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비명 “서부 벨트를 사수하라”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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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강풍’이 잦아들면서 열린우리당이 그동안 공들여온 경기·충청권에도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풍경 1: “내가 어쩌자고 오세훈 전 의원을 영웅으로 만들었는지… 정말 한치 앞을 모를 일이군.”

강금실 캠프에서 전략 기획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요즘 ‘오세훈 바람’을 보는 소회가 남다르다. 민의원이 <문화일보> 정치부장을 하던 시절, 오세훈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1주일 내내 1면 머리기사, 정치면 머리기사 등으로 크게 다룬 것이 지금 ‘오세훈 바람’의 단초가 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당시 석간이 이 뉴스를 비중 있게 치고 나가면서 다른 언론들이 모두 따라 왔다. 오 전의원으로부터 고맙다는 전화까지 받았는데, 지금은 거기에 내 발목이 잡힌 꼴이다.”

#풍경 2: 열린우리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미 의원은 요즘 각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는 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진대제 경기도지사 후보가 좀처럼 ‘안 뜨는’ 이유가 언론 노출이 적어서라는 판단에서다.

“진대제 전 장관이 상품으로는 훨씬 훌륭하다. 하지만 언론의 관심이 온통 중앙당과 서울시장 선거로만 쏠리면서 경기도에는 진 전장관이 출마한 사실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부지기수다.”

인지도를 높이려면 어떻게든 뉴스의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진후보측에서는 최근 ‘일본을 이기자’는 쪽으로 선거 컨셉트를 수정했다. 일본이 우리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수로 측정을 하겠다고 나선 것을 계기로, “반도체로 일본을 집어 삼키겠다”던 진후보의 과거 발언을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정동영 의장 역시 4월20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진대제 전 장관이 미국에서 연구하다 삼성에 스카우트되어 귀국할 때 ‘일본을 삼켜버리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었다”라며  진대제 띄우기에 적극 나섰다.

열린우리당이 이처럼 수도권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만큼 전국 판세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2월18일 신임 의장에 당선된 후 정동영 의장측은 5·31 지방선거의 승패가 결국 ‘서부 벨트’에서 판가름나리라고 보았다. 16개 시·도 단체장 가운데 단 두 곳인 여당 소속 대전·전북을 수성하고, 서울·경기·인천 가운데 한두 곳, 충남·북, 광주·전남, 제주 가운데 한두 곳을 보탠다면 당 내부는 물론 언론에서도 여당 손을 들어주리라는 나름의 기준을 세운 것이다.

강원도와 대구·경북, 부산·경남을 잇는 ‘동부 벨트’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다만 한나라당의 아성 격인 동부 벨트에서 기초단체장을 한 명이라도 낸다면 그건 서부 벨트의 광역단체장에 버금가는 상징성을 지니리라고 보았다. 여당이 이재용·오거돈·김두관 등 참여정부 장관 출신 인사들의 팔을 비틀어 동부 벨트에 대거 투입한 것도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을 기대한 측면이 크다(  쪽 관련 기사 참조).
때문에 서부 벨트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열린우리당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반드시 수성을 해야 하는 대전과 전북에서는 승리에 방해가 될 만한 걸림돌을 일찌감치 제거하는 데 진력했다. 숱한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서도 결국 3선을 노리던 강현욱 전북지사, 대전시장에 출마하겠다며 탈당까지 감행한 권선택 의원을 둘 다 주저앉힌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과 경기·충남은 각각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강금실·진대제·오영교 후보를 차출하는 데 성공했고, 경쟁력 있는 후보가 마땅치 않았던 충북에서는 당 일각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한범덕 전 충북도 정무부지사를 공천했다. 서부 벨트 공천의 마지막 관문이 될 제주에서도 현재 한나라당 출신이지만 지금은 무소속인 김태환 현 지사 영입 작전이 진행 중이다. 이 역시 당내 경쟁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렀지만, 당 지도부로서는 김지사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나오는 데에 더 끌리는 모양이다.

낮은 당 지지도·전략 미흡 등 ‘악재 첩첩’

열린우리당의 서부 벨트 공략은 오랫동안 공을 들인 강금실 전 장관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탄력을 받는 듯했다. 때마침 한나라당의 공천 비리가 하나 둘 현실로 드러나면서 ‘강풍’도 거세졌다. 당 지도부는 “드디어 강진(강금실·진대제)이 오고 있다”며 한껏 들떴다.

