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송환 전략은 ‘양수 겸장’
  • 남문희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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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제기구 활용·남북 직접 대화 검토

국제사면위원회가 지난 7월30일 발표한 북한 정치범 실태에 관한 한 보고서가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날 발표된 정치범 55명 가운데 79년 자진 월북(북한 주장0한 것으로 알려졌던 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46)가 포함돼 충격과 함께 송환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고씨의 가족들은 고씨가 당시 북한측 주장처럼 자진 월북한 것이 아니라 북한측 공관원에 의해 강제 납북된 사실이 이번에 폭로됐다며 애통해하고 있다.

 金永三 대통령은 8월1일 고씨를 포함한 납북 억류 인사들이 조속히 송환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엔 인권위원회·국제적십자사·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기관을 통해 고씨 등의 송환을 추진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또 북한에 전언통신문을 보내 고씨의 송환을 요구하는 등 남북한 직접 대화 통로를 활용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고씨의 경우 국제사면위원회가 소재를 확인한 만큼 국제인권기구를 통해 고씨 면접 등 절차를 거쳐 그의 송환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적십자사도 8월1일 고씨와 관련해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고씨의 생사와 거주지 확인 및 송환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적십자사는 고씨 가족으로부터 고씨의 생사 확인 요청서와 송환 호소문을 받아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적십자사에 보내 고씨의 송환을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국제사면위원회측이 지난 몇 개월 간의 간접 조사를 거쳐 확인해 발표한 이 보고서는 그동안 추측으로만 나돌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태와 명단을 국제기관의 권위를 빌어 공식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평양 동남쪽 약 70km 지점에 위치한 승호마을의 한 수용소에는 90년까지 정치범·장기수들이 복역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열악한 수용 시설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용자의 대부분은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이거나, 북송 재일교포, 그리고 남한 출신자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제사면위원회가 이 보고서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한 인물인 조호평·고이테 히데코 부부의 경우 62년 북송된 뒤 60년대 중반부터 소식이 끊겼는데, 최근 승호마을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덕환씨의 경우는 50년대에 러시아에 유학갔다가 귀국한 뒤 행방불명됐다.

국제사면위가 추적하는 사람들

 숭호마을 수용소에 수감된 복역수들 외에 국제사면위원회가 정치범으로 추정해 추적하는 인물들 가운데는 외국어출판사 비서로 근무하다 67년 간첩죄로 체포돼 수용소로 내물린 한경지씨, 옛 소련 출신 인사로 언론국장까지 지내다 50년대말 강제노동 캠프로 내몰린 허 익, 공업부장을 역임한 이기석, 전 외교부부부장 유창식 등 북한 권력내 고위 인사 출신도 포함돼 있다.

 국제사면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15년 만에 생사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고상문씨의 경우, 수도여고 지리 교사로 재직중이던 지난 79년 네덜란드 국제교육연구센터에서 연수를 받다가 휴가를 이용해 노르웨이를 여행중 택시 기사의 착오로 북한 공관으로 가는 바람에 납북되고 말았다. 현재 국내에는 부인 조복희씨(40·서울 은평구 갈현동)와 딸 현미양(16) 등 가족들이 고씨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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