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강요된 후퇴’
  • 앙드레 퐁텐느 ()
  • 승인 1994.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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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취임 1주년을 맞은 에두아르 발라뒤르 프랑스 총리는 비록 자신이 공식을 htjsvh한 적은 없지만 누가 뭐라 해도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감임에 틀림없다.

최근까지만 해도 그는 여론 조사에서 다년 선두 자리를 지켰다. 그가 프랑스 대통령 자리에 오느는 데에 제동을 걸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지난 3월20일과 27일에 치른 지방 면단위 선거 결과, 보수 집권당은 12%라는 높은 실업류과 조질적인 사회 소요에도 불구하고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 버금가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런 판국에 왜 최근에 와서 갑자기 모든 상황이 총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발라뒤르 총리는 이제껏 ‘침묵하는 다수’라고 불리는 집단과 호흡을 같이해 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집단의 주축은 노인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숫자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그러하듯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나이 많은 유권자들은 대개 보수적이고 신중하며 정치가들의 선거공약에는 회의적인 편이다. 그렇지만 발라뒤르 총리가 지금까지 급격한 사회 변화나 충돌, 지나치게 분명한 언약 등르 피하는 데에 주력했다면 이는 반드시 노인층 유권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처신은 그 역시 이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근심과 불안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짓는 데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고 발라뒤르 총리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았던가.

 지독한 겁쟁이들마저도 기회 닿는 대로 용기가 있는 척 행동하는 요즘 세대에서 이같은 고백은 상궤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정부 시책이 예상하지 못했던 저항에 부딪힐 때미다 발라뒤르는 힘 대결을 벌이기보다 거의 매번 후퇴한 것이 사실이다. 힘으로 버텨내는 데 필요한 재능은 구비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학생 시위 계속되자 또다시 결정 번복
 최근 몇주 동안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된 학생 시위대가 거의 날마다 수만 명씩 파리 시내 및 지방 도시의 중심가로 몰려나와 발라뒤르 정부가 새로이 제시한 고용 정책에 반대해 격렬히 항의하는 소요가 잇따랐다.

 발라뒤르 총리는 예상치 못한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되자 다시 한번 자신이 결정을 번복했다. 이 말썽 많은 고용 정책을 제시하던 초기만 하더라도 그는 미비점을 보완할 용의는 있으나 청소년들이 주장하듯 이 정책을 아예 철회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었다. 양보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양보해야 한다는 이치를 그가 모를 리 없고,게다가 대통령 선거라는 부담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발상은 좋았지만 절차에 문제
 당내에서까지 정책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었고 발라뒤르 총리는 학생들의 분노를 잡재울 만한 단호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발라뒤르 총리는 시위 군중의 압력에 굴복해 미셸 봉 국립고용대행사 책임자에게 정부의 체면을 최대한 유지하는 선에서 이 현안을 매듭짓도록 일임했는데, 그는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이 과제를 수행했다. 그렇지만 몇주 전부터 조금씩 경기가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는 것 외에 실질젖ㄱ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프랑스는 여전히 선진국 중 젊은층 실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같은 추세를 역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 중의 하나는 고용주들의 고용 경비를 줄여주는 것이다. 발라뒤르 총리가 제시했던 ‘계약’도 사실상 이같은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즉 고등학교 졸업후 2년간 학업을 계속한 젊은이에게 법적 취저 임금의 80%에
해당하는 월급을 준다는 조건으로 직업 연수를 겸한 일자리를 구할 길을 열어주자는 의도였다.

 이 발상은 그 자체로서 빈축을 살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당사자들의 반대 이견이나 보충 제안을 들을 토론의 장을 충분히 마련했어야 했다.그런데 이런 사전 검토 과정이 전혀 없었으므로,당사자들의 격결한 저항이 나오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젊은이들에게 학업 기간을 연장하면 할수록 안정되고 풍요한 장래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발라뒤르가 내놓은 ‘계약’은 이들에게 최저임금도 못받는 무산 계급이 되라고 한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로서는 아마도 이 계획을백지화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건 이로 인해서 지금까지 정부 시책을 지지해온 사람들이 신임을 일부 잃었음이 명백하다. 젊은 세대로 하여금 발라뒤르 총리 자신이 ‘생존의 고통’이라고 명명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려면 적잖은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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