 
하지만 그 기대는 보름이 채 안 되어 실망으로 바뀌었다. 오세훈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강풍이 미풍으로 잦아들었고, 도미노처럼 서부 벨트 전체가 침체 국면에 빠져든 것이다. 최근 나오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대전과 전북을 제외한 모든 서부 벨트에서 열린우리당이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 “대전도 마냥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열린우리당이 고전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낮은 당 지지도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본부장은 “인물 간에 차이가 크지 않으면 정당 지지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라면서 서울시장 선거를 대표 사례로 꼽았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의 경우 한나라당 지지율이 버팀목이 되기 때문에 후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적지만, 강금실 후보의 경우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낮아서 후보 개인이 월등하지 않으면 상대 후보를 따라잡기가 버겁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물로는 전혀 처지지 않는 여당 후보들이 일제히 약세를 면치 못하는 것도 낮은 당 지지도 때문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는 선거 전략 문제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슬로건으로 ‘지방권력 심판론’을 내세우고 있다. 10년 넘게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지방 정부가 썩을 대로  썩었으니 이번에는 바꿔보자는 논리다. 하지만 이 슬로건이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그다지 호소력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폴앤폴의 조용휴 대표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중앙정부 심판론’과 열린우리당이 주장하는 ‘지방권력 심판론’에 대한 유권자들의 감수성을 조사해보면 ‘중앙정부 심판론’이 더 먹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권자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만큼 눈에 보이는 비전을 제시하는 쪽으로 선거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2002년 대선 때 ‘부패 정권 심판’보다 ‘낡은 정치 청산’이 더 호감을 샀고, 그것이 결국 ‘노풍’으로 이어진 것을 기억하라는 얘기다.

세 번째는 이른바 ‘별장파티’ 역풍이다. 김한길 원내대표가 ‘경악할 만한 비리 건’이라고 예고편까지 내보냈던 한나라당의 치부가 고작 이명박 서울시장의 테니스 동호인 모임으로 판명나면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저질 정치 공세에 앞장선 것처럼 비친 것이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 인사는 “무엇보다 한나라당 공천 비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덮어버린 것이 뼈아프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호재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는 안타까움이다.

 
갈수록 낮아지는 지방선거 투표율도 열린우리당에게는 난관이다. 전통적으로 열린우리당 지지세가 강한 20~30대의 투표 참여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투표율을 감안하면 열린우리당의 약세는 더욱 도드라진다.  여론조사 전문가 사이에서 “열린우리당이 현재 15~20% 앞선다고 해도 안전지대는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이 이번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과거보다 더 낮아질 전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유권자의 53.6%가 지방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서부 전선에 이상이 생기면서 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지도부 책임론’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정동영 의장이 승부에 집착해 경선보다 전략 공천에 치중했고, 그 과정에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라거나 “김한길 대표의 실언은 제2의 노인 폄하 발언이다”라는 식의 비판이 비당권파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김근태 최고위원 진영에서는 그런 불만 세력을 다독이며 하나 둘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김근태 의원의 한 참모는 “1976년 미국 카터 대통령을 당선시킨 당내 기반도 그 전 총선의 낙선자들이었다”면서 지방선거 이후를 준비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고 7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참패할 경우 정치권은 급속도로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따라서 그때를 대비해 지금은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 달이면 얼마든지 대반전이 가능하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전략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광재 의원은 1995년 조순 서울시장 선거를 예로 들었다. 출마 선언 당시 박찬종 36.7%, 정원식 19.8%, 조순 9.5%였던 지지율이 40여 일 만에 ‘조순 당선’으로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이의원은 5월2일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확정되고, 한나라당 공천 비리 수사가 본격화하는 시점을 반전의 출발점으로 설정했다. 그동안 강금실 전 장관이 예비 후보라는 점 때문에 당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못했는데 당의 공식 후보로 확정되면 지원의 상승 효과를 낼 수 있고, 한나라당 공천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궤도에 올라 당 중진들이 줄줄이 포토라인에 서게 되면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하리라는 주장이다.

이의원은 “서울시장 선거가 탄력을 받게 되면 그 아래는 줄줄이 사정이 좋아지게 된다. 경기도는 진대제 후보의 인지도 대비 지지도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고, 충남은 이미 안정권에 들어간 대전과 전북 사이에 끼어 있어 오영교 후보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수도권과 충청권이 가속도가 붙으면 광주·전남으로 그 여세를 몰아 갈 계획이다. 5월18일이 분기점이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틈만 나면 한나라당의 공천 비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어떻게든 추격의 발판을 마련해보겠다는 조바심의 발로다. 그런 마당에 민주당 조재환 사무총장의 4억원 공천헌금 수수 사건이 터지고 한나라당의 크고 작은 공천 비리가 꼬리를 물자 열린우리당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말마따나 선거전에서 한 달은 매우 긴 시간이다. 여당의 쾌재가 언제 비명으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여당이 과연 무너지고 있는 서부 전선을 탈환해 대반전의 이변을 창출할지, 아니면 끝내 서부 전선의 붕괴를 막지 못해 급속도로 분열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한 달 후면 결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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