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유전 개발을 최우선 사업으로
  • 남유철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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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비밀’ 첫 공식화…원유공업부도 신설

극심한 에너지 난에 봉착한 북한이 지역 내 유전 탐사를 국가 최우선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북한은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7차 회의 (4월6~7일)에서 ‘원유공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여 탐사 설비와 장비를 강화하며, 유망한 지구들에 대한 탐사에 힘을 집중하여 더 많은 원유 매장지를 찾아내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한 당국이 지난 30년간 비밀에 부쳐온 유전 개발에 관해 공식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앞으로 북한은 유전 개발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서방 석유회사를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서한만과 동한만 퇴적 지역에서 석유 탐사를 실시해 온 북한은, 서방 석유회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작년에 자원개발법을 새로 제정했고, 효율적인 정책 집행을 위해 최근에는 전담부서인 원유공업부를 정무원(행정부) 산하에 신설했다고 유력한 북한 소식통들이 전했다.

극소수 해외 석유 탐사 전문가들에게만 알려져온 북한의 ‘석유 찾기’가 최초로 공식화하자, 우리 정부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통일원은 북한 최고인민회의에 대한 내부 분석 보고서에서 ‘북한 당국이 원유 탐사에 대한 구체적 관심을 공식으로 표명한 것은 금번 최고인민회의 결정이 처음으로, 앞으로 정무원 해당 부서의 집행 대책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할지 주목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64년 서한만에서 처음으로 자력 탐사를 실시한 이래, 서한만과 동한만의 퇴적 분지를 중심으로 끈질긴 석유 탐사를 벌여 왔다. 87년 북한은 이란의 리워드(Leeward Petrochemical Products), 호주의 메리디언(Meridian Oil NL)과 서한만 조광권 계약을 체결했고, 작년에는 스웨덴의 타우루스(Taurus Petroleum AB)와 계약해 현재 탐사 작업을 진행중이다 (《시사저널》 제192호 커버 스토리 ‘북한, 산유국 가능성 높다’참조).

서방회사 유치에 주력
동한만에서는 일본 회사와 수차례 탐사 기초작업을 벌였고, 내륙 지역에서는 캐나다 석유회사들과 석유 · 천연가스 탐사 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은 석유 발견에 대한 끈질긴 집념을 보여왔으나, 아직 자금과 기술 부족으로 경제성 있는 유전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북한의 ‘주체 경제’가 해결할 수 없는 유일한 문제가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다. 북한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서방 석유회사들과 끈질기게 접촉해 왔다. 해외의 북한 소식통들에 의하면, 지난해 9월 김정우 대외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이 홍콩에서 만난 5개 서방 석유회사 간부들 가운데 일부가 올해 들어 북한을 직접 방문했다.

북한의 에너지 수급 사정은 북한 당국이 최고인민회의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계속 악화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최대 정유공장인 승리화학공장을 직접 방문한 한 유럽 석유업자는, 원유공급 중단으로 연산 2백만t의 승리화학공장이 사실상 완전히 폐쇄된 상태라고 말했다. 승리화학 공장의 가동 중단은 러시아와 해상으로부터의 원유 공급이 실질적으로 중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90년까지 옛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매년 약 2백50만t의 원유를 수입했으나 최근엔 그 양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정유공장은 신의주 부근에 있는 봉화화학공장으로, 중국 대경유전으로부터 송유관으로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 봉화화학공장은 정제 규모가 연산 1백50만t인데, 작년부터 북한에 공급된 원유는 많아도 2백만t을 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한 해 약 4백만t이 넘는 원유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전 개발은 북한에게 체제 유지와 경제 난국 극복이라는 두 지상 과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카드’로 인식되고 있다.
南裕喆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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