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앞둔 박철언 의원
  • 서명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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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풀이 정치인 되지 않겠다”

‘너무 강하게 날아간 화살은 빨리 떨어진다’. 朴哲彦 의원의 비상과 추락을 설명하기에 이 옛말만큼 적당한 비유는 없을 터이다.

80년 미묘하고도 첨예한 권력 이동기에 등장한 그는 5공과 6공에 걸쳐 북방 외교와 대북 관계, 3당 합당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판 짜기에 깊숙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문민 정부 출범후 그는 슬롯 머신업계의 대부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되어 1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그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은 6월말께 내려질 전망이다. 최근 박의원 진영은 ‘박의원 사건의 5가지 의문점’이라는 제목으로 무죄 주장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엮은 홍보물을 대구 지역에 뿌리는 등 정치 공세를 시작했다.

 《시사저널》은 대법원 판결을 앞둔 박의원과의 옥중 인터뷰를 싣는다. 이 옥중 인터뷰는 먼저 변호인단과 비서진을 통해 서면으로 인터뷰한 뒤, 미흡한 부분을 박의원과 면회해서 보완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수감된 지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느낀 감회와 지금의 심경을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처음 며칠간은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지요. 한마디로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50년의 제 생과 25년여의 공직 생활 동안 저의 부덕함과 미흡함은 없었는지 되돌아보면서, 지금의 시련을 앞으로 좀더 꼭 채워 살라고 하늘이 제게 준 단련의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심경은 편안합니다. 이곳에 1년 가까이 있다 보니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웃이 생각보다 많음을 알게 되었고, 법의 생명은 그 준엄함과 함께 온정과 공평무사함이 있을 때만이 지켜진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빨리 심경을 수습할 수 있었다니 얼른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정치권에 몸담은 뒤 줄곧 구태를 벗어난 새로운 정치, 희망의 정치를 주장해 왔습니다. 한을 품고 그 한을 풀기 위해 다시 보복하는, 한과 보복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태의연한 정치는 저희 세대에서 끝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링컨이 남기 말인 것 같은데… ‘아무도 미워하지 말고 모두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 있지요. 그런 마음으로 한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말로 담담합니다. (그는 최근 탈장 증세에 시달린 탓인지 재판정에서 볼 때보다 얼굴이 부어 있었다. 그는 멀지 않아 수술을 받으면 수감 생활을 견디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1, 2심 재판 과정에서 홍준표 검사와 치열한 법리 논쟁을 벌였는데, 담당 검사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홍검사는 개인적으로 대단히 의욕이 강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1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홍검사는 개인적 공명심에 혈안이 되어 신권력의 흐름에 과잉 충성한 나머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를 정치적·도덕적으로 파멸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은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애써야 할 검찰관의 자세와는 상반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익의 대표로서 검찰관이 할 일은 인권을 보호하고 억울한 관제 죄인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검찰측이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고 정치 재판을 강행했다는 주장인데, 그런 주장의 근거가 과연 있습니까?
표적 사정, 의도적인 정치 재판이라는 언론의 표현은 그동안 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조작과 음모의 진상을 적절히 표현한 것입니다. 그 배경을 굳이 꼬집어 말하라면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부산 초원복집 도청사건, 용팔이 사건, 동화은행 사건, 재산 공개 파동 등 일련의 사정 관련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저를 표적으로 삼았던 것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의 무죄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검찰도 알고, 재판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그렇게 몰고간 이유는 국민과 언론이 더 잘 짐작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동안 박의원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지난 3월7일 법정에서 정덕진 피고인은 박의원측이 주장했던 이른바 ‘양심선언’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천지신명께 맹세코 저는 결백합니다. 저는 정덕일로부터 청탁을 받은 일은 물론, 단 한푼도 받은 일이 없습니다. 홍성애의 집에서 예기치 않게 정덕일이라는 사람의 인사를 받고 다과를 함께 한 것이 전부입니다. 정덕진이 지난 2월1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제게 이 사건의 조작과 음모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고백한 것은, 항소심 판결을 앞둔 상태에서 집행유예 석방을 확신한 정씨가 죄책감에 못이겨 양심을 회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씨의 양심선언 기미가 언론과 법조계 주변에 알려지면서, 이에 당혹한 검찰관이 정씨를 설득하고 회유하고 협박했던 것 같습니다. 갇혀 있는 제가 더 이상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결백을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까. 검찰이 주장하는 유죄 증거도 검찰이 동원한 증인들의 증언 외에는 하나도 나타난 것이 없었습니다. 검찰은 제가 받았다는 헌 수표 3천2백90장 가운데 단 한 장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이 대목에서 그는 매우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한편에서는 강경하게 무죄 주장을 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석을 호소했습니다. 매우 이중적인 태도로 여겨지는데요.
저는 결코 선처를 호소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병보석이 아니라, 무죄이기 때문에 내보내 달라는 직권보석을 신청했을 뿐입니다.

