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간 '말씨름' 너무 거칠다
  • 박중환 차장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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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들 본질 외면 말꼬리 잡기 일쑤…갈등 부추기는 가십기사도 문제

 민주자유당 창당전당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5월8일 오후 2시께 서울 여의도 민자당사 3층 기자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30여명의 기자가 테니스코트 한쪽면만큼 넓은 기자실에 흩어져 막 배달된 석간신문을 읽거나, 오수를 청하고 있었다. 정치부기자의 하루중 가장 여유있는 시간이다.


 이때 朴憘太민자당대변인이 기자실에 나타났다. 그는 대변인 브리핑용 마이크를 잡고는 기자들에게 어떤 정치사안에 대한 논평을 하겠다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마크는 기자실이 너무 넓고 출입기자만 해도 2백20명에 이르는 데다가 중앙지·지방지 기자실을 딸 두고 있어 고심한 끝에 만든 실내 방송장치이다. 기자들은 여느 때와는 다른 시간에 논평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여느 때와는 다른 시간에 논평할 일이 있다며 나타난 朴그대변인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늘 조간신문에 내각제개헌과 관련해 평민당의 金台植대변인이 논평한 보도를 보고 그냥 넘길 수 없어 한마디 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내각제개헌이 장기집권음모라고 한다면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선진 민주국가는 모두 장기독재국가라는 이야기 아니오> 이런 상식밖의 논평을 한 金대변인에게 공부를 더 하라고 충고하고 싶어요…??하면서 10여분간 평민당 대변인을 겨냥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런 공방은 민자당의 창당전당대회를 이틀 앞두고 당헌강령초안 첫항에 내각제개헌의사를 강력히 시사하는 문구를 넣은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대변인의 논평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시 그 자리에 있던 몇몇 기자는 ??그런 횡설수설까지 쓸 지면이 있느냐??하는 것에서부터 ??대변인의 스트레스 해소용이 아니겠느냐????애교로 봐줄 일이지요??라는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여야 대변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 정도의 다툼은 다반사라고 할 수 있다. 대변인간의 다툼은 유신 이후 정치적 대립기에 신문 가십란을 장식하면서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현안해결해도 민주발전에도 도움 안돼

 그러나 여야 대변인끼리 쟁점의 본질을 벗어나 사사건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식의 입씨름은 현안의 매듭을 푸는 데에도, 그뿐 아니라 불안정한 정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대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중요하다. 때로는 정국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대변인 논평은 사실상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당의 입장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李 씨(한국일보논설위원)는 “제?2공화국 시절 민주당 대변인 역할을 했던  曺在千선전부장은 꼭 필요할 때에 논리적으로 당의 입장만을 표명해 돋보였다??고 회고한 뒤 서로 말꼬리를 잡아 ??입씨름??하는 요즘 여야 대변인의 논평자세에 대해 심한 회의를 나타냈다. 대변인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한때는 ??정당의 이론가????정치의 꽃??등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유신?5공시절 여당 대변인에게는 ??정권의 나팔수????권력의 소모품??이라는 악평이, 5공말기 이후 金大中?金泳三씨의 과당경쟁 시절 야당 대변인에게는

‘보스의 惡口??라는 혹평이 따랐다.

 정치인의 험한 말투는 대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심사가 뒤틀리면 정치지도자들도 상대당의 특정인을 비꼬는 언사를 예사로 해대는 한국의 정치풍토에선 ‘드러내놓는 대변인의 거친 입??은 오히려 당연하지 않느냐는 항변도 나온다. 평민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金 稙의운은 ??대변인이 때로는 악역을 말을 때도 있으나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논평을 할 때는 여야의 대결을 심화시키보다는 상대당의 맹성을 촉구하는 입장에서 은유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예로서 ??주가지수 7백70은 盧정권의 통치지수??(4월20일자) ??민자당은 위에서 아래까지 내분, 콩가루 집안꼴??(5월7일자) ??청와대 특별사정반의 추가 내사설이라니, 청와대는 포도청이냐??(5월16일자) ??청와대 영수회담제외는 두루미에게 음식을 접시에 담아 내미는 적??(5월27일자)등의 논평을 든다. 그는 ??논평을 할 때마다 미묘한 정국에서 마치 곡예를 하는 듯하다??며 대변인의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고충은 이뿐 아니라고 한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동교동(김대중총재 자택)으로 가 김총재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날 논평거리를 상의한다. 이것에서부터 그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당내 회의에다가 언론사의 행사까지 겹치는 날에는 하루 새끼를 총재와 같이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사정은 여당 대변인도 비슷하다.

