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와 FBI 불똥 튀는 맞대결
  • 위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1994.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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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통신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이 싸우면 어디가 이길까. 언뜻 호랑이와 사자의 힘자랑 퀴즈처럼 흥미롭게 들릴 법하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올 수 없다. 숲속에 사는 호랑이와 초원에 사자가 거의 마주치지 않듯이, 해외 공작을 전담하는 중앙정보국과 미대륙 내의 수사 총책인 연방수사국이 충돌하지 않도록 정부조직접과 중앙정보구설치법에 엄격히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중앙정보국과 연방수사국이 호랑이와 사자를 한울에 넣은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맞아 불똥이 튀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2월 연방수사국이 중앙정보국내 이중 간철 앨드리히에임즈와 그의 부인 로사리오를 수사하면서 시작됐다. 에임즈는 중앙벙조국내 소련과 동유럽 지역 대간첩작전 책임자였으나,러시아 국가 보안위원회(KGB)의 매수공작에 말려 9년 동안 2백70만달려(약22억원)를 받고 이중 간철 노릇을 해오다 검거된 인물이다(《시사저널》제229호 워싱턴 통신 참조).

 중앙정보국 내부의 일이지만 에임즈 부부를 검거한 장소가 국네(워싱터 D.C. 근교 주택)이니만큼 수사는 일단 연방수사국이 하는 것이 미국법이다. 이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관 대 수사기관 특유의 알력과 집단이기주의가 부딪쳤다. 에임즈 사건과 관련해 연방수사국에 호출당하는 중앙정보국 요원들에게 중앙정보국 상부로부터‘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떼라’는 지시가 내려지고,중앙정보국의 명성과 관련한 부분에 관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무방하다’는 주문까지 뒤따른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중앙정보국 내의 한 밀고자가 의회 상?하 양원 정보위원회에 팩시밀리로 보낸 4~5쪽짜리 비밀 전문을 통해 밝혀졌다.

 역사상 전례 업슨 중앙정보국과 연방수사국의 불편한 관계는 상?하 양원으로 하여금 각각 정보위원회를 소집하는 사태로까지 비화했다. 제임스 울시 중앙정보국장은 상?하원 청문회에 끌려 다니기에 바쁘고, 이를 쫓는 언론은 수사기관 사이에 벌어진 영역 싸움으로 보고 사건을 흥미 위주로 몰고 있다. 상?하원 정보위원회의 청문회는 일단 비밀이 관행이니만큼 내용이 쉽사리 밝혀지지는 않고 있지만,울시 국장의 답변은 지송 강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그가 청문회 답변후 NBC 텔레비전의 ‘투데이 쇼’에 나와 같은 말을 네 차례나 되풀이 강조한 대목을 봐도 역력한데,이 발언 자체가 다시 불똥을 튕겨 화제다.
 “에임즈 사건 하나로 그칠 일이 켤로 아니다.(여러분은) 상당히 많은 간첩 사건을 앞으로 미 행정부 기관 내에서 두고두고 목격하게 될 것이다.”

“여론의 관심을 연방수사국으로 돌리려는 흉계”
 미국 조야는 발칵 뒤집혔다. 되살아난 매카시즘의 약령에 쫓기듯, 울시 국장의 발언 취지와 의미를 놓고 위싱턴 정가가 크게 휘청댔다. 발언 가운데 특히 ‘상당히 많은 간첩사건’이라는 대목이 문제가 됐다. 에임즈 부부말고 러시아의 공작금을 먹은 관리가 또 있다는 애기인가. 그런 관리가 중앙정보국 내에 또 있다는 얘기를 중앙정보국 국장 입으로는 차마 못할 테고, 그렇다면 어느 기관이라는 말인가???. 추축은 추축을 낳고 그 종점은 결구 같은 수사기관인 연방수사국에까지 닿았다.울시 국장의 진의는 결국 연방수사국을 겨냥한 뒤틀린 심경의 일단이라고 보는 것이 의회와 언론의 해석이다.

 상원 정보위원장 드니시 드콘치니 의원(민주당?애리조나 주)은 “울시 국장이 뭔가 강박 증세를 보이고 있다”라고까지 진단했다. “에임즈 사건에 쏠리는 여론의 관심을 연방수사국 쪽으로 돌리려는 흉계”라고 매도하는 나선 것이다. 언론들은 울시의 ‘강박 증세’가 최근에 터진 중앙정보국 비밀 전문으로 더 악화해 있을 것으로 본다.

연방수사국도 나름대로 고웅을 안고 있다. 에임즈의 아내 로사리오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함으로써,당초 연방수사국이 기대했던 ‘유죄답변거래’가 깨질 위험에 처행 있기 때문이다. 유죄답변거래(plea bargaining)란, 피고가 유죄를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보하는 법률 행위이다. 연방 수사국은 중앙정보국의 내막이 법정에서 미주알 고주알 밝혀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유죄답변거래를 원했다. 중앙정보국이 예뻐서가 아니라, 연방수사국의 상급청인 법무성이 국익을 판단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궁지에 몰린 울시 국장은 21일 ‘상당히 많은 간첩사건’이라는 표현 가운데 ‘사건’을 ‘단서’고친다고 정정했다. 단서는 한갓 혐의로 그치되,사건은 입건에 따르는 법무 행벙 용어로,이 역시 연방수사국 상급청인 법무부의 권위를 건드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이 싸우되, 이처럼 법 안에서 싸운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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