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라운드는 오지 않는다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4.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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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 내용 잘못 파악한 ‘과장된 우려’ 많아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이곳에 북적 거리는 외국 특파원들에게 친절한 도시가 아니다. 미국 정부 기관이나 콧대 높은 미국 관료들은 영향력 없는 외국 기자들은 일단 상대해 주지 않는다. 미국에도 꽤 많은 지식인 독자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 워싱턴 특파원이 ‘도대체 취재가 되지를 않는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하소연했을 정도이다. 이런 워싱턴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외국기자들에게 ‘비교적’ 친절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자료를 부탁하면 요구하지 않는 관련 자료까지 챙겨줄 정도이다.

 외국 기자에 대한 무역대표부의 비교적 관대한 배려는 계산된 통산 전략의 하나이기도 하다. 무역 상대국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이 전달되도록 해당국 기자들의 취재에 ‘선별적’으로 협조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역 대표부는 주요 통상국 언론이 미국 통상 관료들의 발언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잘 파악하고 있고, 또 이를 잘 이용할 줄도 안다. 얼마전 미키 캔터 대표는 중국이 미국에 엄청난 덤핑 수출을 하고 있다며 장황한 통계를 들먹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가 동원한 숫자들은 나중에 턱없이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캔터는 ‘계산된 실수’를 한 것이다. 당시 그의 발언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론과 의회를 ‘감동’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환경문제는 ‘의제’일 뿐 ‘라운드’ 될 수 없어
 미국과 끝없는 ‘통상 전쟁’을 벌여온 일본의 언론들은 로비스트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 통상 대표들이 이런 특성을 나름대로 잘 파악하고 있어, 캔터의 ‘겁주기’발언은 여과 없이 잘 보도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이 마음먹고 노리는 상대도 아닌데, 한국은 그의 발언을 순진무구하게 받아들여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전 캔터 대표는 의회 청문회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이 불만족스러울 경우 최혜국 대우를 박탈할 수도 있다”라고 말도 안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일부 한국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최혜국 대우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회원국들이 상호 부여하는 동등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처우일 뿐, 미국이 한국에 부여하고 말고 할 성질의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미국 통산 정책이 갖는 정치적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우려는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 국내에서 오히려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곧 그린(환경) 라운드 태풍이 불어닥친다고 하는 주장이다. 미국이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다루지 못한 환경 문제를 최근 집중적으로 제기하자, 환경과 무역을 연계하는 다자간 무역협상이 곧 전개될 것이라는 앞서가는 추측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우루과이 라운드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부적절한 우려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생겨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은,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에 준하지 않는 어떠한 보복 조처나 보호무역적인 법안도 금하고 있다. WTO에 반하는 모든 국내법도 WTO 협정에 합치하도록 고쳐야만 한다. WTO의 또 다른 특징은 이 기구가 국가간 무역 분쟁에 대해 법원과 같은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WTO 회원국들은 WTO 내에 설치되어 있는 분쟁 해결기구를 통해 무역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60쪽 도표 참조).
 WTO는 국제 무역에 관한 한 명실상부하게 유엔과 같은 국제적인 기구로 발돋움하게 될 전망이다. 다만 유엔과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WTO에서는 거부권 없이 한 표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이 WTO의 설립에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던 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가트가 주관해온 다자간 국제무역 협상은 일련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5차 협상에서부터 ‘라운드’란 이름이 붙었다. 라운드 가트 회원들이 국제무역의 자유화를 위해 벌이는 다자간 무역협상이라는 의미로 정할때, 일반인들이 인식과는 달리 환경 문제는 라운드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가트 체제가 해체되고 내년부터 WTO 체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환경과 무역을 연계하려는 선진국의 움직임을 ‘그린 라운드’, 노동기준과 무역을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블루 라운드’라고 부르고 있으나, 미국 통상 대표들은 ‘라운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어젠다(agenda), 즉 의제라는 말을 쓴다. 미국 무역대표부 게자피케티쿠티 수석자문관은 ‘그린 라운드’가 아닌 ‘그린 어젠다’라고 부르며, 그 이유는 앞으로 모든 무역 현안이 WTO 내에서 하나의 의제로 논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린 라운드 WTO 설립 정신에도 위배
 '그린 라운드‘란 말은 지난 91년 미 상원 무역소위원회 막스 보커스 위원장이 당시 진행중이던 우루과이 라운드에 빗대어 ’환경 문제를 고려한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으로서 그린 라운드도 출범되어야 한다‘고 연설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린 라운드를, 환경과 연계해 펼치는 통산 압력이라고 막연하고도 폭넓게 이해하더라고 ‘그린 라운드가 온다’는 발상을 타당치 않다. 국제환경협약은 72년 유엔환경선언이 나온 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현재 약 1백50개에 이른다. 이중 무역규제 조처를 포함하고 있는 협약만도 약 18개에 달하고, 한국은 비가입으로 인한 유ㆍ무형의 피해를 피하기 위해 기후변화협약을 비롯한 대표적인 협약들에 가입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약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의무를 수행하겠다는 협약이고, 설사 보복 조항이 있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WTO협정에 위배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미국은 WTO에서 환경과 노동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에 마라케시 선언식에서 WTO 내 무역환경위원회를 설립하는 안을 관철시켰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미국이 그린 라운드 출범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해석했으나 일방적인 힘을 사용할 수는 WTO내에서 미국이 환경문제를 논의하자고 하는 것은 (이를 끝내 저지할 수 없었던 국제적 현실을 고려할때 ) 오히려 개도국들이 택해야 할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WTO 협정은 아직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구석이 너무많다. 선진국들은 최대한 자신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를 해석하려 다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안정된 세계 경제질서를 보장해줄 WTO와 같은 국제기구나 누구보다 절실한 초강대국이다. WTO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극단적인 통상 공세는 미국으로 서도 자제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위협만 했지 실제 슈퍼301조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WTO가 다루지 않는 통상 분야에서 슈퍼 301조를 가지고 ‘협박’할 것이다. 자신들의 관심 분야를 WTO 의제로 삼지 않으면 WTO 체제 밖에서 쌍무협상으로 해결하겠다고 고집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통상 대표들은 모순되는 발언과 정치 공세를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보호를 구실로 추악한 보호무역의 탈을 쓴 선진국의 ‘그린 어젠다’는 결코 ‘그린 라운드’로 발전될 수 없다. 백개가 넘는 개도국이 이에 반대하고 있고, WTO 설립의 기본전제인 자유무역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린 라운드는 오지 않는다. 개도국이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환경제품만을 고집하는 이른바‘그린 소비자’들이 점차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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