 여야 대변인 모두가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엄청나게 늘어난 일간지·방송사의 출입기자들을 거의 혼자서 상대하면서, 사사건건 논평을 요구해오면 논평의 ‘남발??이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점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응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래서 정국이 소용돌이 칠때면 하루에 4~5건의 논평을 ??남발??한다.

 '남발'이 잇따르면 여야 대변인간의 논평을 ??입씨름??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중순 당시 4당 대변이었던 박희태 민정, 김태식 평민, 李仁濟 민주, 金文元공화 등 4명이 모여 앞으로 서로 지나친 공격성 논평을 하지말자고 약속하면서 술을 함께 한 일도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앗다.

 민자당과 평민당의 두 대변인에 비해 민주당(가칭)의 張石和대변인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대변인이 당을 대면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위원장(총재)만의 ‘입??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새벽에 李基澤민주당(가칭)위원장 집에 들려 상의한 s관행을 깨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3당통합전 민주당 시절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꼬집는다. ??당시 대변인은 매일 아침 총재 집에 먼저 들려 총재의 말을 듣고 당사에 나오지요. 그리고는 기자들에게 그날의 현안에 대한 총재의 견해를 당의 공식회의가 있기전에 설명합니다. 그날 언론에는 대변인이 브리핑했던 총재의 ??말??은 크게 보도되고 당회의에서 토론된 내용은 그 뒤에 조그맣게 따라 붙거나 가십란에 소수의견쯤으로 취급되기 일쑤입니다. 그런 회의를 무엇하려고 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구미 언론엔 정치가십란 없어

 6공초기 민자당 대변인을 지냈던 金重緯 의원은“당의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중요한 일을 대변인 한사람에게 일임하고 있는 오늘날의 관행은 지나치다. 한명의 대변인이 맡아 처리하기에는 일의 부담이 크고, 그만큼 실수를 범할 우려도 많다. 업무를 분업?체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당이 매일 회의를 여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일 것??이라면서 ??정책기능은 정책실에 맡겨야 하는데 당내의 모든 현안을 수뇌부가 주재하는 공식회의에서 토론하고 결정한다. 대변인은 회의를 듣다 말고 신문의 기사마감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가 아직 결정도 되지 않은 토의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해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한다. 김의원과 한때 맞수 대변인이던 평민당 李相沐의원은 ??국민에게 당의 입장을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대변인이 있어야 하겠지만 신문의 가십란을 의식해서 논점의 본질을 벗어나 왈가왈부하는 식의 논평은 자제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직이든 전직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변인들이 제시하는 공통된 견해는 신문의 가십란이 없어지거나, 달라져야만 대변인의 ‘말씨름??도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가십거리를 잘 만드는 대변인이 유능한 대변인이라는 인식이 언론에 남아 있는 한 대변인만의 노력으로 개선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 정치부기자는 ??가십란이 있으니 기사를 만들어 송고해야 하고, 정치부장이 재미있는 것을 원하니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사실 신문의 정치가십란은 일본신문에서 본따온 것으로 歐美계통 신문에선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십기사는 언론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의 산물이다.

 1950년대 정치부기자였던 宋元英 전의원은 “그 당시에도 가십기사는 있었으나 요즘처럼 티격태격하는 대변인의 논평을 없었다??고 회고한 뒤 ??조재천 당시 민주당대변인은 스스로 자신의 논평에 권위를 지켰다??고 말한다.  宋 전의원은 ??그는 민주당 구파인 海空 申 熙총재 당시의 ??입??이었으나 논평시에는 불편부당한 위치에서 당을 대변했다??고 술회한다.

 언젠가부터 한국 정치판에서는 논평이 당당함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대변인의 '거친 입' 언론의 상업주의에 편승해 날로 더 거칠어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정치가 날로 더 황폐해가는 듯 느껴지는지 모른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정당의 대변인제도는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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