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입을 열어라”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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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지 《대화》의 발행인인 池明觀씨(71)의 현 직함은 한림대 한림대학원 일본학연구소 소장이다. 지난해 《벚꽃은 오래 피지 않는다》를 펴낸 일본 문화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약력은 한국 정치사와 관련해 상당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지명관씨는 60 ~ 72년 덕성여대 교수였으며, 64 ~ 66년 고 장준하씨 밑에서 《사상계》 마지막 주간을 지냈다. 그 후 《사상계》는 곧 부완혁씨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74년부터 93년 4월까지 일본 동경여대 교수로서 철학과 기독교윤리학을 강의했다. 20년 동안 고국을 떠나 있은 셈이다. 왜 그랬을까.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독재 정권에서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언론의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된 3년 전 노태우 정권때 들어오려고 했는데, 마침 몇 해 전에 동경여대에서 한국학 강좌를 열었습니다. 첫 졸업생은 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좀 늦어지게 되었죠.”

 그래서 그는 군사 독재 정권이 형식적으로 마무리된 93년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첫 사업이 《대화》를 만든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화》는 60년대 《사상계》의 90년대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군사 정권에 빼앗긴 문화 광장 회복해야”
 “군사 정권에 빼앗겼던 문화 광장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습니다. 5년 전부터는 강원룡 목사와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가다듬었습니다. 최소한 월간지까지는 가야 할 텐데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가 문화 광장 회복을 외치는 것은 현재의 언론 · 출판이 ‘히스토리’보다 ‘스토리’에 급급한 것도 한 원인이 된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일견 진보하고 전진하는 것 같지만, 마음은 공허하고 사회는 갈등 그 자체입니다. 문화는 무작정 달려가기보다는 때로 차분하게 쉬면서 정리하고 되새겨 주는 기능을 합니다. 정부는 개개인의 인성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도 없고, 하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 ‘문화주의’가 필요한 겁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단순한 스토리를 전달해 주는 기능에서 그치지 않고, 늘 히스토리를 조화하려 노력합니다. 꾸준히 자기 수정을 가하면서 나가는 노력, 그런 철학이 필요합니다. 독일에서 하버마스는 《슈피겔》에 늘 기고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화》는 그런 사회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습니다.”

 그는 당대 한국의 문화 상황을 높은 곳에서 떨어져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된 귄터 그라스의 《양철복》주인공에 비교한다. 그래서 일단은 자라지 못한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옛날에 비해 지식인들의 참여 의식이 많이 감소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요사이에는 석학의 말보다 대중 가수나 탤런트의 말 한마디가 언론의 주목을 더 받는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지식인의 영향력이 감소했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지식인이 과거처럼 유민(遊民)적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입도 높아졌고 편해지다 보니, 사회를 개혁함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삶의 의미화’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는 지식인의 퇴장은 있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서울은 여태까지 문화를 수신만 했지 발신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 걸맞게 세계를 향해 지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문화를 발신하는 그런 서울,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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