의 큰 산맥을 이루는 한 앞으로도 이어질 추세다. 우리나라 외교관뿐만 아니라 이웃 일본 외무성이나 유럽 여러 나라, 인도 파키스탄 외교관들까지도 저마다 워싱턴 근무를 평소의 꿈으로 간직하고 있다. 문제는 주미 공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미 공관원을 선발하는 과정에 있다. 28개 밖에 안되는 자리를 놓고 외무부 안에서 극심한 경쟁이 벌어져 왔다. 그리고 그 경쟁이 누가 보아도 납득할 만한 공개 경쟁이 못되고 학연이나 개인 간의 친소, 그리고 외무부 특유의‘같은 근무지에서 쌓인 유대감’에 좌우되는 정실ㆍ편파 인사가 성행해온 데서 비롯한다.

 외무부 직원을‘기름에 튀긴 자’들로 폄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현실을 파악하는 안목이 다른 관리들보다 출중한 데다 문제에 접근하거나 이탈하는 방식이 미끈하다는 장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이곳 워싱턴 공관의 외무부 요원들을 같은 표현으로 묶는다면 ‘기름에 두 번 튀긴 자’들이 된다. 이들 거개가 청와대 파견 근무 경험이 있거나 외무부장관의 보좌관 또는 비서 출신이거나 아니면 하급 외교관 인사를 실무로 다루는 외무부 총무과 출신이다. 이 세 분야의 머리글자만을 딴 이른바‘청ㆍ비ㆍ총’출신 아니라고는 언감생심 발 붙일 생각을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워싱턴 공관 자리다.

 청와대에 파견 근무한 경험이 있을 경우 인사 결정권자에 접근하기가 쉽고,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동원하는 데 유리하다. 인사 결정권자란 외무부장관을 뜻한다. 또 장관은‘수족처럼’부리던 보좌관이나 비서한테 빚을 졌다고 생각하기 십상이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주는 것이 으레 워싱턴 자리다. 청ㆍ비ㆍ총이 되면 다음번 포스트는 워싱턴 공관임을 자타가 함께 인정하는 풍토가 외무부 안에 구축돼 있다.

악습 철폐 위한 결단 내려야
 청ㆍ비ㆍ총의 가장 심각한 병폐는, 이들이 워싱턴 근무를 한 차례로 만족하지 않고 반복 또는 심한 경우 연거푸 세 차례나 독식하는 데 있다. 외무부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 웬만한 지역의 이사관급 공관장이 되기까지 20여 년에 걸쳐 치르는 해외 근무 횟수는 대충 4~5차례에 이른다. 이 가운데‘워싱턴 근무’라는 자랑스런 경력을 지닌 외교관은 극소수에 불과하나, 지금 현재 워싱턴 공관에 근무하고 있는 외교관 가운데는 두세 차례 해외 근무 모두를 워싱턴에서만 한 강심장 외교관도 적지 않다.

 한승주 장관에 대한 낙제 점수는, 그가 문민 정부의 첫 외무부장관이면서도 이같은 악폐를 근치할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당연히 척결할 사항이고, 척결할 시점인에도 불구하고‘핵’만을 핑계로 개인기를 과시하는 데 연연했을 뿐, 시대나 정부가 요구하는 개혁과는 무관한 위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혁파는 고사하고 최근까지 데리고 있던 보좌관 한 사람을 주미공관 참사관으로 발령내고,‘후사’까지 당부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또 고교(경기고), 대학(서울대 외교학과) 동기 동창을 새 공관장에 임명한 것 때문에 외무부의 분위기는 극도로 험악해져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장관의 이런 비리를 다른 사람 아닌 청ㆍ비ㆍ총 출신인 이곳 워싱턴 공관원들이 규탄하고 있다는 아리러니이다. 한장관이 뭔가 단안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피라미드 체제를 굳힌 과단성을 또 한번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다.
워싱턴ㆍ金勝雄 편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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