박의원이야말로 1, 2심에서 방청객을 동원해 법정을 유세장으로 만드는 등 이번 재판을 정치 재판으로 몰고 가지 않았습니까?
1심 7차 공판에서 검사가 재판장의 허락을 얻어 퇴정하는 제 등뒤에다 대고 황급히 논고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때 평소 재판부와 검사의 부당한 공판 진행에 불만을 품어온 일부 방청객들의 우발적인 고함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법정에서의 소란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법의 준엄함과 법정의 신성함을 늘 강조해 왔던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방청객을 동원해 정치재판화했다는 시각은 이 사건의 진행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각이라고 봅니다.

대법원 심리는 형량보다는 적용된 법의 타당성 여부만 다루게 됩니다. 대법원 판결이 원심 파기와 원심 확정 가운데 어느 쪽이 되리라고 보십니까?
저는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이 이성과 양심과 용기를 가지고 저의 결백함을 밝혀 주리라고 기대합니다. 이제는 대법원이 이런 고도의 정치성 사건에도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리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6공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만큼 비단 슬롯 머신 사건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이권과 공작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고 여겨지는데요. 역사와 양심에 비추어 전혀 흠결이 없었다고 자부하십니까?
저는 ‘6공의 황태자’가 결코 아니었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적도 없습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북방 정책과 남북 문제에 온 정열을 쏟았고, 정치의 지속적인 불안정이라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각제 헌법 개정을 전제로 한 정계 대개편(3당 합당)을 실현하는 데 총력을 다했을 뿐입니다. 어떠한 국내 정치 공작에도 관여한 일이 없고, 어떠한 이권에도 개입한 일이 없습니다. 역사와 양심에 비추어 추호도 부끄러운 일이 없습니다. 황태자라는 표현 자체가 반대 세력들이 저를 폄하하고 음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3당 통합 이후 불과 2개월여 만인 90년 4월에 김영삼 대표와의 갈등 때문에 정무장관을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면 6공의 황태자가 따로 있었고, 그가 누구였는가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박의원은 스스로 정치 재판의 희생양임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박의원이야말로 공안 검사 시절 양심수들을 양산하지 않았습니까?
우선 저의 공안 검사 경력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습니다. 공안 검사였던 기간은 1년도 안됩니다. 78년부터 79년까지가 전부입니다. 그 기간에 남민전 사건이 터졌지만 당시 저는 말석 검사에 불과했습니다. 그밖에는 대부분 송치 사건만 담당했습니다.

민주계 진영에서는 합당 이후 상당 기간 박의원으로부터 말 못할 수모와 살벌한 정치 공작을 당했다고 합니다. 혹시 박의원 자신이 대권을 노렸던 겁니까?
저는 5, 6공을 통틀어 단 한번도 국내 정치 공작 부서에서 일하거나 정치 공작에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최근 수년 간에 걸친 일부 언론의 시각은 엄청나게 왜곡된 것입니다. 제가 관여한 정치 공작이 있었다면, 단 한건이라도 증거를 내놓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3당 합당 이후 언론 플레이의 철저한 피해자는 저 자신입니다. 당시 김영삼 대표를 의도적으로 괴롭힌 일도, 괴롭힐 이유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수모를 가할 입장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3당 통합 전에 그렇게도 철석같이 구두로, 문서로 재삼재사 다짐했던 내각제 헌법 개정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을 뿐입니다.

