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실력파’ 신4인방을 주목하라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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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김정남·신상우·강삼재, YS 신임 확고 ‘충성’보다 전문성 강점…이미 ‘역할분담’ 시작

박관용 대통령 비서실장, 김정남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 신상우 국회 정보위원장, 강삼재 민자당 기획조정실장. 튀지 않는 조용한 성품, 뛰어난 실무 추진 능력을 갖춘 이 4명이 꾸준히 김영삼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여권 내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이들은 60년대부터 김대통령을 보좌했던 상도동계 ‘성골’들이 내부 갈등과 개인적인 실책 때문에 주춤거리는 사이에 조용하게 자기 분야에서 실력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권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김대통령은 이들이 올린 보고서를 가장 신뢰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김대통령은 앞으로 이들이 그동안 gods 일을 보다 자신있게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예견한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고 청와대 비서진을 진두 지휘하는 역할을 박관용 실장, 재야를 관리하고 영입하는 일은 김정남 수석, 국회 운영은 신상우 위원장, 민자당 개혁은 강삼재 실장에게 각각 믿고 맡긴다는 얘기이다. 

대부분 한때 어려움 딛고 ‘자수성가’

 각종 여론 조사엣 김영삼 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꼽히는 박관용 실장은 본래 민주당 이기택 대표의 사람이었다. 김상현 의원이 최근 자기의 정치자금 수수 사건과 관련해, 박실장이 이대표를 도와 자기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고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은 그 때문이다. 4·19 때 부산 동아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했던 박실장은 67년 이대표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으며, 81년에는 정치규제법에 묶인 이대표로부터 지역구인 부산 동래구를 물려받았다. 김영삼 대통령 진영에 합류한 것은 3당 합당 뒤였기 때문에 민주계 일부로부터 정통 상도동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괄시’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때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비서실장이 되고 나서부터 완전히 실세의 한사람으로 자리를 굳혔다. “힘이란 것은 보이지 않게 써야 힘이지 보이기 시작하면 힘이 아니다”라며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대통령을 보필한 결과 정통 상도동계로부터 ‘너무 대통령을 독점한다’는 불만을 들을 만큼 힘도 얻었다. 여권 한 인사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는 상도동계 핵심인 최형우 내무부장관, 김덕룡 의원, 서석재 전 의원 등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비밀 회동을 해도 하나도 어색해 보이지 않을 만큼”스스로의 권위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

 박실장은 격변하는 남북 관계에서 김대통령에게는 더 없이 중요한 존재이다. 그는 85년부터 90년까지 5년간 남북 국회회담 예비접촉 우리측 대표로 참여하면서 극회 통일특위 위원장을 역임한, 정치인 가운데서는 몇 안되는 통일 문제 전문가이다.

 김정남 청와대 교문 수석이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은 뜻밖의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지금 대통령의 측근 가운데서 그만큼 외부의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익 보수 진영에서 이념 문제를 들먹일 때마다 그는 “청와대에는 절대 있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지목 받곤 했다. 최근에는 전직 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가 청와대에 그를 사임시키라는 공개 요청서를 보낸 일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온 청와대의 반응은 그의 입지가 아직은 탄탄하다는 점을 암시해준다. 헌정회의 공개 요청서에 대해서 청와대는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는 교육·문화 수석이라는 본업보다는 현정부와 재야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일에 더욱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여권 내부의 평가는 대체로 그의 노력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중재가 없었다면 쌀 개방, 북한 핵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정보와 재야 간에 벌써 여러번 험악한 긴장 국면이 조성됐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지하철 파업 등 노동계의 파업 당시에도 대통령은 그를 불러 정부와 노동계 간의 다리 노릇을 해줄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재야 시절에도 ‘익명의 운동가’로 통할 만큼 조용하게 일 처리를 해와KT지만 그 파괴력은 공안 당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였다.

 신상우 정보위원장은 정통 상도동계의 입장에서 보면 ‘탈영병’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이 정치 초년병이던 시절 선거 유세에서 뛰어난 찬조 연설을 해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신위원장은 80년 신군부가 들어선 뒤 소위 관제 야당인 민한당 산파역을 맏아 김대통령의 눈 밖에 났었다. 지난해에는 아들ㅇㄹ 경기대에 부정 입학시킨 사실이 드러나 정치적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다시 대통령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특히 14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장을 맡아 야당의 끈질긴 상무대공세를 소리나지 않게 방어해 내 대통령의 짐을 덜어주었다. 그 공로로 이번 14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때 여당 중진들이 거의 모두 눈독을 들였던 정보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6선 의원으로서 보사위원장, 국방위원장을 두루 거친 신위원장은 민자당의 국회 운영 전략을 수립하는 책임을 맡게 될 공산이 크다. 그의 측근들은 “김영삼 대통령 임기중에 언젠가는 꼭 총리를 맡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은근히 드러냈다.

 네 사람 가운데 가장 빠르게 떠오르고 있는 이는 강삼재 기조실장이다. 30대에 세 번 연속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신기록을 갖고 있는 강실장도 처음부터 상도동 사람은 아니었다. 85년 신민당 창당 당시 동교동계였던 김상현 민추협 공동의장 권한대해의 천거로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통일민주당 시절 대변인을 맡으면서 김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데다 3당 합당 뒤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참여해 상도동 사람이 됐다.

당 조직개편 맡은 강삼재 실장 역할 눈길

 그가 현재 맡고 있는 일은 민자당의 조직 개편과 물갈이이다. 현재 여권 내에서는 민자당 현역 의원 중 3분의 1을 물갈이할 것이다. 민자당 조직을 미국의 정당체제(선거 때에만 정당으로서 역할)로 대폭 정비할 것이다 하는 얘기가 계속 나돌고 있는데 그 실무 작업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사람이 강삼재 실장이라는 것이다.

 지난 8·2 보궐선거 때 민자당이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한 인원은 각 선거 지구당 별로 2명뿐이었다. 선거관리 지원 요원과 연설문 작성 지원 요원이다. 그런데 선거 지원과는 상관 없이 기획조정실 요원 15명이 선거 유세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마침 대도시(대구), 중·소도시(경주), 농촌(영원·평창)등 여러 유형의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진 보선 현장에서 앞으로의 당 운영과 공천 전략 등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현장에서 보고 들은 사실을 정리해 강실장에게 상세한 보고서를 올릴 예정이다.

 강실장은 민자당 조직 개편 작업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곳은 기조실 산하 사회개발연구소이다. 현재 사회개발연구소에는 92년 대선 당시 과학적인 여론조사로 김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던 김대통령 차남 김현철씨의 사단이 다수 포진해 있다. 사회개발연구소는 경주 보선 후보를 놓고 여권 내에서 이견이 끊이지 않을 때 밑바닥 여론을 정밀 조사해 임진출 후보가 아니면 확실한 승산이 없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회개발연구소는 당내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강실장은 당 내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당의 운영을 주장하는 젊은 그룹을 이꿀고 있다.

 이들 여권 4인의 ‘떠오름’은 충성심보다 합리적인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의 반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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