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기장사 “위기가 호기”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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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 때 압력 노골화 … 주한미군에 배치한 뒤 판매하기도


 한반도의 긴장은 미국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까.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높아질 때마다 한국인들은 이렇게 자문하곤 했었다. 과연 한반도의 긴장과 미국 군수업체들의 이해를 연결시키는 발상은 한국 국민의 단순한 피해의식인가 아니면 엄연한 현실인가.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한국군 취약 분야의 우선적 보강을 명분으로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직접 무기 구매를 종용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이 시기를 전후해 미국의 무기 판매 노력이 더욱 노골화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두 나라 정부와 민간 간의 접촉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고 싶어하는 무기들을 살펴보면 △대포(對砲) 레이더 △탱크 표적 탐지 레이더 △지대공 미사일 △지대지 미사일 등이다. 한ㆍ미 간의 무기 거래에 정통한 방산업계의 한 소식통는 “최근 미국은 해ㆍ공군 전력의 경우는 주한미군의 전력을 강화해 보강할 계획이고, 한국측에는 지상군 전력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따라 지상군 전력 강화용 무기에 대한 미국의 요청이 과거보다 구체적이고 파상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 언론도 앞질러 보도
 이와 관련해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21일 페리 국방장관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아파치 헬리콥터를 포함한 상당량의 첨단 장비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고 서울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아파치 헬기 외에 대포 레이더, 지표 목표물 위성추적 장치(GPS), 야간조준경, 참단 통신장비 등이 한국 정부의 구매 목록에 포함돼 있다고 보도 했다. 국방부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아파치 헬기 구매 계획을 공식으로 부인했다. 다만 페리 장관의 방한과는 무관하게 ‘율곡5개년 계획에 이미 반영돼 있는 무기 계획 중 일부를 조정해 대포병 능력과 야간전투 능력의 향상ㆍ보완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 신문이 보도한 무기 명세는 국내 방산업계ㆍ군 관계자들의 지적과 대부분 일치한다. 다만 국내방산업계와 군 관계자들은 스팅어 미사일과 같은 운반용 지대공 미사일과 일부 지대지 미사일에 대한 구매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팅어 미사일은 83년 팀스피리트 훈련 당시 최초로 시범 운용되면서 한국에 판매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미국은 스팅어 미사일 기술이전 조건을 문제삼아 한국에 이 무기를 판매하거나 공동생산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92년 우리 정부는 스팅어 미사일 대신 프랑스 마트라사의 미스트랄을 구매하기로 최종 결정했었다. 당시에는 기술 이전 문제 외에도 스팅어 미사일이 한국군의 체형에 맞느냐 하는 놀란이 벌어졌었다. 미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한국군은 스팅어 미사일을 들고 쏠 때 상태가 흔들린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미국은 최근 방침을 바꿔 스팅어 미사일과 지대지 미사일 일부 품목의 한국 판매를 적극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아파치 헬기 구매 결정을 부인하고 있지만, 국내 방산업계에서는 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들은 주한미군에 특정 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사실상의 구입 행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군 출신인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군은 기동훈련 당시 재래식 무기를 반입한 후 이를 대외 군사판매(FMS) 차관형식으로 한국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회고했다.

0 지난 18일에는 91년 팀스피리트 훈련 당시 처음 시범을 보인 패트리어트 미사일 24기가 주한미군에 배치됐다. 92년 중기군사전략목표기획서(VSOP)에 따른면, 97년 새 방공 무기체계 기종을 결정하게 돼 있어 이미 ‘패트리어트급 미사일’ 구매는 계획돼 있는 셈이다(《시사저널》제226호 참조). 또 주한미군은 3월중 이미 1개 대대 규모(18대)의 아파치 헬기를 들여왔고, 앞으로 3개 대대로 늘릴 계획이다(《시사저널》제235호 참조).

76년 원했던 전투기 10년 뒤 인도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무기들은 적의 포병에 대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한ㆍ미 양국이 한국 지상군의 최대 취약 분야로 꼽고 있는 분야이다. 북한은 2천2백여 문의 방사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수원까지를 사정거리로 한 2백40㎜ 방사포를 서부전선에 집중 배치하고 있으며, 이는 패트리어트 미사일로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측 주장이다. 한ㆍ미 국방장관의 공동발표문에는 취약 분야를 우선 보강하는 방침의 예로 대포병전 분야가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사실상 구매를 확정한 것으로는 대포 레이더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이 제시하는 레이더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미국의 리튼사가 채택하고 있는 리택(Litacc)과 주한미군에 이미 배치된 택파이어(Tacfire). 두 나라 정부는 이 가운데 후자인 AN-TPQ 36과 37을 9세트 들여오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방산업체들은 자기네가 이 레이더를 개발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일부 국내 기업이 이 장비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려 왔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의 관심 품목인 지상목표물 위성 추적장치(GPS) 역시 대포병전 능력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한국에 구매를 종용해 왔다. 이와 같은 피아 위치를 식별하기 위한 장비는 80년대중반 특수부대의 기동전을 위하여 최초로 도입을 검토했었으나 군 내부에서 반대론이 우세했었다. 산악 지형이 많기 때문에 실효를 거둘 수 있겠느냐 하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은 위성 추적장치가 기존의 피아 인식 장비에 인공위성 추적 시스템을 결부해 과거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인공위성 추적 시스템이 미 국방부의 전략 통제 권역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미 국방부는 전략적으로 인공위성 추적 코드를 바꾸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오차가 생길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 민수 목적으로 현재 시판중인 인공위성 추적 시스템(GPSㆍ트림블사 제작) 설명서에도 ‘미 국방부가 실시하는 선택적 가용전략(S/A)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명시돼 있을 정도다.

 군 전력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미국 무기 구매에 대한 시각차는 크다. 국방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국책 연구소의 한 박사는 이에 관한 사견임을 전제로 3~4년 전에 비해 한ㆍ미 간의 입장에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 때만 해도 한국측이 미국에게 첨단 무기를 달라고 졸랐는데, 지금은 다르다.” 그는 미국이 한국에 최첨단 무기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다는 것과, 우리가 그 무기들을 살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85년에야 한국측에 인도된 F16이 76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측이 구매를 희망했던 전투기였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한반도의 긴장과 미국 군수업체의 이익에 분명한 관계가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군사 평론가인 지만원씨는 한반도 상황을 냉전이 상존했던 시기의 유럽에 비유했다. “미국과 유럽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 서로 다르게 판단했다. 유럽이 핵 조기 사용을 포함한 대량 보복 전쟁을 주장한 반면, 미국은 재래식 무기를 통한 유연 대응전략을 내세웠다.” 유럽인들은 미국의 이같은 전략이 유럽에 재래식 무기를 많이 팔겠다는 속셈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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