이번 재판이 박의원의 정치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예상하십니까.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 하실 생각입니까?
정치에 몸담게 되면서 세웠던 ‘정직과 신뢰가 지켜지는 새 정치 구현’이라는 대원칙을 끝까지 지켜 나갈 것입니다. 지금 제가 겪는 시련은 좀더 큰 정치인으로 단련되고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련을 딛고 앞으로도 ‘국민화합·경제발전·민족통합’이라는 이 시대의 3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저는 대권병에 걸린 직업 정치꾼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툴툴 털고 ‘사랑과 멋과 봉사’의 소시민적 생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대구 정서’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일부 TK 출신 기득권층이 지난 시절 기득권과 우월감이 유지되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을 대중 정서로 왜곡하거나 확대 포장하는 것은 아닙니까?
지난 30여년 간의 한국 현대사에 대구·경북 지역 인물들이 주도적으로 기여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현대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총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허물도 많았지만 조국은 근대화하고 발전했습니다. TK 지역이 지역 개발의 측면에서는 이렇다 할 혜택을 누린 것도 없이 이처럼 현대사의 주역을 담당했는데, 이런 과거를 깡그리 매도하고 죄인시하는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구나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는 압도적으로 지지해 주었는데도 이런 참혹한 입장에 처하게 되니 일종의 배신감마저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대법원 판결을 두고 봐야 하겠지만, 대구 수성 갑 보궐선거가 있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그 경우에 부인 현경자씨를 내보낼 생각은 없는지요?
인권 수호의 최후 보루로서 대법원의 권위와 역할 그리고 용기를 믿기 때문에, 보궐선거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집사람의 출마 가능성에 대한 언론의 추측 보도를 봤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 정치가 어떻습니까. 진흙탕 정치 아닙니까. 그 때문에 제 자신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마당에 집사람까지 그런 탁류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현재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집사람의 생각도 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박의원이 정말로 억울하다면 대리인 출마를 통해 유권자들의 간접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합니다. 그러나 만일 보궐선거에 저의 대리인 격인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일이 생기더라도, 현 정권에 대한 타협이나 투항식의 구태의연한 시각에서 보지 말기를 바랍니다. 진정코 새 정치의 이상에 부합하는 길, 그리고 대인다운 길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들의 의사가 우선돼야 하고, 중요하다고 봅니다. 6월말쯤 대법원 판결이 날 것이고, 그때 가서 지역민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현정권이 지난 한 해 동안 집행한 인적·제도적 개혁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까?
어느 시대에나 변화는 필요하고, 개혁은 변화의 법적·제도적 실현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정부가 주도한 개혁의 방향 자체는 맞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법제도의 규정보다는 공정한 법 집행이 더욱 중요합니다. 만약 형평성을 잃게 되면 그것은 법 집행을 빙자한 폭거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개혁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되고, 결국 자기모순과 부정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국민 화합과 경제 발전, 민족 통일에 효과적으로 기여해야 합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현정권이 잘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어떤 생활에서도 인간적인 기쁨이나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면, 지금 수감 생활에서는 무엇에서 위안을 얻습니까?
바쁜 공직 생활 때문에 보고 싶어도 못 보았던 책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면회나 운동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혼자 있다 보니 지난 1년간 3백권 정도 읽었어요. 저를 걱정해 주는 정성스러운 편지들을 읽는 일, 하루 한 시간 햇빛을 쬘 수 있는 시간, 1주일에 한 번 목욕하는 시간도 작은 즐거움이고 위안입니다. 작은 기쁨이 뜻밖에 큰 위안이 되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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